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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Aug 23. 2024

지겹고 지치는게 삶인데 네가 있기에

에픽하이로 문학하기 ‹사진첩›

힘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에픽의 눈물나게 거친남자, Mithra Jin!

에픽의 그나마 제일 잘생긴, DJ Tukutz!

에픽의 뭐, 하하 이젠 다 알잖아, Tablo~!

그리고 너, Yeah, High Skool~

모두가 물었지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꿈은

부러진 날개로도 날 수 있을까 눈물

삼키고 (Under 터널) 끝에

돌아보니 아직도 심장이 터질듯해 (Hey)

절망했어 눈감았어

어딜가든 무시당했어

몸과 맘도 상했어 (Uh)

죄인같던 무명시절의 나

내 가슴에 사는데 설마 잊혀질까

I Never Change 난 기억해

내곁에 그대가 준 사랑이란 큰 기적에

감사하는만큼 네게 다 줄게

네 가슴 아픈 과거

헛되게 하지 않을게

어느새 인색해진 사랑이란 단어

이젠 알어 너를 위해서

참아가며 아꼈다는거

나의 너 My Helena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그대와 (Ha)


에픽하이의 노래 ‹사진첩› 가사 일부



방이 하나뿐인 집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형과 나, 부모님이 엉켜 잠들던 방은 시간마다 역할이 바뀌었다.


하루에 세 번, 방은 식사 공간으로 변했고, 시험 기간일 때는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그리고 밤에는 가족 모두가 잠드는 공간이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누나가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왔을 때, 아버지는 창고 공간을 조금 터서 누나가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방은 형이 쓸 수 있는 방이 되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쓸 수 있는 방이 되었다. 그 방의 천장에선 종종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고, 창문 밖으로 넓게 난 슬레이트 처마에선 족제비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작은 슈퍼를 했던 우리 집의 구조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방과 방을 제외하면 절반은 어머니가 장사하는 슈퍼였고, 절반은 타일공이자 농사를 짓는 아버지의 잡다한 공구들이 한 데 뒤섞여 있는 창고였다.


후에 장사를 접고 터를 옮겨, 지금 살고 있는 고향 집도 처음에 방은 하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내 방을 만들려 특별하게 구들난방식으로 지었다. 방고래를 만들고 구들장을 깔면서 아버지는 내게 "너는 이제 고생길이 열렸다."라면서 웃으셨다. "너 이다음에 작가가 되고 싶다며, 경험이 많아야지"라고 장난스러운 말도 하셨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방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만 겨울을 날 수 있는 온돌방이었고, 늦여름에서 가을이면 아버지와 함께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와야만 그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지금 아랫목은 장판이 이미 많이 탔다. 불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 장판이 지도를 그리며 녹았지만, 한겨울에는 내 온돌방에 불을 세게 지펴 가족 모두가 등찜질을 했다. 뜨거운 온기를 그나마 오래 견딜 수 있는 아버지는 아랫목에, 어머니가 그다음, 형과 나는 최대한 윗목에 가깝게 누워 대화를 하고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그 방의 한 면은 책으로 가득 꽂혀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방학 때마다 내려와 나는 그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방이었다.


여름방학 때는 시원하게 문을 열어 놓고 있었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창문 밖에 아버지가 심은 포도나무에서 익은 포도 향기가 깊이 들어와 퍼졌다. 겨울방학 때는 불을 지피는 것과 매일매일 전쟁이었다. 학기 중엔 없는 나 대신 아버지가 틈틈이 가져다 놓은 땔감으로 불을 지피는 것, 이것이 내가 잠들기 위해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여름과 겨울 사이 습기를 머금은 아궁이와 구들장에 불을 지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얼마 후면 방바닥은 따뜻해졌다. 나는 그렇게 따뜻해지고 있는 방바닥을 사랑했다. 엎드려 끌어안듯이 자세를 취하고 방바닥에 귀를 대고 있으면 바닥 아래에서 연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좋아 방바닥을 자주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내 방이 있지만, 아직도 나는 고향에 내려가면 가족들이 다 같이 한 방에서 잠드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이 얘기하다가 잠들 수 있는 시간이 좋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땐, 군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고생한다고 말해줬을 때가 좋았고,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다 취한 기분에 같이 널브러져 잠든 것도 내겐 좋은 추억이고 시간이다.


