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없는 말을 하고, 쓸 데 없는 일을 하기

Day 2. 부모.

by honggsungg labnote

우리 아빠는 시덥잖은 말을 한다. 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이런 게 있다. 이사 간 이후의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 싸여 있어서 그 크기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운동장이 작았다. 물로켓 날리기같은 큰 공간이 필요한 행사는 물론이고, 한 학년이 나와서 체육대회를 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의 운동장 관련해서 불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학교는 공청회를 열었다. 학교를 재건축을 해서 운동장 크기를 늘리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그 공청회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어차피 학생들이 모두 이 아파트에 사는데, 아파트의 베드민턴장을 밀어버리고 그냥 학교가 씁시다." 당연히 실현이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물론, 우리 아빠는 아파트 자치회장 같은 감투는 없었다. 그냥 이런 농담같은 의견을 질러버린 거다. 아빠는 주변에서 뭐라던 별 신경 안 쓴 것 같은데, 쪽팔린 건 그 옆에 있던 엄마였다.


아빠가 연구실 근처에 올 일이 있어서 같이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그 때 같이 실험하던 인턴도 날 따라다니느라 점심 때를 놓쳐서 인턴과 나와 아빠가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인턴도 오케이라고 하던 아빠도 이상했지만, 그 자리에 따라오는 인턴 친구도 이상했다.) 시간이 오래 되어서 대화 내용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는 본인께서 일하는 곳에서 저온으로 보관하는 수술 샘플이 있다고 얘기했다. 나도 세포같은 게 스티로폼 박스 안에 있는 드라이아이스와 같이 포장되어 저온상태로 배송된다고 말했다. 아빠가 그러더니 실험 물품같은 것도 스티로폼 박스로 배송하는구나, 다음 번에 보관통 못 찾으면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서 보내야겠다고 농담했다. 나랑 아빠는 일상적인 대화인 듯이, 그렇게 크게 웃지도 않으면서, 이런 쓰잘데 없는 농담으로 채운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을 다 먹고 연구실에 돌아와서 인턴이 나에게 말했다.


사수님이 헛소리를 많이 하시던 게 아버님을 닮은 거군요..!

부모님과 같이 모여 있으면, 아빠랑 나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평어처럼 하기 때문에 목소리의 고저만 들으면 농담같지는 않지만, 우리 둘은 농담이라는 걸 알고 하는 얘기다. "흐에엑! 서울 올라가는 차가 왜 이렇게 많대?" "다들 시위하러 여의도 가는 건가봐" "여의도에는 주차할 자리 없는데 시위도 전에 고생하시겠네" (24년 12월은 비상계엄으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면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진담처럼 받아들이는 엄마가 걱정스러움 반, 어처구니 없음 반의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본다. "이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라고 엄마가 물어보면 "뭔 소리야. 당연히 진담이지~"하면서 농담으로 받아친다. 아빠가 쓸데 없는 소리 하면 받아주지 말라고 하지만, 원래 쓸데 없는 소리가 재미있는 법이다. 껄껄껄




그렇다면 엄마는 쓸데있는 것들만 중요시 여기는 사람인가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엄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교과 이외에 클레이점토 수업, 미술 수업, 피아노 수업, 바둑 수업, 수영 수업 등등 다양한 수업을 시켜줬다. 요즘 애들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내 또래 다른 학생들은 어땠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했는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비교과 활동들에 대한 기억이 콕콕 박혀있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오선지에 그려진 기호들이 쉼표인지, 높은 음자리표인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하농과 체르니를 연주하고 포도알을 색칠했던 기억이 있다. 바둑 수업을 수강해서, 기본적인 바둑 기보도 이해할 줄 알고, 호구나 축같은 바둑 용어도 기억하고 있다. 수영 수업을 수강해서, 대학교 체육 수영 교양 때 가뿐하게 A+을 맞았다. (아 그런데 태권도 학원은 안 다녔다.) 어렸을 때 했던 여러 활동들이 확실히 몸 어딘가에, 나의 뇌 어딘가에, 근육 어딘가에 숨어있다.


중학교 때는 수학과학 학원, 단 하나만 다니기는 했다. 중학교 수학 과학을 배우는 건 아니었고, 고등학교 교과 내용과 국내 수학과학 경시대회 내용을 공부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 학원들도 교과학원은 아닌 것 같다. 나의 학교 내신을 위해서는 이 학원에서 배웠던 심화 수학과학 공부가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답 맞추는 걸 너무나도 좋아했던 나에게 수학과학 학원은 내 수준에 걸맞는 어려운 문제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어려우면서 아름다운 풀이방법을 배우는 곳이었으며, 그 문제와 풀이를 익히기 위해서 고뇌하는 곳이었고, 나같이 이상한 애들이 많이 모여있던 곳이었다. 물론, 학원에서 시험보고 숙제하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일들이 힘들기는 했다.


다들 그렇듯이 나도 선생님이 해주는 수업시간의 쓸데없는 이야기만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은 학원의 생물 선생님은 아프리카의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왜 배가 볼록 나와있는지에 대해 교재에 없는 내용을 얘기해준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기초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섭취하기가 어렵다. 이 중에서 단백질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 뿐 아니라 몸을 구성하고, 세포가 기능하는 데에 더 많이 쓰인다. 피의 농도를 맞추는 '알부민'이라는 단백질도 에너지로 분해해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단백질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기아들은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피의 농도를 맞추는 '알부민'도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버린다. 그러면 피의 농도가 살짝 감소한다. 이렇게 되면 원래는 체액의 농도와 피의 농도가 평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체액의 농도가 피의 농도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면서, 평형이 깨진다. 우리 몸은 체액에 물을 더 넣어, (삼투압 현상에 의해) 희석하는 방식으로 피의 농도와 체액의 농도를 맞춘다. 즉, 체액의 부피가 커지고, 복수가 차는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이유로 기아의 배에 복수가 차서 배가 볼록해진다.


학원에서 배운 쓸데없는 생물학 상식으로 글의 방향이 틀어졌다.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자잘한 상식들 덕분에 고등학교 입시 구술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교과서와 교재 밖에서 연상되는 내용들이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외워졌다. 학교 공부를 위한 학원이었으면 외우려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았다. 엄마는 직접적, 단기적으로 쓸데 있지는 않지만, 조금 멀리 봤을 때, 나의 교양과 나의 입시에 쓸데 있었던 강습과 학원을 시켜줬다.




방학이나 주말이면 부모님과 함께 다양한 박물관이나 근교에 놀러갔다. 오랜 기간동안 캠핑을 떠나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일은 자주 있지는 않았다. 대신에 덕성여대 캠퍼스에 놀러가서 잔디밭에서 뛰놀고 떡볶이를 먹었던 기억도 있고, 세종대왕기념관에 놀러가서 이상한 악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예쁜 단풍을 구경했던 기억도 있고, 도자기 비엔날레에 놀러가서 메뉴에도 없던 호리병을 만들고서 밤 늦게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놀러 다닌 기억들은 "참 재미있었따." 로 끝나는 기억들이지만, '참 재미있는' 하루가 어렸을 때도 소중하고 지금까지도 소중하다.


쓸모있는 공부와 일로 가득찬 우주 공간에 쓸데없는 에피소드들이 우주 먼지처럼 콕콕 박혀있다. 우주의 아름다운 성운들과 항성들은 그 비균질한 우주 먼지의 응축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우주 먼지들 중 일부는 지구를 생성했고, 그 지구 위에는 생명체와 인류가 살아있다. 아마도 우주같이 어두운 내 삶을 아름답고 의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부모님이 물려준 쓸데없는 말들과 쓸데없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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