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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Sep 22. 2024

작아져가는 그대 뒷모습도 사랑해요

에픽하이로 문학하기 ‹당신의 조각들(Feat. 지선)›

세상은 날마다 정치, 혐오, 차별을 말하기에, 오늘 나는 아버지를 말하기로 한다. 아버지의 노동은 나의 낭만과 같다. 나의 낭만은 아버지의 노동과 같다. “가방끈이 짧아 잘 알지 못하지만, 당선을 축하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나는 아프다. 전화를 끊고 숨어서 울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불효자여서, 내가 배운 아픔과 고민과 질병이 아버지의 아픔과 고민과 질병 같아서.


지금부터는 죄를 짓기로 한다. 증오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래전 아버지의 임금을 체불한 사람이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형은 노무사의 꿈을 꿨고 나는 현실의 한 부분에 눈을 떴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아버지의 아픔이 얼마만큼인지, 그는 알았으면 한다.


내 절망이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뼈저리게 살게 됐음을 나는 고백한다.

시를 놓지 못하는 내 죄 또한 영원하다.


2019년 1월 1일.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아버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본 이후 심장의 한쪽에 무거운 돌이 생겼다. 이렇게 표현하면 내 마음을 한 번이라도 더 잘 어루만질 수 있을까.


세 살 터울의 형이 대입을 준비하던 때,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잠들 때마다 보다 눈을 감곤 했던 천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후로 나는 줄곧 아버지의 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9년의 1월은 내가 평생의 꿈을 이룬 때였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시인이라는 평생의 이름을 달고 가는 시작, 이제는 내가 전부라는 오만함을 가지게도 했고 내가 쓰는 글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때였기도 했다. 그 시작에 당선소감을 아버지로 쓰고 싶었다. 주변에선 페미니즘이 일었고 뉴스에서도 그리고 문학에서도 어느 자리에서도 모든 남자와 남자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생각의 중심엔 아버지가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일부를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은 큰 오류이자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내 모습에선 당연히 아버지가 있었고 나는 아버지라는 역사를 알아야 내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타일공인 아버지는 매일 새벽 장비를 챙겨 트럭에 실었고 저녁 늦게서야 돌아오곤 했다. 자주 술에 취해 들어오셨고 집에 들어와선 노래를 부르다 잠들거나 형과 나를 불러 좌청룡 우백호라며 품에 안기를 좋아하셨다. 당연히 형과 나 그리고 어머니는 그게 아버지의 술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임금은 체불되기 일쑤였다. 아랫사람들의 건축일이 다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학습하기도 했다 나는. 일을 끝내고도 돈을 못 받은 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이 부린 일꾼들에게만큼은 바로바로 돈을 주었다. 수중에 있는 현금일 때도 있었고 현금이 없을 때는 빚을 내어 주거나 집에 있는 금품을 대신 내어주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돈을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모습이 크게 터졌던 건, 목돈이 들어가야 하는 때에 받지 못한 임금이었다. 몇 번을 찾아가도 받지 못한 돈에 그리고 길고 긴 재판에서의 승소도, 추심업자를 통한 의뢰에서도 아버지는 결국 돈을 받지 못했다. 새벽 내내 담배를 피우다 결국 흐느껴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때였다. 아버지의 임금을 체불한 사람의 이름은 김상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에 무한도전에서 알래스카 김상덕 씨를 찾는 편이 방영되었을 때, 나는 그 김상덕 씨가 알래스카에 있는 건지. 아버지를 끝끝내 좌절케 한 그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 당선소감에는 두 남자가 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임금을 체불한 사람이다. 한 사람을 나는 존경하고 한 사람을 나는 증오한다. 그래서 썼었다. 아버지의 아픔을 알게 되었으니까.


