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 후선 Aug 17. 2024

인연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큰조카가 학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오는 걸 어린 마음에 안쓰러워 차마 두고 오질 못해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언니네 막둥이가 됐다. 언니는 하루만 있다가 유기견센터에 데려간다고 집으로 들였기에 이름을 ‘하루’라고 지었다. 이것이 유기견과의 인연이 되어 지금의 ‘부비’를 만나게 됐다. 


남편은 큰애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버거워지자 완강하게 반대하던 애완견 키우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평소 유기견 보호단체에서 봉사활동 하는 지인에게 푸들이 애완견으로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에 지인에게 푸들 한 마리 있냐고 물었다. 지인은 지금은 없는데 들어오면 연락을 주겠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에게서 담요로 돌돌 말아 상자에 넣어 지하철 계단에 버려진 푸들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퇴근하고 팔공산까지 가니 제법 멀었다. 하지만 평소 개를 좋아하던 나는 먼 거리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기에 힘들진 않았다. 이렇게 도착해서 데려갈 개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푸들인데, 털을 바리깡이 아닌 가위로 깎다가 버려졌는지 온몸에 털이 들쑥날쑥하고 귀는 헤비메탈 가수처럼 잘려 눈이 더욱 튀어나와 보였다. 가장 특이한 모습은 부정교합이 너무 심해 아랫니가 툭 튀어나와 입이 다물리지 않는 것이었다. 옆에 다른 예쁜 유기견들이 많았기에 이놈을 포기하고 다른 예쁜 강아지로 데려가고픈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그냥 데리고 왔다. 

집에 오니 낯선 환경에 놀랐는지 구석에 오줌을 싸질 않나, 그걸 또 핥아 먹질 않나, 남자 어른에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남편에게 으르렁대며 공격적이질 않나 ‘괜히 데리고 왔나’하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아이들은 "왜 이리 못생겼지 이래서 버려졌구나", 남편은 "이렇게 사나워서 어떻게 키워?"라며 내 속을 뒤집어 놨다. 이런 강아지가 우리 집 막둥이 ‘부비’다. 이렇게 나에게로 와서 가슴으로 낳은 막둥이가 됐다.     


지금은 어찌나 예쁜지. 어쩌다 시선이 부비한테 가면 저절로 입이 찢어진다. 나는 어쩌다 잠이 깨면 우리 부부 베개 사이에서 잠자는 부비에게 뽀뽀하지 않고는 다시 잠들 수가 없다. 늘 이러고 논다. 부비 귀를 위로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1인 2역을 한다. 내가 묻고 부비가 대답한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는 누구예요?"

"부비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강아지는 누구예요?"

"부비요.”

 

부비는 허리디스크 수술로 뒷다리를 절기에 오래 걷지 못한다. 또한, 비만이라 다이어트 사료를 먹어야 하고, 스켈링도 가끔 해야 하고, 매일 양치와 털을 빗겨야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해야 한다. 가장 압권은 유기될 때의 불안이 트라우마가 되어 혼자 집에 두질 못한다. 그래도 어쩌다 가족 모두가 집을 비울 때면 언니네 집에 데려다 주었다가 데리고 와야 한다. 비용면에서나 노동면에서나 여간 무리가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에겐 들어가는 수고로움과 경제적 부담보다는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위안과 행복이 훨씬 더 크다. 큰애가 묻는다.

“엄마! 부비 죽으면 강아지 또 키울 거야? 내 친구는 강아지 키우다 죽는 것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안 키운다던데?”  

“나는 또 키울 건데,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을 때 온 마음을 다 주면 되지. 죽는 것까지 엄마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미련 없도록 지금 살았을 때 잘해줘야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되지.”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떠날 것을 두려워 만남을 포기할 순 없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되, 내 힘으론 안 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고는 싶지만 낳은 뒤 키우는 어려움이 두려워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한 지붕 두 가족인 부부는 이혼 후의 불확실한 삶이 두려워 이혼을 원하지만 헤어지지 못한다.


나에게는 배 아파 낳은 두 아이와 가슴 아파 낳은 막둥이 부비가 있다. 만약 신이 나에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니 돌아가겠느냐?” 묻는다면 나는 “지금이 좋으니 돌아가지 않겠습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젊을 때로 돌아간다면 아이는 여전히 낳을 것이다. 내 삶의 행복 중에서 아이들을 빼면 무엇이, 얼마나 남을까? 힘든 것보다 행복이 훨씬 더 크다.   

  

어떤 이는 인연이 두려워 맺지 못하고, 어떤 이는 인연이 두려워 놓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시를 전해주고 싶다.    

      

라인 홀드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하나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담담히 수용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고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둘 중 어떤 경우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옵소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진지하게 보내게 하시고

순간순간을 누리게 하옵소서.

여러 어려움들을 평강으로 가는 오솔길로 여기게 하시고

죄 많은 세상, 

내가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지 말고

주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끌어안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기면

주께서 모든 것을 잘되게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게 하사

이 세상 살아가면서 저희들 그런대로 행복하게 하시고

다음 세계에서는 주님과 함께하는 최고의 행복을 

영원히 누리게 하옵소서.

이전 01화 엄마와 과일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