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졸은 몇 밤은 책으로 베개를 만들어 잠들었다. 그런 새벽엔 책베개를 몇 번 고쳐 잡으며 잠을 자곤 했다.
수그러든 마음에 외로워 웅크려 잠든 때가 있다. 시간을 견디며 잠들었던 나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여전히 나는 불 켜진 가로등 아래를 걷는 일을 종종 위로 삼고,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며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서른을 앞두고 있었을 땐,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 결혼을 앞둔 친구나 후배들이 주변에 많았다. 이런 사실들과 비교하면 나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 게 맞았다. 솔직할 방법이 내겐 글을 쓰는 것뿐이었어서, 진심을 털어놓는 일만 가득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가지고 나가 걸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게 서 있는 나는 평온했다. 한 시간을 걸어 집 앞이 가까워진, 고등학생 때의 저녁을 시골의 하늘을 떠올리는 것도 자주였다. 군인의 생활로 새벽에 일어나 공포탄과 실탄을 받고 초소에 서 있던, 하늘을 보던 내 모습과 눈빛을 그리워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검은 하늘을 보며 생각했었다. 난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사람이 되어버릴지,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은 많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검은 자세로 잠들었다. 기록할 만큼의 생각과 그런 생각들이 정리되면 글이 써질 것이라는 생각과 믿음, 고집으로 내가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떤 밤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주에 가면 별들이 더 잘 보이겠지, 우주를 떠돌며 별들을 보다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별과 달 하늘에 더 닿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밝은 하늘을 보다 밝은 하늘 아래를 살다, 검게 변한 하늘, 그 하늘에서 빛나는 밝은 별과 달을 본다는 것이 내게는 방향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깊어질 때마다 견디고 있다 괜찮아졌다 믿었다.
충분히 기억하고 충분히 그리워하면서 자주 울고 자주 생각에 빠지는 일,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서 쉽게, 마음이 무너진 때도 자주였다.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나를 살도록 한다. 나를 점검하게 하고 나를 진단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런 시간은 애초에버스를 타는 긴 시간에서 시작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버스로 45분 걸리는 등하굣길이 나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내가 전부였다. 대학생 때는 술을 마시며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혼자 술을 마신 것도 자주였지만, 선배들과 동기들과 술을 마시며 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는 등단할 수 있을까, 요즘은 그 시인이 잘 쓰던데, 에이 그 시인은 못 써, 예전 같지 않아,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들을 버릇처럼 습관처럼 말하며 보낸 밤이 많았다. 그때는 문학이 전부였다. 다른 일반 대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토익이나 토플, 각종 자격증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 내겐 문학을 하는 일, 시를 읽고 시를 쓰고 동기들과 선배들과 후배들과 문학을 말하고 등단하는 것만 목표로 보는 일이 좋았다.
뒤처졌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 때는 졸업을 하고 난 뒤였다. 내가 아닌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다 그렇게 준비하고 공부했구나 하는 마음이, 대학원을 다니고 일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너무 문학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문학을 하느라 시를 쓰느라 시를 읽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마음에 자책하곤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간 직후인 2018년 4월에 써나간 내 일기는 이렇다.
4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4년 전의 나는 병장 진급을 앞둔 군인이었다. 내일의 삶은 이미 오늘과 같은 하루의 반복으로 정해져 있었고 반복의 일상에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계급으로 지낸다는 것이 걱정 없이 살고 있는 내 모습이자 현실에 충실하며 사는 내 모습이었다. 더욱이 전역을 6개월 연기하려는 계획을 이미 마음에 품고 있던 나로서는 지금처럼의 불안과 잠을 뒤척이게 하는 고민 같은 건 먼 미래에 해도 늦지 않을 일이었다.
일본 소설가 아베 코보의 장편 소설 «모래의 여자»에선 모래늪에서 종일 모래를 퍼내며 살아야만 하는 여자와, 마을 주민들의 계략에 빠져 여자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모래를 퍼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자는 끊임없이 모래늪을 빠져나오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결국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는 모래를 퍼내는 행위에 대해서도 만족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결국 그는 모래늪을 탈출하고서도 다시 모래늪에 들어간다.
내가 군대에 계속 있고 싶었던 건, 결국 반복되는 시간과 노동 사이에서, 오늘 한 일이내일의 일이 되고 반복되는 일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시간과 노동 이외의 사색과 고민 그리고 불안 같은 것이 전혀 필요치 않은 하루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전역을 했고 대학교 복학과 졸업이 이루어졌다. 여전히 나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이제는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내 존재와 위치를 확인하고 다그치게 된다. 4년 뒤면 서른이다. 지금보다는 많은 불안과 고민을 감내하며 살아갈 나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아픔을 지니고 갈 운명임을 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이때 자주 들었던 노래는 에픽하이의 ‹빈차›였다. 오혁의 피처링이 들어간 이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로 대학원을 통학하기도 했었고, 그 시간 안에서 긴 생각을 하느라, 읽을 책을 손에 쥔 채로 학교에 도착한 적도 자주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저 가사에 내 위치를 자주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라고 반복해 읊조리는 말에, 나는 내가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 것인지, 나는 과연 좋은 어른,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듯 내뱉는 저 말에 나는 내 중심을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시를 쓰는 일과 직장에서의 일, 해야 하는 업무들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지키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욕심 모두, 지금 내 발 위에 놓여 있는, 내가 하루를 보내는 일이다.
벌어야 하는 돈 앞에서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비슷하지만, 나에게 어떤 상처를 준 사람 몇처럼, 말로 사람을 학대하고 내 이야기로 가십을 삼거나 하는 일들 모두, 일로 만난 사람 몇이 보여준 모습은 내겐 좋은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런 어른은 되지 않기로,
지금 나한테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시인으로서는 내 작품들을 꿰뚫고 보듬어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아니면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고 응원해 주는, 해리포터가 떠올라 말하자면 해리에게 시리우스 블랙이 대부인 것처럼,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등단한 지 6년이 되었다. 아직 첫 시집이 나오지 않았고 과연 내가 좋은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잘 우는 어른이 되고도 싶었다.
잘 울고, 울고 난 직후엔 괜찮은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다시 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뭘 해서 먹고살지 라는 걱정보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깊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곧 소비되고 바닥을 드러낼 돈이 걱정이었지만 곧 써지고도 지워질 문장과 시가 걱정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4년 전에 썼던 일기를 가져와 다시 읽은 것처럼, 이제 또 4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의 어른일지,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걱정되기도 하고 4년 사이에 나에게 있을 일들에 먼저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은 일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일도.
지금도 마음은 같다. 고집처럼,
잘 우는 어른이 되고 싶다. 잘 울고 잘 일어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꿈을 지키고 꿈을 생각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21년 전, 어린 내가 받은 편지에서 나는 위로를 받는다. 이때는 나이 든 선생님이셨는데, 살아계신다면, 살아계시다면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