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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Aug 17. 2024

엄마와 과일나무


 남편과 마을 주위를 산책하던 중, 재개발을 마치고 입주하는 아파트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파트는 새로 지어져서 엄청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특히 정문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아파트의 고급스러운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위풍당당했다. 조경에 관심 많은 남편은 멋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감탄하며 내게 물었다. 

 "저런 소나무 한 그루는 얼마 할 것 같아?"

 "글쎄, 천만 원 정도?"

 나는 나름 생각나는 최대치의 값을 불렀다. 그런데 남편은 

 "아마 억대는 할걸. 와! 멋있다. 우리 집 마당에다 저런 소나무 한 그루 딱 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난 멋있는 소나무를 심고 싶지 않다. 만약 신이 나에게 "너의 마당에 멋진 소나무를 심어줄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싫습니다." 할 것이다. 은은한 솔 향기, 가호가 느껴지는 각진 껍질, 멋있게 휘어진 가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나뭇잎, 사철 푸른 의기 당당함. 어느 하나 나무랄 때 없는데 왜 싫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 동네 뒷산에는 넓은 소나무 숲이 있다. 엄마는 해마다 겨울이면 소나무 갈비를 끌어 땔감으로 사용하셨다. 우리가 학교를 다녀오면 갈비 끌러 가자며 우리를 데리고 가셨는데, 어린 우리를 데려가면 심심하지도 않으셨을뿐더러 혹시나 산 주인이 시찰 올 땐 엄청난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끌어 담은 자루를 산 아래에 밀 때도 작은 힘이지만 숫자에서 참 쓸모가 있었다.     

 갈비는 소나무와 참나무에서만 얻을 수 있다. 우리 동네에선 소나무 갈비를 끌었는데 참나무가 많은 동네에선 참나무 갈비를 끌어 땔감으로 사용한다. 나무는 음수림과 양수림이 있는데 음수림에 대표적인 나무가 소나무와 참나무다. 음수림은 음지에서 자라면서 잘 자라다가 본인이 숲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면 아래에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갈비를 긁어모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다. '다른 나무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소나무의 습성이 사군자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것을.           

 남편은 요즘 텃밭 가꾸는데 흠뻑 빠져 있다. 텃밭에는 어릴 적 추억이 담겨있는 산딸기, 앵두, 오디, 자두, 복숭아, 포도, 배, 대추, 감나무가 심겨 있다. 남편이 나름의 계획을 짜서 봄, 여름, 가을 계절별로 즐길 수 있도록 심은 것이다. 그 재미가,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다. 바로 따서 먹는 그 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그 기분을 모를 것이다. 남편의 수고로움 덕분에 계절마다 내 입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다.  

    

 나는 과일나무가 참 좋다. 예쁜 꽃이 펴서 눈이 호강하고, 은은한 향기가 바람에 날려 코가 신나고, 열매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행복하고, 열매를 수확해서 맛있게 먹으니 입이 즐겁다. 거기다 가을엔 단풍으로 눈 호강을 덤으로 보탠다. 이 모든 걸 내게 주는 과일나무가 참 좋다. 만약 신이 "너의 마당에 멋진 소나무를 심어줄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 저는 과일나무가 좋으니 과일나무를 심어주십시오" 할 것이다.  

    

 가만가만 보니 과일나무가 우리 엄마를 닮았다. 엄마는 외모가 뛰어나지는 않으셨지만, 많은 재주를 가지셨다.

 엄마는 손재주가 참 좋으셨다. 어릴 적 우리는 미용실에 가 보지 못했다. 늘 엄마가 우리 육 남매를 담 아래 앉혀서는 머리를 깎이셨다. 우리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 머리도 엄마가 다 깎아주셨다. 

 엄마는 옷도 참 잘 만드셨다. 우리는 늘 엄마가 만들어 주는 옷을 입었다. 어디서 배우신 것도 아니었는데 레이스랑 주름을 넣어 참으로 예쁘게 잘 만드셨다. 그리고 겨울엔 손으로 짠 양말이랑 스웨터, 목도리, 티를 입었다. 알록달록한 무늬도, 꽈배기 무늬도 참으로 잘 넣으셨다. 

 음식 솜씨는 어찌나 좋으신지 동네잔치 때 음식은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선 자주 동네잔치를 했었다. 그럴 때면 매번 엄마가 모든 음식을 맡아 하셨다. 큰 가마솥 밥도 잘 지으셨고, 큰 솥에 부글부글 국도 잘 끓이셨다. 엄마는 늘 바쁘셨지만, 계절마다 놓치지 않고 계절 특미인 음식을 맛있게 해 주셨다. 

 엄마는 동물도 식물도 참 잘 키우셨다. 소, 개, 닭, 토끼를 늘 키웠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도개 댁네 오는 동물들은 어찌 이리 잘 크는지 참말로 이상하네" 하며 궁금해했다. 마당 귀퉁이에 있는 텃밭에서는 채소들이 또 어찌나 싱싱하고 튼실한지 이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 육 남매도 참 잘 보살펴 키우셨다. 주위에 보면 많은 집에서 재산 문제나 부모 모시는 문제로 싸운다. 그러다 결국 왕래가 끊어진다. 그런데 우리 육 남매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는 큰오빠네 최고의 일꾼은 도시에 사는 우리 오 남매다.  

    

 그랬구나! 재주도, 지혜도, 인품도 뛰어나셨던 우리 엄마와 과일나무는 닮은 점이 참 많구나! 그래서 나는 과일나무가 좋았구나! 그래서 위풍당당한 소나무가 아니라 과일나무가 좋았구나!     


 엄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늘 엄마랑 함께 있다. 봄에는 새빨간 산딸기랑 앵두랑 오디를 따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여름에는 자두랑 복숭아랑 포도를 따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가을에는 배랑 감이랑 대추를 따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겨울에는 다시 봄에 꽃을 피울 나무를 보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사계절 늘 엄마와 함께한다.      

 우리 부부는 이번 주말에 대추와 배 따러 간다. 엄마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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