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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Oct 03. 2024

사랑하니까 불멸을 배신했죠

에픽하이로 문학하기 ‹Paris(Feat. 지선)›

"언제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생각만큼 그것이 잘 이루어지진 않는다. 아마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목마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고 있고, 쓰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나를 미워하고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몸과 마음을 기대면서도, 대체 나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걸까 초조해했다. 그게 뭘까,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데.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는데. 하지만 마찬가지로 나도 그런 방식으로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마음껏 그 말에 기대었다. 어쩌면 세상은 그런 알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조차 모르는 너무나 많은 면이 있고, 당신의 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작은 한 점에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두고, 살고 싶어 진다는 것. 좋은 글에 대한 답은 매 순간 변하지만, 그 글에 누군가가 마음을 두고 싶은 자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부디 내 글에도 그런 자리가 조금이나마 있기를 바란다.

모두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 장희원 소설가의 소설집 "우리의 환대"에 담긴 작가의 말.

이 말에 담긴 마음을 닮고 싶어 전부를 옮겨본다. 이전에 대학교 조교를 하면서 장희원 소설가를 마주한 적이 있다. 후배들이 섭외하고 모셔오는 학과 행사에, 나도 궁금해져선 맨 뒷자리에 앉았었다. 후배들 입장에선 조교님이 와서 왜 앉아계시지 했겠지만, 나와 같은 나이에. 나와 같은 해에 등단했고. 내가 등단한 대구 지역이 고향인. 그녀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궁금해져선. 앉아서 그녀의 특강을 들었었다. 마르케스였나. 레이먼드 카버였나 다른 해외 소설가였나.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녀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해서, 나도 그 작가가 생각나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곤 나를 가리켜 "어떤 작품을 읽어보셨냐"라고 묻는 그녀와 "오래전에 읽어서 당장 생각이 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나였다.


소설집을 읽다 보면 내용을 읽다가도 그 작가의 말이 궁금해져선 책의 맨 앞이나 맨 뒤를 살펴보았다. 작가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궁금해져서. 저 말에 담긴 장희원 소설가의 마음이 내 가슴에 얹혀서. 퇴근길에 생각이 많아졌었다.


나는 시를 쓸 때마다 나를 미워한다. 시보다 내가 먼저 울고 시보다 내가 먼저 무릎을 꿇는다. 그럼에도 내가 쓰는 시에. 내가 쓴 시에 누군가가 마음을 두고 있을지는 않을는지. 그런 자리와 환대의 마음을 생각하면 "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애틋해하는 마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 고이는 노란 불빛. 좋아지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기어코 이겨내는 마음. 그런 걸 나는 소설을 통해 배운다. 아주 조금씩만 성장하는 아이들과 놋쇠처럼 무거운 슬픔. 오래 들여다볼수록 단단해지는 그림자. 그런 걸 나는 소설을 통해 감각한다. 이상한 일이다. 소설 속에서의 나는 현실에서의 나보다 반 뼘쯤 더 크다. 조금 더 예민하고 소란스럽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직해지고야 만다."


- 안보윤 소설가의 장편소설 "여진"에 담긴 작가의 말.

10월 10일 목요일. 일주일 뒤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TMI지만 나는 스무 살 때, 예술대학교에 입학해 이론 수업을 듣는 첫 수업 시간 때, 꿈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물론 대뜸 발표한 것은 아니고, 당시 강사님이 꿈이 있는지를 묻기에 그렇게 답한 것이었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문학하기로 마음먹은 뒤로 내 많은 꿈 중 하나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이었다. (고 지금도 반은 농담처럼 얘기하곤 한다.)


아무튼, 일주일 뒤면 스웨덴 한림원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나는 매년 귀를 기울이곤 한다. 이번에는 어느 나라의 어느 작가에게 수상이 되었는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내가 읽어본 작품의 작가인지 내가 공부해보지 못한 작가인지. 이 작가의 매력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읽어보면서 나는 공부해보곤 한다.


2019년 겨울에는 실제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간 적이 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으로 청년미래탐험대에 선발되어, 나는 내가 스스로 탐험지를 기획하고 다녀오는 시간을 보냈다.


기획에서부터 노벨상 시상식을 보고 오는 것으로 염두에 뒀다. 등단한 내가 문학에 대해 공부하고 힘을 얻고 위로를 얻는 경로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장난스레 말했던 노벨문학상과 노벨상 시상식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여기에는 무거운 마음이 있었다.


등단 이후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예지를 통해 처음 읽었던 내 시의 사조에 대한 평은 "이렇게 쓰다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라는 어느 평론가의 문장이었다. 어떤 무거운 일들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문학에 대한 내 마음이 무너졌던 것 같다. 지금도 묻고 싶다. 그 평론가에게. 그 문장을 꼭 써야만 했는지를.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으로 신인 시인들의 시를 그렇게 묶고 재단해 평하고 싶었는지를.


