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로 문학하기 ‹Wordkill›
https://youtu.be/NYrFg0YvqCE?si=c5W-TeBLuvCCJY40
숨이 막혔으면 해? 눈이 감겼으면 해?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때를 기억한다. 2010년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한국경제신문의 학생 기자로 일하고 있었고, 매일 아침 등굣길이면 터미널에서 600원과 700원짜리 신문을 사 학교에 가서 읽곤 했다. 늦게 자는 날이면 집에서 종종 시사 프로그램을 봤다. 백 분 토론 일 때도 있었고 다큐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자주 보던 프로그램은 시사와 교양을 다큐로 담아내던 «MBC 스페셜»이었다.
2010년 10월, «MBC 스페셜»에서는 2부 특집을 방송한다. 타블로의 학력위조 누명을 다룬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였다. 나와 친구 몇은 이 방송을 고대하고 있었다. 에픽하이의 멜로디와 가사를 좋아하고, 철학을 읽어내고, 타블로를 좋아했던 우리에게,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건은 심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네티즌 왓비컴즈의 잘못된 의심과 맹목적인 확언으로 시작된 누명은 네이버 카페 "타진요"를 낳았고 당시 사회에 종종 일곤 했던 고위공직자들의 학력위조 사건들 몇과 엮이며 타블로 역시 스탠퍼드를 졸업한 것이 맞느냐는 의혹은,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그저 잠깐 루머로 지나갈 뿐이라는 가벼운 가십으로 끝낸 적도 있었다.
그렇게 흘리듯 생각했던 것을 예고편 광고를 보다가 깨달았다. 정말로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다큐로 제작해 방영한다는 것에 놀랐고, 타블로가 직접 스탠퍼드에 가 교수를 만나고 졸업장을 확인하고 캠퍼스를 돌아보는 내용에 놀랐다. 그래서 기다려졌었다. 친구들과 각자의 집에서 이 편을 꼭 보자고 했던 때였다.
이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타블로가 스탠퍼드에 가서 본인이 수업을 들었던 곳을 구경하고 회상하며, 바닥에 쓰인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절망하는 사람들한테는 희망을. 외로운 사람들은 사랑을. 그리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을."
그리고 이어 다른 장면에서 타블로는 울었다. 믿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좌절과 슬픔, 원망으로.
당연한 결과로 끝이 났지만,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고 대법원 최종 판결로도 이어졌던 사건은, 피해자였던 타블로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시 병을 얻어 영면한 타블로의 아버지. 가족들의 상처는 여전할 것이다.
의혹의 시작을 그려내고, 의혹을 풀어내려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스탠퍼드에 찾아가는 타블로의 모습을 방영한 «MBC 스페셜»은, 지금까지 내가 시청한 다큐 중 손꼽을 수 있는 구성과 스토리다.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몰입하면서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편의 엔딩곡으로 에픽하이의 노래 ‹Wordkill›이 쓰인다. 타블로가 어느 악플을 보며 작사하고 작곡한 이 노래는 제목만큼이나 언어가 주는 폭력과 폭력이 꽂힐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들어간다.
(숨이 막혔으면 해? 눈이 감겼으면 해? / 모든 게 뒤틀렸으면 해? 끝으로 이끌렸으면 해?)
문학이 소중한 것은, 검은 보자기 속 어둠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는 옛날 사진사처럼 한순간 한순간 불가능을 기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어두워야 불가능이 드러나고, 내가 죽어야 문학이 삽니다. 비록 제가 지금 문학적으로 살지 못해도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제가 비록 불가능을 잊는다 하더라도, 불가능이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문학,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성복, 제53회 현대문학상 수상소감.
시란 말을 엮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시 쓰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 삶이 어떤 식으로 얽혀 있는지 알게 된다. 그 앎이 충격적일수록 시가 일으키는 효과 또한 크다. 한 편의 시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말을 엮어야 할 이유가 없다. 좋은 시는 읽는 사람 자신의 삶을 한순간 불가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시인의 통렬한 자기반성에 의해 태어난 시는 결국 독자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초래할 것이다. 은폐된 삶의 실상을 파헤치는 시 정신의 집중과 긴장은 짧고 덧없는 시가 오랜 예술 양식의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덧없고 사소한 우리의 삶은 시에 의해 구제받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견디고 살아낼 만한 것이 된다.
<고백의 형식들: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2014), 이성복, 열화당, 161.
내가 죽어야 문학이 산다는 말을 사랑했다. 어떻게 보면 신념처럼 여기기도 했다. 내가 온전히 문학 안으로 문장 안으로 투신할 수 있다면, 내가 내 마음을 견딜 이유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얘기를 쓰고 싶다. 이전 어느 직장에서는 나를 개인적인 얘기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동시에, 그들 자체가 내 얘기를 가십거리 삼기도 했다. 그들 몇도 이 글을 읽을까. 이제는 상관없다.
말하기를 글쓰기로 옮기는 사람이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 작가라면. 나는 내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과묵한 편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주로 나에게 있었던 일들이 된다.
