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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Sep 06. 2024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에픽하이로 문학하기‹우산(Feat. 윤하)›

지금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얘기를 들어주고 하소연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희망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싶을 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과 걷는 길목에 조금씩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생각때마다 종종 에픽하이의 노래 ‹우산›을 들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 대신 노래가 울어주는 것 같았다. 나 대신 한숨을 쉬어주는 것 같았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별이 좋아 천장에 별들을 붙인 때가 있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배울 즈음, 시련을 겪고 있거나 실연을 당한 배우들은 드라마에서 으레 하늘을 봤다. 그러면 좀 나아질까 싶어 어린 나도 하늘을 보기 시작했었다. 마음이 어두울 때마다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고 그런 날은 하늘에 별들이 보였다. 그렇게 보낸 밤이 좋아 잠든 시간들을 나는 안다. 다시 겪기 싫어도, 천장엔 잘게 퍼지며 야광별들이 빛났고 가끔은 쓸쓸하다는 걸 알면서 하루를 산다.  


에픽하이의 노래로 네 번째 글인데, 이후에도 계속 쓸 생각이다. 그러니까 에픽하이는 나한테 문학을 해야 할 이유를 던져준 그룹이다. 그러니까, 에픽하이로 문학하는 이유를 만들어나간다 나는. 이렇게까지 내가 에픽하이의 노래들을 들으며 견딘 순간이 많은 것은 어차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뭘 해야 하나, 꿈을 찾고 싶은 시기에 에픽하이의 노래 가사가 자극이 되기 시작했고, 동기부여가 되었고, 군대에 있을 때나 연애를 할 때나 아니면 연애를 하지 않을 때나, 울고 싶을 때나 에픽하이 노래를 들으면 안정이 되었다. 가사와 멜로디를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도 살아보자. 견뎌보자.


계속해서 적어나가지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내겐.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놓고 싶다. 주어진 마감을 다 끝낸 뒤에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목을 받아도 받지 않아도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같은 이유로, 오늘 읽을 책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했고 내일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게 나를 견디도록 했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고 있다. 돌아오면 나는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시를 쓰고 책을 읽는 것 이외의 일들을 놓고 싶어질 때, 홀린 것처럼 책을 읽다가 책이 끝나고 다시 현실을 마주할 때, 사회의 이슈와 문제와 갈등들이 안개처럼 사방을 감쌀 때, 그런 순간이 힘들다. 시를 써야 하는 이유가 무력해지는 기분.


잃고 싶지 않아 자주 책 속으로, 노래 속으로 도망친다.


에픽하이의 노래 <우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윤하의 피처링으로 더해진 이 가사에 나는 자주 투신했다.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버린 나

난 그대 없이는 안 돼요


첫 시집을 얼른 내고 싶어, 시인의 말을 썼다가 지운 날은 마음이 무거웠다. 연필로 쓰고 지운 자국에 같은 말을 그대로 써넣으며 다짐하기도 했다. 이 말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쓰자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쓰는 사람이 되자고.


시를 생각하다 엎드려 잠든 날은 악몽을 꾸었다.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런 날은 문학이 무거웠다. 얼른 시집을 내고 싶은 마음을 다시 지우개로 지우고 싶었다. 그런 날에는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며 마음을 다독이고 싶었다.


고향 집 앞마당에는 한 그루의 내 나무가 있다. 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 아버지가 기른 소나무 한 그루다. 제법 늠름하게 자라 조경사에게도 꽤 높은 가격을 제안받았다고 했었던, 내 나무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나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태어난 나와 같이 자라준, 나와 같이 자란 나무여서 그런가. 아버지는 그 소나무를 아낀다. 거울처럼 보는 일도 많았다 나는, 내 나무를 닮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더 멋지게 살아서 나와 같이 잘 자랐으면, 잘 크고 있다고. 우리는 잘 자라는 중이라고 나와 같이 살아줬으면 하는 소나무가 있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더 크고 싶은데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잘 자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애 같은 마음이더라도,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어도 좋다. 그래야 내가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글을 통해 이런 어리광을 가끔은 부려보고 싶었다.



난 열어놨어 내 맘의 문을

그댄 내 머리 위에 우산

그대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

그댄 내 머리 위에 우산


에픽하이의 노래 ‹우산› 가사 일부



♪같이 듣고 싶은 에픽하이 노래♪

에픽하이 5집 앨범 «Pieces, Part One»(2008.04.17.) 중에서 ‹우산›*.

(*작사: 타블로, 미쓰라진 / 작곡:타블로)

https://youtu.be/NIPtyAKxlRs?si=D1N_CT4rzC0E0u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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