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세상 모든 기준은 관심이 있느냐와 관심이 없느냐의 문제로 불린단다. 그렇게 따지면 사람도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과 전혀 관심이 안가는 사람 대략 그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나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그 사람과의 인연은 모든 게 끝이다. 그러니까, 누구랑 나는 줄 긋기가 되어있는지, 괜히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한 번 체크해 보자. 누구는 관심 가는 사람이 생기면 토할 것 같다고 한다. 누구는 관심 가는 사람이 생기면 자꾸 목이 마른다고도 한다. 관심 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 관심 가는 사람의 행동 하나를 기억하자.
이 가을에는. 그렇게 하자.
2008년 8월 28일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오프닝 멘트
중학생 때 녹음했던 라디오 파일을 발견한 이후론, 가끔 날짜에 맞춰 그날의 녹음파일을 들으며 잠들곤 한다.
나는 풋사랑과 첫사랑의 기점을 구분한다. 두 사랑 모두 내 마음의 성장에 있어서는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름의 철학적인 의미를 각각 부여하면, 현재형과 미래형으로 나뉜다. 풋사랑은 내가 성인이 되기 이전, 이성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이다. 여기에는 당장의 사랑이 우선된다. 당장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고 당장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 당장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당장 그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내게는 풋사랑이다.
내게 첫사랑의 의미는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한, 첫 이성이다. 좋아하게 된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그려보는 것,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는 것. 이런 마음을 처음으로 가진 순간이 내게는 첫사랑으로 기억되었고 그렇게 정의된다.
이 사람과 같이 보낼 미래를 처음으로 상상해본, 내게 첫사랑은 스무 살에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였고, 그 사람은 나보다 일 년 위 선배였다. 이렇게 설명을 시작하면 어떤 로맨스 영화의 시작점이 되거나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대할 만한 이야기가 될 수나 있을까 싶지만,
첫사랑은 내게 아픈 기억이다. 장난처럼 말하면 에픽하이의 노래 Love Love Love 가사에 몇 개나 해당될까 싶을 정도로. 아픔과 상처를 받은 기억 그리고 그만큼 내가 사랑하는 감정을 쏟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있나요 사랑해본 적 영화처럼 첫 눈에 반해본 적
전화기를 붙들고 밤새본 적 세상에 자랑해 본 적
쏟아지는 비 속에서 기다려 본 적
그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본 적
몰래 지켜본 적 미쳐본 적 다 보면서도 못 본 척
있겠죠 사랑해본 적 기념일 때문에 가난해본 적
잘하고도 미안해 말해본 적 연애편지로 날 새 본 적
가족과의 약속을 미뤄본적 아프지말라 신께 빌어본 적
친굴 피해본 적 잃어본 적 가는 뒷모습 지켜본 적
미친 듯 사랑했는데 왜 정말 난 잘해줬는데 왜
모든 걸 다 줬었는데 you got me going crazy
죽도록 사랑했는데 왜 내 몸과 맘을 다 줬는데
모든 걸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
혹시라도 마주칠까 자릴 피해본 적
보내지도 못할 편지 적어본 적
술에 만취되서 전화 걸어본적 여보세요 입이 얼어본 적
있겠죠 이별해본 적 사랑했던 만큼 미워해본 적
읽지도 못한 편지 찢어본 적
잊지도 못할 전화번호 지워본 적
기념일을 혼자 챙겨본 적 사진들을 다 불태워본 적
이 세상의 모든 이별 노래가 당신 얘길거라 생각해본 적
미친 듯 사랑했는데 왜 정말 난 잘해줬는데 왜
에픽하이의 노래‹Love Love Love› 가사 일부
지난 기억이고 나는 그 사랑으로,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사랑에 관해서는 걱정과 고민이 많고 그리고 내가 과연 좋은 사람인지, 좋은 남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많은 고민이 앞선다.
첫사랑에 대한 괴로운 마음으로 잊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병대에 입대했을 때, 그곳에서 내가 처음으로 했던 다짐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만 커지는 일이 됐었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홀로 설 수 있도록 나는 나를 더 강하게 옭아맸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랑을 더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헤어지는 날이 많을수록 괴로워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휴가를 나오는 것도 싫어했다. 휴가를 보내는 동안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복귀한 다음날에 내가 문득 울고 싶기라도 한다면. 나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은 옆에 없을 테니까 그 마음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종의 도피처였다 내게 군대는. 오히려 밖에 나오는 것이 싫었다. 세상은 이렇게나 밝은데, 부대로 복귀한 내 공허함에 대해,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 힘들었으니까.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읽은 책을 한 아름 싸들고 간다. 무엇인가에 대한 불안함인 것인지 그리고 고향에서의 내 책방과 책장에 책을 가지런히 정리해야 풀리는 마음인 것인지 아무튼 나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책을 싸들고 간다. 두세 권일 때도 있고 가방 가득 무겁게 들고 갈 때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인용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 책은 고향의 내 방 책장 맨 아랫줄에 꽂혀있다. 나는 내 방의 책장에 꽂힌 책들의 등을 멍하게 보고 있는 것을 애정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의 등을 보고 있으면 어떤 책은 선물해 준 사람을 떠오르도록 하고, 어떤 책은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내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면서 책이 꽂힌 위치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된다. 또 하나 말해보자면, 군대에 있을 때나 대학생 때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전화해, 내 방에 들어가면 책장의 어느 위치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데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리거나 어떤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찾아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튼, 지금 가져와 다시 읽고 싶은 책은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쓴«사랑의 단상»이다. 나는 이 책을 군대에서 읽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에 대해 나 스스로를 생각하고 정리해 보려고 읽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대표적인 말로 소개되는 롤랑 바르트의 책에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말들이 많다. 후에 고향에서 책을 가져와, 앞으로 연재될 글 어딘가에 문장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
급한 대로 인터넷에서 찾은,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문장은 이렇다.
아토포스 ATOPOS.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아토포스로 인지한다. 이 말은 예측할 수 없는, 끊임없는 독창성으로 인해 분류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매혹시키는 그 사람은 아토포스다. 나는 그를 분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내 욕망의 특이함에 기적적으로 부응하러 온 유일한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투적인 것에도 포함될 수 없는 내 진실의 형상이다.
당장은 저 문장들의 뜻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분류할 수 없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런 때에 그 사람의 존재는 분명 내게 분류될 수 없는 "독특한 이미지"였다.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그 사람을 규정짓고, 확신하고, 분류할 수 있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포토스라고 생각될, 내 마음의 정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방법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내 마음을 점검해 보고 정리해 보는 일이 내게는 내 마음을 진단하고 이후의 사랑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맑은 하늘에서 예쁜 모양의 구름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정말이지 그 구름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한참이나 내 존재를 잃어버릴 만큼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한동안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과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랑을 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인지 바라보는 것. 사랑을 할 때 나는 어떤 말을 자주 쓰고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어떤 생각을,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
이렇게 느끼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랑에 자신이 없다, 배우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라는 말들로 스스로를 합리화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종종 방황하기도 한다.
♪같이 듣고 싶은 에픽하이 노래♪
에픽하이 4집 앨범«Remapping The Human Soul»(2007.01.23.) 중에서 ‹Love Love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