각자의 사생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낮을 보내다 밤이 되면 다시 한 방에 모여 잠드는 것. 나는 이 과정을 가족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시간으로 기록한다. 코를 골지 않던 어머니가 어떤 날은 코를 골며 자고 계신 것, 종일 시멘트와 타일 가루에 뒤덮여 일하고 온 아버지가 앓다가 잠든 것. 때로는 등을 보이고 주무시는 두 분의 모습과 때로는 우는 것을 감추면서 잠드는 모습까지.


한 방에서 같이 잠들었기에 나는 그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겐 가족이 중요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픔이 내겐 중요한 성장이었고 마음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이렇게 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전화를 끊고 숨어서 울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불효자여서, 내가 배운 아픔과 고민과 질병이 아버지의 아픔과 고민과 질병 같아서.

마음과 기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오는 문장의 힘을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의 힘으로 하루를 또 살고 있다. 내 방을 보는 것처럼, 내 방으로 가는 길에서 보였던 어머니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과, 같이 잠들었던 그런 모습이 이제는 그리울 일로만 남을 것 같아, 또다시 마음과 기분이 하루를 휩쓸고 지나간다.


에픽하이의 노래 <사진첩>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어지럽고 미친세상인데 (삶이 나를 괴롭히는데) / 지겹고 오 지치는게 삶인데 (그게 우리네 삶인데)

나 오늘도 (내일도) 미소짓고 사는게 (나 그렇게 살아가는데) / 너가 있기에, 너가 있기에


힘을 내고 싶을 때마다 이 노래를 자주 꺼내 들었던 건, 어쩌면 가족과 같이 한 방에서 잠들며 보낸 내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의 시간에, 이 노래를 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시절과 상황이 떠올라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 그래 그때가 좋았지,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을 견디도록 하는 조금의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노래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사가 또 하나 있는데, 에픽하이의 노래에서 종종 등장하는 "I Remember back in the day"라는 가사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이 가사의 의미가 나로서는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한 이전의 경험과 아픔, 상처를 비롯해 가족이 내게 준 사랑을 다시 들추어 보는 시간이 내겐 지금을 견뎌내도록 하는 일이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예전에 친구들과 같이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의 «침묵과 한숨»(2020,08.21.)이라는 에세이인데, 오랜 검열을 견디며 글을 써나간 옌롄커가 생각한, 중국과 문학 그리고 자신의 글쓰기와 가치관을 담아낸 책이다. 중국에서의 금서 지정과 엄격한 통제 그리고 자기 검열의 세계에서 문학을 고민하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내가 앞으로 해나갈 문학과 닿을 수 있는 지점이 많아 진지하게 읽다가 가볍게 읽다가를 반복한 책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세월은 사람을 비켜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이 두루뭉술한 문학적 반성문에서 말한 것들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반성하고 사유해나갈 것이다. (...) 사유와 각성과 수정을 유지하고 추구해나갈 것이다.

이 문장들 사이에 내 숙제도 놓여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계약직 직장을 끝내고 고향으로 잠시 내려갔을 때, 이제 안정된 곳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머니의 말에


"앞으로 5년은 더 힘들어질 거예요"라는 대답을 퉁명스럽게 내뱉었던 나는, 그 말을 한 직후에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과 내가 해나갈 문학이라거나 써나갈 문장이라거나 시를 대하는 마음, 다짐들에도 조금은 의연해지려 노력했었다.



지금은 또 어떤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더 단단해져야지 하는 마음도 모두, 여러 해를 보내고 견디고 있다.


시만 있으면 더 바랄 것도 없겠다는 마음으로, 하늘이 흐리게 보인 날도 많았다. 내가 쓴 시와 문장 안으로 기꺼이 투신한 적도 많았다.


사람과 상황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노래를 잠들 때까지 듣거나 같은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에픽하이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에픽하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잡은 때가 많았고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 때도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에픽하이 노래만 틀어놓은 적이 많았다.


이 정도면, 내가 에픽하이의 가사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이 듣고 싶은 에픽하이 노래♪

에픽하이 3집 리패키지 앨범 «Black Swan Songs»(2006.02.10.)의 타이틀곡 ‹사진첩›*.

(*작사: 미쓰라진, 타블로 / 작곡:DJ 투컷)

https://youtu.be/4Hpwni06iws?si=48WfLPrVPmVgC5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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