아버지의 전부였던 노동은 때로 내 낭만의 전부였고 내 낭만의 전부는 아버지의 노동을 통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질 낭만의 크기가 아버지가 평생 일군 노동의 크기와 같아졌으면 좋겠다. 그만큼 내 낭만이 아픔과 고민과 질병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낭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시에는 하늘이나 별, 달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발화하는 양상이 감상적이고 올드하다, 진술이 많다, 쉽게 쓴다 라는 말과 평을 자주 듣곤 하지만 내가 쓰는 시는 부정할 수 없는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빚이기도 했다. 내가 문학을 하는 것 자체가, 문학을 고집하고 있는 내 모습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죄책감을 가지도록 했다. 아버지의 희생과 어머니의 희생과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희생 그리고 나와 친밀한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에 나는 문학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빚이 계속해서 쌓이는 기분이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내 글쓰기는 죄책감의 산물이다. 그래서 아프다.


걷다가 잘 짜인 벽돌담을 보게 될 때. 걷다가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을 볼 때면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아마도 아빠의 직업을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인 것 같다. 가랑비가 종일 내리던 며칠 전에는 아빠 생각이 났다. 새벽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을 때, 아빠를 도와 시멘트를 나르고 타일을 붙이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의 트럭 적재함은 종일 젖어있었고 줄눈을 닦아내기 위한 스펀지도 종일 젖어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벗어놓은 작업화도. 뿌옇던 그날의 하늘이 생각났다. 빚지고 있는 기분. 시멘트를 옮기고 모래와 섞어 나르던 때만큼의 마음을, 나는 지금 그만큼을 간절하게 짊어지며 지내고 있긴 한 것일까. 빚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2024년 6월 1일의 일기)

에픽하이의 노래 중 ‹당신의 조각들›이 있다. 이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에는 타블로의 아버지가 담겨있고 타블로가 생각하는 아버지가 담겨 있다. 이후의 일이지만 타블로는 자신이 대학교를 다니며 쓴 단편소설들을 노래의 제목과 같은 «당신의 조각들»로 엮어 발간하기도 했다. 책이 나오기 전 타블로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팬들에게 책의 제목을 지어달라고도 했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 제목에 대해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와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손을 봤다. 옆에 있던 카메라로 아버지의 손을 찍어 나중에 현상을 해봤다. 사진을 보니까 그 낡은 손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다. 아버지의 조각조각들. 다시 말해 눈이나 손이나 입 등 모든 것들은 내가 닮은 것이지 않나. 아버지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내 손으로는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을 닮게 되고 그러한 우리의 조각조각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URL: https://www.segye.com/newsView/20090314000668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이 노래를 자주 찾아 듣곤 한다. 좋아하는 노래들과 가사들에는 내 삶과 연관 짓는 어떤 공통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와 같이 늙어가는 내 모습을 생각한다.