종종 내가 존경하는 시인들이 어딘가에선 권력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때로 종이 하나에 편먹듯 묶어 내는 목소리가 더욱 얕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2019년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여러 소리를 들으면서, 문학이 죽은 이 사회에, 내가 이제야 발 뻗고 진입할 문단이라는 곳에서도 여러 혼잡한 목소리가 오가고 있는 모습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것도 같다.


그 김에 스웨덴에 다녀오고 싶었다. 우리 문학과는 다른, 문학의 폭을 경험하고 싶었다.


 스웨덴으로 향하면서 설렘을 갖게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나와 같이 시를 쓰고 있는 스웨덴 시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앨리스 브로는 1992년에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2016년에 첫 시집을 내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1993년생인 나와는 한 살 차이. 그리고 2016년과 2019년, 3년이라는 멀지 않은 시간을 두고 데뷔한 그와 나.


나는 꼭 만나고 싶고 얘기해 볼 만한 지점이 많을 스웨덴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사전에 메일을 주고받으며 그는 내게 "이 만남이 우리 서로를 기쁘게 할 것"이라고도 얘기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반가웠던 사람. 현지에서 내가 머물던 호텔 앞으로 오겠다던 앨리스 브로는, 자신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때로 잘 통역해 줄 친구라며 한인 3세인 헨리 송을 소개해줬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가볍게 천천히 내리는 비를 배경으로 카페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나라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눴었다.


시인이라는 꿈을 이뤘어도 생활하는 데에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고, 자괴감과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상태였다. 시를 쓰는 것이 힘들다고 자주 내비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시를 놓지 않고 계속 쓰겠다는 아집과 고집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스웨덴을 다녀오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 이 문제도 허투루 하지 않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나와 같이 짧은 시간 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눈 앨리스 브로도. 나는 여기 한국에서, 그는 스웨덴에서. 각자의 나라에서 끊임없이 시를 쓰는 것과 시의 힘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론, 지금도 변함없다. 시의 힘과 문장의 힘과 문학의 힘을 고민하며 계속해서 써나가는 것을.


"언제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생각만큼 그것이 잘 이루어지진 않는다."라고 말한 장희원 소설가나 "소설 속에서의 나는 현실에서의 나보다 반 뼘쯤 더 크다."라고 밝힌 안보윤 소설가의 말에 나는 마음이 쓰인다.


나도 잘 쓰고 싶다. 좋은 시를 쓴다는 말을 듣고 싶은 동시에, 좋은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나를 자책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문학을 벗어나면 나는 한 뼘은 더 작아진다. 현실에서는 아직 사회의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하고.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솔직하게 발설하고야 마는 모습이 된다. 시를 통해 정리하는 내 마음은 현실의 나보다 한 단계 성숙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런 게 문학의 힘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라면, 나는 언제든 기꺼이 문학으로 투신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문학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 듯한 기분. 창조주의 시선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


에픽하이의 노래를 들으면서 문학을 생각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Paris>에 담긴 가사 때문이었다. 제목인 <Paris> 자체의 의미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파리스 왕자가 있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 인물이었던 파리스 왕자는 미남이어서 큰 인기를 누렸다.


불화의 여신이었던 에리스가 그리스 신들의 잔치에 초대되지 못한 것에 화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사과를 두고 자리를 떴고, 이에 제우스는 심판관을 고르다 파리스 왕자에게 심사를 맡겼다. 이를 알고 그리스의 여신 헤라는 부와 권력을, 아테네 여신은 지혜와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 여신은 절세미인과의 결혼을 파리스 왕자에게 선물해 주기로 약속했다.


고민 끝에 파리스 왕자는 아프로디테 여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하고, 그런 파리스 왕자에게 아프로디테는 이미 다른 나라 왕의 아내였던 헬레네를 파리스 왕자에게 데려다준다. 이는 결국 헬레네의 남편이었던 메넬라오스 왕이 파리스 왕자의 나라인 트로이를 침략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그렇게 트로이 전쟁은 시작되고 마는 것이다.


지혜나 용기, 권력을 가질 영웅이라도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그리스 비극의 전개를 염두에 둔다면, 파리스 왕자의 선택 또한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운명이 된 셈이다.


타블로가 파리스 왕자에 모티브를 얻어 <Paris>의 가사를 쓴 것은 "사랑"을 "예술"로 치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삶으로서 견고해지는 예술의 가혹함에 있다. 가혹한 운명은 위험하고 잔인한 것이지만 이 가혹함이 때로는 더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치명을 견디는 것이 아닌 치명과 함께 가혹하게 살아가는 과정 앞에서 예술은 불편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과정 자체를 지나는, 예술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선택과 감당의 선 위를 걸어가는 것이 된다. 그리고 당연한 순리로 이어지듯, 선택한 이후에는 감당이라는 몫이 남게 된다.


