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로 문학하기 ‹당신의 조각들(Feat. 지선)›
걷다가 잘 짜인 벽돌담을 보게 될 때. 걷다가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을 볼 때면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아마도 아빠의 직업을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인 것 같다. 가랑비가 종일 내리던 며칠 전에는 아빠 생각이 났다. 새벽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을 때, 아빠를 도와 시멘트를 나르고 타일을 붙이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의 트럭 적재함은 종일 젖어있었고 줄눈을 닦아내기 위한 스펀지도 종일 젖어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벗어놓은 작업화도. 뿌옇던 그날의 하늘이 생각났다. 빚지고 있는 기분. 시멘트를 옮기고 모래와 섞어 나르던 때만큼의 마음을, 나는 지금 그만큼을 간절하게 짊어지며 지내고 있긴 한 것일까. 빚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2024년 6월 1일의 일기)
아버지와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손을 봤다. 옆에 있던 카메라로 아버지의 손을 찍어 나중에 현상을 해봤다. 사진을 보니까 그 낡은 손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다. 아버지의 조각조각들. 다시 말해 눈이나 손이나 입 등 모든 것들은 내가 닮은 것이지 않나. 아버지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내 손으로는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을 닮게 되고 그러한 우리의 조각조각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URL: https://www.segye.com/newsView/20090314000668
겨울이 왔으면, 하는 생각으로 며칠은 지냈는데 가끔은 봄이었으면, 여름이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따듯한 방에 얼른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에 비해 이 겨울이 너무 차갑다 싶었다.
불을 지피느라 연기만 들이마시다
잘 빨아들이는 연통을 확인하고 나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편하게 누워있지 못했다. 오랜만에 지핀 불이 쉽게 꺼질까 봐
나는 이 편안을 누리고 있으면 안 될까 봐.
부모님을 모시고 시상식에 갔다 오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좋았다. 기차를 타고 오가는 동안
아들 덕분에 대구까지 가본다는 부모님의 말을 몇 번이나 더 들었고
그런 말을 듣는 동안 내 아버지로 살아가는 삶과 내 어머니로 살아가는 삶과
내 앞에 앉아있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는 일은
봄도 겨울도, 어떤 계절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을 땐
봄이었으면 여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2019년 1월 19일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