당신의 눈동자

내 생의 첫 거울 그 속에

맑았던 내 모습

다시 닮아 주고파

거대한 은하수조차

무색하게 만들던

당신의 쌍둥이 별

내 슬픔조차

대신 흘려줬던 여울

그 속에 많았던 그 눈물

다시 담아주고파

그 두 눈 속에 숨고자 했어

당신이 세상이던 작은 시절

당신의 두 손

내 생의 첫 저울

세상이 준 거짓과

진실의 무게를 재주 곤

했던 내 삶의 지구본

그 가르침은

뼈더미 날개에 다는 깃털

기억해 두 손과 시간도

얼었던 겨울

당신과 만든 눈사람

찬 바람 속에 그 종소리가

다시 듣고파 따뜻하게

당신의 두 손을 잡은 시절

당신의 눈

당신의 손

영원히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쥐고 싶어

벌써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you know i do

i do love you

지쳐가는 모습도

작아져가는 그대 뒷모습도

사랑해요

i do love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사랑해요

때로는 시간을 다스려

손에 가지고파

그대가 내가 될 수 있게

보내 날리고파

난 그대 청춘에

그 봄의 노래 안기고파

나 역시 어리던

당신의 볼을 만지고파

그대 인생의 절반을 갈라

날 위해 살았고

남은 인생의 전부를

또 나를 위해 살아도

하찮은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곤

한평생 그대가 바라고 비는

성한 몸

언제까지나 받고 받아

이제는 건네고 싶은데

받은 건 모두 날 위해

쌓아 멋 내고 쉬는 게

그리고 어려워서 모두 거절할까

아직도 일에 지쳐 사는 건

또 병 되고 싫은데

그대 옷자락의 묵은 때보다 더

검은 내 죄로 그대 머리에는

눈이 내려

가슴을 시리게 만들어

내 숨이 죄여

오늘도 이별의 하루가 지나

꿈이 되면 그대를 찾아갈래요

그대를 따라갈래요

당신의 발자국에 맞춰

내가 살아갈래요

얼마 남지도 않은

우리 둘의 모래시계

행복의 사막

그 안에서 우리 오래 쉬게

every little piece of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사랑해요

you know i do

i do love you

지쳐가는 모습도

작아져가는 그대 뒷모습도

당신의 눈

당신의 손

영원히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쥐고 싶어

벌써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아빠 사랑해.)


에픽하이의 노래 ‹당신의 조각들› 가사


나는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사회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과의 술자리보다도 아버지와 같이 술 마시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얼마나 좋으냐면 나는 내가 늦게 태어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마흔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래서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어 조금 더 일찍 아버지와 술을 마실 수 있었더라면, 아버지의 걱정과 고민과 아픔을 내가 조금 더 같이 나눠가질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10년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아버지의 생을 조금 더 일찍 알고, 마흔이나 오십에 느껴도 될 아버지의 아픔과 슬픔을, 이십 대에 삼십 대에 느끼는 만큼 나는 빨리 아파하고, 아버지는 그만큼을 늦어 아파한다.


며칠 전 추석에도 아버지는 아픔을 말했다. 가장 후회되는 것이 명절 전 조금이라도 돈을 벌겠다고 그때 그 일을 맡은 것이라고. 그때 일한 돈을 제 때 받았더라면, 하는 평생 지니고 갈 아픔과 후회를.


오늘 또다시 아버지를 말하는 것은 나한테는 어떤 빛이자 빚 같은 것이다. <당신의 조각들> 가사에도 그려지듯, "얼마 남지도 않은 우리 둘의 모래시계", "당신의 발자국에 맞춰 내가 살아가"라고 싶은 마음이다.


고향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갈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배웅하며 눈물을 훔치곤 한다. 서울로 올라가 생활할 막내아들의 아픔과 고민을, 아버지로서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마음이 눈물로 맺히는 눈동자를 매번 보고 나서야 나는 버스에 오른다.


2019년의 어느 때와 같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은 봄도, 겨울도, 어떤 계절도 아닌 것 같다. 조각 조각난 것들이 내 손바닥의 손금에 모여있고, 손바닥에 아버지의 아픔과 고민과 질병 모든 것이 빚처럼 빛처럼 담겨 있고 남겨져 있다.


겨울이 왔으면, 하는 생각으로 며칠은 지냈는데 가끔은 봄이었으면, 여름이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따듯한 방에 얼른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에 비해 이 겨울이 너무 차갑다 싶었다.
불을 지피느라 연기만 들이마시다
잘 빨아들이는 연통을 확인하고 나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편하게 누워있지 못했다. 오랜만에 지핀 불이 쉽게 꺼질까 봐
나는 이 편안을 누리고 있으면 안 될까 봐.

부모님을 모시고 시상식에 갔다 오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좋았다. 기차를 타고 오가는 동안
아들 덕분에 대구까지 가본다는 부모님의 말을 몇 번이나 더 들었고
그런 말을 듣는 동안 내 아버지로 살아가는 삶과 내 어머니로 살아가는 삶과
내 앞에 앉아있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는 일은
봄도 겨울도, 어떤 계절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을 땐
봄이었으면 여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2019년 1월 19일의 일기)


에픽하이 5집 앨범

«Pieces, Part One»(2008.04.17.)중에서 ‹당신의 조각들(Feat. 지선(러브홀릭))›*.

(*작사: 타블로, 미쓰라진 / 작곡:타블로)

https://youtu.be/J9FGf56CCG0?si=DuZyi8woaj62NB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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