가사 중, "그대와 눈뜨고 숨 쉬고 싶어 내 날개를 버린 걸", "팔과 다리 날개 꺾인대도 사랑하니까 불멸을 배신했죠"가 있는 것처럼.


어쩌면 문학하기로 한 이상 내 삶은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와 삶의 무게 그리고 아픔이나 고민까지도. 그리고 나는 이 길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나는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 마음을 정리해 내면을 돌보며 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도 그렇다.


요즘 들어 책에 담긴 작가들의 말에 더 공감이 된다. 작품을 읽기보다 작가의 말에 더 설레기도 한다.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몫을 잘 아는, 문학의 힘을 밖으로도 그리고 안으로도 잘 알고 있는 소설가와 시인에게 나는 마음이 간다. 그리고 나도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깊은 반대에도 내가 문학하기를 택했던 건, "팔과 다리, 날개가 꺾인대도" 문장과 글을 사랑하니까. 였다.


술에 취해 숨소리조차 차가워졌을 때

어둠 속에서 귓속에 속삭이는 그대

Epik High Oh Faith Oh Oh Oh Destiny Oh Oh Love 눈물을 막지는 못해

Oh Faith Oh Oh Oh Destiny Oh Oh Love 시간을 멈추진 못해

잊힌 낙원을 등지고 찢겨진 날개를 숨기고

저 밤거리로 다 버리고 낯선 첫 발걸음도 망설이고

눈이 부신 네온 불빛과 불현듯 내게 온 그림자

아무도 모르고 배고프고 가슴이 목을 조르고

황폐한 도시 내 손바닥에 큰 못이 이 곳이 타락의 메카 내 사랑이란 죄의 대가

하늘이 버린 별

운명도 어긴걸

그대와 눈뜨고 숨쉬고 싶어 내 날개를 버린 걸 

숨막혀 나 눈이 감겨

맘이 도시보다 숨이 차서 터져버릴 듯한 내 심장을 움켜쥐니 타서

자꾸만 퍼지는 향기로 이성의 날개는 잘리고

검은 달빛을 삼키고 어두운 밤길을 달리고

그 어떤 말도 말고 안고 날아가

어디라도 후회로 갇힌 섬이라도 심장을 도려낼 벌이라도 받아

나 참고 견딜게 바다와 산도 널 위해 가를테니

하늘 땅안에 별이 될때까지 사랑해

술에 취해 숨소리조차 차가워 졌을때

어둠속에서 귓속에 속삭이는 그대

나 이제 날아가네 내 꿈속에서

미소와 그대란 작은 날개를 가졌으니

Oh Faith Oh Oh Oh Destiny Oh Oh Love 눈물을 막지는 못해

Oh Faith Oh Oh Oh Destiny Oh Oh Love 시간을 멈추진 못해

눈이 부신 붉은 태양 지금 너를 향한 내 맘

너무 간절한 너를 택한 내 사랑은 하늘을 배반

하지만 네 품안에 사는 나

땅에 누워 미소 찾는 나

또 다른 차원에 살아가 자라 새 날개로 날아가 따라가리

저 땅 끝까지도 바다가 치는 거친 파도 팔과 다리 날개 꺾인대도

사랑하니까 불멸을 배신했죠

차가웠던 도시도 사막에도 꽃피고 다 등지고 가로등 뒤로

너와 내 사랑은 숨쉬고

술에 취해 숨소리 조차 차가워졌을때

어둠속에서 귓속에 속삭이는 그대

나 이제 날아가네 내 꿈속에서 미소와 그대란 작은 날개를 가졌으니.

나 이제 날아가네 내 꿈속에서 그대와 차가운 이 세상 다 등지고 날아가

Oh Faith Oh Oh Oh Destiny Oh Oh Love

Oh Faith Oh Oh Oh Destiny Oh Oh Love



에픽하이의 노래 ‹Paris› 가사



에픽하이 3집 앨범 «Swan Songs»(2005.10.04.)중에서 ‹Paris (Feat. 지선(러브홀릭))›*.

(*작사: 타블로, 미쓰라진 / 작곡:이현도)


https://youtu.be/XEsfzAgdzlM?si=CrpsndL64FHLgDsk


조선일보 [청년 미래탐험대 100] [83] 독서율 1위 스웨덴… 시인 권기선씨

- 디지털 시대 책·문학과 예술의 미래를 찾아서…

URL: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17/2020021700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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