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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Aug 17. 2022

여름 하늘

지난한 장마가 끝나고 마침내 하늘에는 형상들이 떠올랐다. 여름이 깊어져가는 것은 구름의 모양에서   있다. 오후의 장막이 열리면 아낌없이 풍만하고 두껍게 부풀어오른 구름들이 높은 하늘 속에서 서로 몸뚱이를 맞대며 퍼레이드를 펼친다.  순서는 말들의 차례이다. 마차를 끌고 달리는 아폴론의  마리 말들이 불타는 발굽으로 구름 가장자리에 불을 붙인다. 천국에 틈을  것처럼 빛이 쏟아져나온다. 뒤를 이어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끄는 크산토스가 뒷발을 차올린다. 충직한 신마(神馬) 적들이 주인을   없도록 딛는 곳마다 뭉게구름을 만드는데,   천둥을 머금고 있는 것들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병사가 끈기 있게 벼락을 창처럼 겨누고 기다리는 그늘도 있을 것이다. 사냥개가  헤카베가 입을 크게 벌리고 짖는다. 뒤이어 커다란 바퀴를 달고 언덕이 통째로 하늘을 달린다.  위를 떠가는 소동물 떼가 등장한다. 호주의 오리너구리와 남아메리카의 카피바라, 토끼와 멧쥐들이 코를 킁킁대며 바쁘게 하늘을 탐색한다. 바다 생물들도 있다! 요나를 삼킨 거대한 고래가 에이하브 선장의 다리를 토해 낸다. 망둥어와 문어가 우그러진 머리를 꿈틀대며 바닷바닥에 흙구름을 일으킨다. 부산스럽게 굴다가 대열에서 멀리 떨어져나온, 스페인 궁정화  왕의 발치에서 샴페인 거품을 핥아먹던 작은 개 이리저리 뛰어가며 재롱을 부린다. 이상하지만 자동차와 바나나, 자전거의 모습도 보인다. 모두가 급할 것 하나 없다는 고고한 태도로 천천히 흘러 높은 고층건물 뒤로 사라져간다.

사람들이 걷다 말고 여름의 하늘을 찍는다.

그 모습이 사뭇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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