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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Aug 17. 2022

코미디의 왕

한때 코미디 시리즈의 왕으로 불렸던 방송작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신작에는 ‘충분히 웃기지 않다' 혹평이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역대 최악의 작품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은퇴나 해라, 감이 떨어졌다 등의 악플이 연이어 달렸다. 예상치 못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충격에 빠져 매일 새로고침을 누르며 괴로워하던 노스트라다무스는 어떻게 해야 ‘충분히 웃긴 작품'   있는지 고민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이상 무엇이 사람들을 웃게 하는지 이알고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시대에 뒤쳐져버린 것이다. 아니, 시대의 코드는 고사하고 자신조차도     시원하게 웃은 기억이 없었다. 입이 크게 벌어지고 뱃속부터 시원하게 터뜨리는 웃음이 무슨 느낌인지 기억나지가 않았. 웃음을 잃어버린 코미디 작가라니! 나조차 웃음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남을 웃길  있겠어! 노스트라다무스는 절망한다.

그는 곧 절망을 멈추고 외출 준비를 했다. 그는 긴 산책을 나갈 것이다. 웃음을 찾아서 말이다. 도시 속에서 포착한 사람들의 가장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순간, 날것의 웃음들을 포착해 작품에 적어 넣으리라...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도시에서 웃음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사장 옆을 지나고 시장 거리를 지나고 핸드폰 대리점을 지나며 마주친 사람들은 저마다 찡그린 표정이거나 지쳐 보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유리창 너머에도, 총으로 좀비를 쏘는 게임을 하는 아케이드에도, 없다. 그는 극장가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표를 구매해서 들어간 영화관 안에서도 관객들은 저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극장에서 나오면서 사람들은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별점을 매겼다. 2.5점. 완전 별로. 시간이 아까움......


네 시간이 넘도록 웃음을 찾아 헤매다 보니 노스트라다무스는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말랐다. 생수를 한 병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 삼다수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카드를 꺼내려던 그는 빵과 라면 코너 사이에서 두 명의 학생들을 보았다. 둘은 입꼬리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크크크크 하고 막 웃음이 터지려는 찰나인 듯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두 사람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드디어 웃음을 찾았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 두 학생은 이상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수상한 사람을 보고 찡그리며 뒷걸음질쳤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음의 순간이 사라졌다. 머쓱하고 민망해진 노스트라다무스는 문득 몰려오는 피로에 패배감을 느끼며 편의점을 나서 집 방향으로 걸었다.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회용 우산이라도 하나 사서 나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때 무더운 공기를 가르고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것은 확실하고 시원한 웃음소리였다. 웃음소리는 허공을 타고 고층빌딩들 위로 솟아올라 하늘로 사라졌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웃음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를 스치고 가는 사람들의 우산의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횡단보도에 멈춰 선 그를 향해 차들이 빵빵거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서 오토바이 불빛과 버스의 우르릉 소리가 밀려들었다. 횡단보도를 계속해서 오가며 사거리를 빙빙 돌았지만 웃음소리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고 계속 들려왔다. 입고 있던 옷은 이미 쫄딱 젖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지치고 피로해서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함께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는 화답하듯이 더 크게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8층 오피스텔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별 웃기는 사람들이 다 있구나,

하고 창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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