이전에 쓴 글들을 보면 아픈 문장들이 많다. 나보다 내 문장이 먼저 울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멀어지고 싶은 생각을 한다. 사람을 만나 같이 일하면서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땐. 떨어지고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가 있지만. 그냥 아는 사람으로 끝낸다. 인사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이다 하고 지나친다.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 아랑곳하지 않을 그 사람들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음. 무시하고 싶음. 그러면서 나는 더 나아가겠다는 마음이다.)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도 몇 들었지만. 나는 적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 사람을 미워하면서 나는 산다. 미움과 증오하는 마음을 정화하려는 생각으로 책을 읽곤 한다. 미워하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종종 그렇게 책을 읽곤 한다. 시집을 읽고 좋아하는 문장을 읽고 아름다운 표현을 읽는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해서 나는 1년을 보냈다. 시를 쓰고.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고. 일 년 전의 나는 패배자였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갔다. 그리고 고향에서도 잘못을 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술만 마신 생활을 보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떤 게 나아졌는지. 본질을 묻는다면 아직 아무것도 회복하지 않았다. 그냥 산다.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채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노력을. 되찾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 시에 썼던 마음만큼이나 사람이 미워서 멀어졌다가 사람으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을 오간다.)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 아픔을 파고든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 또다시 트라우마가 되려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두려움.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에도 흠집은 생기고 보고 싶지 않은 흉터가 될까 봐 마음이 쓰이곤 한다.)
(사람을 믿어도 될까. 나는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인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한 곳의 직장에 오래 다닌 사람에 대한 마음과 그런 시간을 견디려면 사람에 대한 감정과 대화에서 오는 반응에 무뎌져야 한다고. 그래야 직장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군대 상사의 말이 떠오른다. 10년 전, 2014년의 겨울이었다.)
(그래서 종종 생각했다. 내가 시를 잃지 않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시를 계속 쓰려면 나는 계약직을 전전해야 할 것 같다고. 그게 아니면. 문학이나 언론, 연구자로서 완전한 시간 속에 나를 빠뜨려야 한다고.)
(문학하고 싶다. 지속 가능할 존재의 이유를 지니고 산다.)
(책상 위에 두고 원할 때 펼쳐 읽고 있는, 400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에는 남자와 여자. 연인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평화롭고 걱정 없는 고향에서 생활하고 싶은 아담. 자유에 대한 갈망을 지닌 채 떠나고 싶은 에블린. 1989년 독일 통일 전환기 시대, 동독과 서독 사이의 체제를 배경으로 한, 독일 작가 잉고 슐체의 장편 소설 "아담과 에블린"이다. 우리가 꿈꾸는 실존은 어떤 것이고 이주의 이유와 목적은 어떤 것을 향해 있는지. 선택에 따른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잉고 슐체는 말하고 있다.)
(이대로면 정말로 폐인이 될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서. 고깃집 알바를 했던 작년 5월. 나를 새아들이라고 말하며 맞아주고 챙겨주셨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오래 있지 말고. 다시 서울로 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는 잘 모르지만, 여기에서 아깝게 인생 보내지 마. 서울에 있던 사람이 서울로 가야지 왜 이 깡촌에서 있으려고 그래")
(한국은 아닌 것 같아 스웨덴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 시간 동안, 종종, 때때로 했다.)
(이데올로기나 선전, 선동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좋다’ 거나 ‘싫다’는 단호한 표현에는 어떠한 틈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내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의견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식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이 제스처에서 중요한 건, 신경을 쓰는 시간, (상대를 하나의 가십거리라 본다 해도) 상대방을 보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점점 더 빠르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8년 전, 대학교에서 과제로 리포트를 쓰면서 적은 이 문장이 생각나 인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저 문장들 사이를 가늠해 보면, 8년 동안 나아진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언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언행은 가볍고,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성격과 맞아떨어지는 리듬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언행은 진중하기도 사려 깊기도 과묵하기도 하다.
일상에서 쓰는 말들 사이에, 나는 어떤 사람을 함부로 규정짓기도 하고 멀리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기도 한다.
표준어가 있고 사투리가 있고, 표준어도 중요하고 사투리도 중요하듯 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힘을 믿는다. 사람마다 성격의 차이가 있듯 사람마다 언어의 차이도 있다. 대학교에서 일하며, 다양한 학생들을 마주하다 보면 나는 그 학생이 살아온 환경에서 배운 언어와, 앞으로 배워나갈 언어의 가능성에 때로 예민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당연히 건강한 언어와 좋은 언행을 가진 학생이 좋다.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고. 어린 친조카들을 생각할 때, 조카들이 나보다 더 좋은 언어를 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오늘, 야근하면서 기다리고 지켜본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방송과 소설가 한강의 수상으로 내 마음 한편을 보듬게 된 것 같다. 꿈이라고 말했던 것을 먼저 이루어준 사람과. 내가 실제로 저 장소에 가서 페터 한트케의 기자회견을 본 때의 생각도 나고. 2019년 겨울,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시상식을 취재하며 보낸 나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보듬었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 내가 가진 아픔과 내가 느끼는 아픔을 잘 보듬어보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안정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들뜨려는 마음을 낮추면서 그렇게, 한강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논하는 스웨덴 아카데미의 공식 발표를, 유튜브 댓글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를 쓰는 게 하루의 전부가 되는 때도, 시를 써야만 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시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를 살다 불쑥 시인이라고 불려서, 그렇게 불린 내 마음 한쪽이 긁혀서, 억지로 카페에 들어가 지난 시를 붙잡고 있던 것도 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등단하지 않았다면 나도 시를 포기하며 살았거나, 늘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장교로 재입대를 준비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로 나를 치열하게 다독이며 살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이 무게를 견디려 쓰는 것이다. 오기와 오만을 이용해, 나는 최대한 내 마음을 지켜내고 있다.
방심한 사이 깊은 통증이 있었던 건, 어린 조카들에게 좋은 시인이 되고 싶은 다짐 때문이었다. 삼촌 시인이야?라는 물음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시인이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다. 무너지는 날이 많았던 것 같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무겁고 촘촘하게 읽었다는 서평 한 편을 쓰려다 괜히 마음도 무겁고 촘촘해진 밤이다.
어떤 것이든 내 마음을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