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스럭 Jun 17. 2022

바다

그는 바다로 나아갔다. 멀고 먼 바다로. 카프카의 얼어붙은 바다. 5대양 6대주의 바다. 김기림의 나비가 날아서 건너다 지친 바다. 헤밍웨이의 노인이 표류하는 바다. 누군가 발목을 끌어당길 것 같은 까만 바다. 열두 살 때 통영에 처음 가서 민박집 커튼 사이로 보던 바다. 기억에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여행 속의 바다. 다큐멘터리 속의 바다. 정보의 바다. 탈옥수들이 헤엄쳐 건넜다는 바다. 고래들이 살고 있는 깊은 바다. 지하상가 마트에서 찢어지게 울려 퍼지는 히트곡 노랫말 속의 바다. 짜고 뜨거운 여름 바다. 근교의 겨울 바다. 원룸 찬장에서 꺼낸 김 포장지에 그려진 바다. 얼음이 부서지는 북극의 바다. 샌들 한 짝이 파묻혀 있는 바다. 발자국을 찍을 모래사장이 없는 바다. 성수기에 하루에 오만 명이 다녀가는 바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방문한 적 없는 바다.


통통 위아래로 떠가는 튜브 하나만 남았다.

이전 07화 포름알데히드 속의 상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