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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Aug 17. 2022

소리 없이 전해지는 것들에 대한 짧은 기록


눈의 언어는 침묵이다. 도시의 모든 우르릉과 덜컹거림을 증폭시키는 호우, 크게 웅얼거리면서 떠도는 강풍과는 다르다. 눈은 높이도 깊이도 없는 하늘로부터 조용히 내려와 지상에 쌓인다. 그러나 그 해 겨울 사마라 시(市) 위로 내리는 눈은 그저 조용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눈은 소리를 덮으며 쌓이는 것 같았다. 물을 머금는 스펀지처럼 도시 안팎의 소음을 조금씩 빨아들였다. 자동차의 경적, 배기를 뿜으며 달리는 오토바이의 진동, 바람이 불 때마다 요란하게 울리던 철조망의 소리까지 모두 흡수되었다. 소리를 삼키는 눈의 기이한 속성은 공기를 타고 도시 곳곳으로 뻗어갔다. 손뼉은 치자마자 무음 속으로 사라졌고 바로 앞사람의 말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눈송이는 며칠 밤낮을 계속해서 내리며 두툼한 러그처럼 쌓였다. 이내 도시 전체가 두툼한 침묵에 둘러싸였다.

소리가 사라진 도시에는 급한 대로 빠르게 수어가 보급되었다. 기초 수화는 재난문자 QR링크로, 유튜브로, 이윽고 뉴스 채널에서도 매일 공익 안내문처럼 상영되었다. 처음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갖춘 방송 보도가 이루어졌지만, 3주가 넘어가자 이윽고 사마라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전부 무음이 되었다. 바깥세상은 사마라에서 전해져 오는 영상을 링크로 주고받으며 신기해했다. 도시의 사대문은 거대한 눈덩이처럼 얼어붙었다.

눈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자주 밤에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완전히 혼자 있는 저녁시간이면 가끔씩 두려움이 찾아왔다. 손뼉을 치거나 아, 하고 소리를 내어 보아도 머릿속을 울리는 둔탁한 공명 외에 무엇도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낯선 고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깊은 고독을 심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눈 속을 걸어서 이웃의 집으로 갔다. 걸어가는 길은 고요하고 희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소용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등불을 들고 창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이웃이 문을 열어 주었고, 함께 이웃의 식탁에 앉아 보내는 저녁시간은 조금 더 견딜만하게 느껴졌다.

E는 대기실의 거울을 보며 작은 나비넥타이를 클립으로 달고 좌우가 맞도록 매만졌다. 그는 오늘 도시의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소리가 사라진 후로 교향악단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기약 없이 내리는 눈이 그치기까지는 계속해서 그럴 것이었다. 그는 단원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한 번의 공연을 준비한다. 교향악단은 침묵 속에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을 연주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짧은 공명의 찰나 외에는 귀에 들리는 음악이랄 것이 없지만 단원들은 지휘하는 E의 손끝에 집중하며 침묵 속으로 활을 밀어 넣었다. 연주를 마치고 몇몇은 눈물을 흘렸고 E에게 와서 꼭 껴안아주는 단원들도 있었다. 이후 그들은 악기를 내려놓고 제각각 다른 생업을 찾아갔고, 몇몇은 도시의 봉쇄가 풀리자 바깥으로 이주했다. 몇몇은 완전히 연주를 그만두었다.

이상한 눈은 처음 쌓이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꼬박 지나서야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얼음 틈으로 물이 한 방울씩 똑, 똑 새어 들어오듯 조금씩 도시에 소리가 되돌아왔다. 그 사이 바깥세상에서 도시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고, 기상학자도 과학자도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소리 없이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1년간 멈추었던 도시의 소음 속으로 다시 섞여 들어가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개중에는 계속해서 이어플러그를 꽂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게 37년 전에 그 도시에서 녹화한 거라고?"

모니터의 영상을 보며 동료 D가 되물었다.

"그래. 눈이 내리는 기간 동안 딱 한 번 공연이 열렸는데, 도시 사람들이 모두 와서 들을 수 있도록 콘서트홀을 개방하고 연주를 했다고 쓰여 있어. 관객이 몇 명이었는지는 안 나와 있지만..."

A는 대답했다. 그는 지역 평화기념관의 개관 행사 프로그램 담당으로 대강당에서 상영할 오프닝 작품을 고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바로 그 점이 핵심이야."

A는 말했다. 둘은 침묵 속에서 연주하는 관현악단을 바라보았다. 활과 어깨와 손끝이 대열을 맞춰 움직이는 모습은 연주라기보다 군무 같았다.

"연주자들의 표정을 봐. 이중에는 정년을 앞둔 사람들도 있다고 했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연주를 자기 귀로 들을 수 없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약속을 따라서 정성스럽게 연주하는 거야.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평화라는 주제와 잘 맞지 않아?"

D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그래. 그런데 소리가 없는 한 시간짜리 영상을 메인 홀에서 상영할 수는 없지 않을까. 취지는 좋아. 흥미로운 자료를 잘 찾았어."

그는 격려하듯 A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프로그램실을 나서며 말했다.

"단원들 중에 아직 살아있는 분들이 있으면 인터뷰를 해볼 수 있는지 알아봐 줄래? 음성을 따서 틀 수 있을 것 같은데."

A는 바퀴 의자를 돌려 다시 모니터를 보고 앉았다. 연주는 어느새 <관현악 모음곡>의 3번 순서로 접어들고 있었다. 들을 수 없지만 어쩐지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고요하게 활을 켜는 단원들의 어깨와 팔이 물결지는 모양과, 선율에 맞춰 뜨고 감는 눈꺼풀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도의 표정처럼 보였다. 그런데 소리 없는 도시에서 연주된 교향악 연주는 과연 연주된 것일까, 연주되지 않은 것일까...…..


A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들은 것일까, 듣지 않은 것일까그는 사마라에서 소리 없는 울음으로 태어나 고요한 겨울을  해로 보낸 아이들   명이었다. 영상 속에서 그의 어머니는 가장 왼쪽, 둘째 줄에 바이올린을 들고 앉아 있다. 앞줄의 단원들에게 가려 부른 배가  보이지는 않는다. 고요 속에서 정성스럽게 활을 켜며 연주에 맞춰 뛰는 심장 박동 소리는 A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의 귀에도 점점 선율이 선명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상은 점점 아득한 기억으로, 이내 그리운 마음으로 승화되어 눈처럼 내렸다. A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단축키를 눌렀다. 통화 연결음으로 G선상의 아리아가 흘렀다그는 알지 못했지만, 찬 공기 속에서 아름다운 눈송이가 소리없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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