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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Aug 17. 2022

포름알데히드 속의 상어

시선 A

미술관을 자주 찾는 남자가 있다.

첫눈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체구, 마음만 먹으면 전시실을 지키는 경비원들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만한 거대한 체구이다. 그러나 그의 앞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의 눈빛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숨통을 끊어버릴 준비가 된 눈빛이다. 매년 한두 번씩 남자는 박제된 상어 수조를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다. 이것은 도시에서 가장 정확한 거울이지,라고 그는 생각한다. 나약한 사람들은 박제된 상어를 보며 공포를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가 상어를 마주하며 느끼는 것은 영원히 자기 자리에서 군림하는 최상위 포식자의 무자비하고 고요한 의지이다. 여느 때처럼 다시 미술관을 방문해 상어 앞에 선 남자의 미간에 잠시 어리둥절함이 서린다. 그는 도슨트를 불러 물었다. 뭐가 달라진 거죠? 도슨트는 말했다. 보고 계시는 작품의 수조 안에 들어 있는 상어는 여러 번 교체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몸이 썩고 분해되었기 때문이죠. 1993년에는 껍질만 벗겨내서 유리섬유 틀 위에 옮겨 붙였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에는 보수 작업을 거쳐 새로 잡은 상어로 바꿔 넣었답니다. 남자는 그가 지난 몇 년간 유리섬유 위의 가죽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선 B

미술관을 자주 찾는 소녀가 있다.

소녀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만 가질 수 있는 상상력과 연민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모의 손을 잡고 방문한 미술관에서 소녀는 상어 수조를 보면서 생각에 빠진다. 저 상어는 멈춘 시간 속에 붙잡혀 있구나! 불쌍하기도 해라. 소녀는 상어가 무섭지 않다. 그녀는 유리 수조 앞으로 가까이 걸어가 단추처럼 흐리멍덩한 눈동자 속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작은 손가락을 들어서 두꺼운 유리를 톡톡 친다. 그 순간 멈춰 있던 거대한 시간의 파도가 한 번에 밀려와 상어를 풀어준다. 물바다가 미술관 전체를 삼키고 상어는 굳었던 몸을 꿈틀대며 크게 기지개를 켠다. 무시무시한 이빨이 터널처럼 나 있는 입을 벌리고 거대한 턱으로 소녀의 머리통을 물어 삼켜 버릴 것 같은 순간, 상어는 직감적으로 자신을 풀어준 것이 소녀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뻗고 있는 마법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을 느낀다. 상어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힘차게 헤엄쳐서 먼 바다로  돌아간다. 소녀는 자신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그녀를 이끄는 이모의 손을 잡고 옆 전시실로 이동한다.


시선 C

미술관을 자주 찾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종종 두 다리가 젖은 모래기둥처럼 느껴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휴식, 점심시간을 틈타 건물을 나와 잠깐 공원을 도는 것, 근처의 미술관에 들어와 화장실 부스 안에서 문을 걸고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여기를 언제든 떠날 수 있어. 언제든... 언제든... 그녀는 쓰지 않은 변기의 물을 내리고 나와 손을 씻는다. 여자는 머리를 다듬고 손을 털며 출구로 향하다가 상어 수조가 있는 전시실을 발견한다. 그녀는 수조 가까이로 걸어와 허리를 굽혀 작은 플래카드에 적힌 작품의 이름을 읽는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여자는 얼굴을 유리 가까이 대어본다. 상어 가죽의 잔주름은 무기물처럼 굳어져 있다. 죽음의 불가해한 입속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작품의 이름을 몇 번 더 곱씹어 본다. 그리고 이내 다시 허리를 펴고, 오후가 내뿜는 생명의 소리가 가득한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외

미술관에는 상어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두 번 교체되었고 한 번은 껍질이 벗겨져 유리섬유 위에 덧씌워졌다. 그는 매일 사람들이 전시실에 들어와 자신의 앞을 오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하고 짧게는 몇 초간, 길게는 몇 시간씩 그의 주위를 맴돈다. 그는 하나의 아이디어이다. 아이디어는 죽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데미안 허스트, 1991, 상어, 유리, 철골, 213x518x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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