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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Aug 17. 2024

재밌는 일을 해야 합니까? 잘 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나는 그냥 좌충우돌 부딪히며 막 해보는 성격이다. 뭘 차분히 배우질 못한다. 이런 나를 주위에선 ‘무대뽀’라 부른다.     


드레스를 만들어 봐야지 하며 학원을 갔다. 하지만 3일 배우고는 가지 않았다. 천을 떠서 바로 드레스를 만들었다. 디자인은 너무 예쁜데 세탁 후 박음질이 틀어져 그 뒤론 만들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았기에. 하지만 작은 소품들은 지금도 직접 만든다. 재밌다.

수영을 배우면서 한 달을 다니고는 자유 수영반으로 바꿨다. 지금도 수영만 하면 귀에 물이 들어간다. ‘너무 기초를 안 배워서 그렇구나’ 싶다. 그래도 재밌다. 골프를 배우면서도, 배드민턴을 배우면서도 매 한 가지였다. 

웨딩숍도 상담센터도 그냥 차렸다. 누구한테 사진기술이나 상담기술을 배운 적이 없다. 혼자서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며 무작정 시도했다. 사진 촬영을 처음하고는 며칠을 못 일어났고, 상담은 하루를 못 일어났다. 그렇게 그렇게 혼자서 무작정 막 했고 잘해냈다.


계속 직장을 다니다가 얼마 전 그만뒀다. 그리고 요리를 시작했다. 40년을 요리 경험이 없었지만, 그냥 요리를 시작했다. 싱거우면 소금 더 넣고 짜면 물 더 붓고 하면서. 가끔은 남편을 깜짝 놀래줄 때도 있고, 가끔은 나 스스로 생각해도 획기적인 요리를 만들어 놀랄 때도 있다. 그냥 막 한다. 재밌다.   


그런데 ‘무대뽀’도 통하지 않는 게 있다. 

장구를 한 달 배우고는 그만뒀다.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된다. 혼자는 되는데 음악에 맞추면 박자가 틀린다. 댄스도 한 달 하고는 그만뒀다. 아무리 연습해도 허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리듬에 맞출 수가 없다. 노래연습실도 한 달 다니고 그만뒀다. 아무리 불러도 박자를 맞출 수가 없다. 그 뒤론 다시 시도해보지 않았다. 분명 장구도, 노래도, 댄스도 평소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다.  


학창시절 시험 준비를 하면 제일 먼저 화학을 공부했다. 다음은 생물 그리고 수학 이렇게 다하고 마지막으로 했던 과목이 국어였다. 국어가 참 싫었다. 왜 싫었을까? 화학이나 생물처럼 명쾌한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 재미가 없었을까? 여하튼, 국어는 싫었다. 

국어공부도 싫었지만, 글쓰기는 더욱 싫었다. 사춘기 여자아이들이 시 한 편 정도는 써 볼만도 한데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으니 참. 그러고 보니 연애편지도 써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을 보면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많이 좋아했는데 그 유명한 부활, 테스, 폭풍의 언덕도 재미없어서 읽다가 그만뒀다. 글 자체가 싫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모두 싫었다.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논문을 쓰려고 처음으로 ‘한컴’ 프로그램을 깔았다. 논문 쓰는 방법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아파 더는 논문을 쓸 수 없을 때까지, 날이 훤히 밝아서 더는 눈이 스르르 감겨 모니터를 볼 수 없을 때까지 썼다. 그렇게 여섯 편의 논문을 썼다. 문서작성이 처음이라 너무 힘들었고, 글쓰기를 싫어했기에 재미는 없었지만, 학위를 받으려고 겨우 어쩔 수 없이 썼다.    

 

그런 내가 글을 쓴다. 아마 예전에 나를 조금 안다는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너무 재밌다. 글을 쓰고 싶어 잠을 설친다. 자다가도 일어나 캄캄한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연애 때 아침에 절로 눈이 뜨이듯 아침에 눈이 번쩍하고 뜨인다. 글이 술술 그냥 써 내려간다. 그렇게 국어를 싫어했고 글쓰기를 싫어했던 내가 어쩔 수 없이 논문을 쓰면서 글쓰기가 늘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니 술술 쓰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글쓰기가 재밌다.


‘무대뽀’도 재미없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재미없어서 그만둔 게 아니라 잘되지 않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어지면서 그만둔 것이었다. 

누가 “재밌는 일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잘하는 일을 하라” 그래야 재밌고,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 

재밌다고 해도 잘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오래 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일은 취미로 하고 직업으로는 잘하는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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