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없는 수학여행

Day 3. 여행.

by honggsungg labnote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1학년 때 미국 대학교로 2-3주간 서머캠프에 참여하는 수학여행을 다녀온다. 학생들은 4-5개 대학교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내가 선택한 대학은 동부에 있는 대학교 중 하나였다. 크림슨 대학교였나, 대학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머캠프의 10시부터 3시까지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고, 늦은 오후에는 서머캠프의 프로그램에 따른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첫주차에는 분자생물학 강의를 들었고, 이주차는 범죄수사학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신청할 때는 몰랐지만, 분자생물학 강의와 범죄수사학 강의 교수님이 동일했고, 2주차 내용 중 40% 정도는 1주차 내용과 겹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범죄수사학에서 분자생물학이 얼마나 쓰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다른 재미있는 내용을 폭넓게 배우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범죄수사학과 분자생물학에 관련된 이야기 하나. 범죄 현장에는 범죄자의 혈흔, 머리카락, 침, 각질세포 등, 범죄자의 DNA와 관련된 증거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DNA는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가 담겨진 생체분자이다. 이 DNA 정보를 읽으면 그 사람이 유전적으로 술에 잘 취하는지, 살이 쉽게 찌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는 용의자의 DNA를 읽고,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DNA를 읽어서, 두 개의 DNA가 동일한지 확인하여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


이 때 "DNA를 읽는다"는 말은 DNA를 한 글자씩 읽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의 DNA는 30억 글자로 이뤄져있다. 소설책 한 페이지에 2,000개의 알파벳이 들어갈 수 있고, 벽돌책 한 권은 1000 페이지라고 가정하면, DNA는 벽돌책(코스모스, 총균쇠 등등) 1500 권와 맞먹는 분량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로, 벽돌책 1500 권을 하나하나 읽고 있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다. 물론 지금은 DNA를 읽는 일이 매우 간편해지기도 했지만 한시가 바쁜 수사현장에서 1500 권의 정보를 전부 다 읽을 수는 없다. 두번째로, 사람이기 위해서는 1500 권의 정보 중에서 1499 권의 정보는 모두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어떤 DNA를 다른 사람의 DNA와 비교했을 때 1498권 정도는 똑같고 2권 정도 정보가 달라진다면 아마 그 DNA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침팬지의 것일 확률이 더 높다. 따라서 용의자를 추려내기 위해서는 DNA를 한 글자씩 읽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DNA의 단순 연쇄 반복(Simple Tandem Repeat, STR) 부분을 찾아냈다. STR은 말 그대로, 짧은 DNA가 반복되는 부분이고, 이 반복서열들은 개인들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은우의 DNA는 STR1이 2회 반복되고, 수지의 DNA는 STR1이 5회 반복된다. 반복되는 부분이 유전자 발현에 연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 횟수는 생존의 유불리와는 큰 관련이 없었고, 반복 횟수는 단지 사람들 사이의 차이만을 나타낼 뿐이었다. 이런 반복 부분이 10개가 있다고 해보자. 은우의 STR1은 2회, STR2는 10회, ... , STR10은 5회 나타났고, 수지의 STR1은 5회, STR2는 3회, ... , STR10은 1회 나타났다. 은우는 (2, 10, ... , 5) 라는 숫자들로, 수지는 (5, 3, ..., 1) 라는 숫자들로 표시 가능하다. DNA의 글자보다, STR들의 길이로 개인을 구분하는 방법이 실험적으로 훨씬 간편하다. 책 페이지로 비유하자면, 은우는 챕터1이 2페이지이고, 수지는 챕터1이 5페이지이다. 그 안의 글자를 일일히 확인하지 않더라도, 각 챕터의 페이지 수만 확인하면, 이 DNA의 주인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알기로) 현재는 PCR과 전기영동으로, STR들의 반복횟수를 3시간만에 측정하여, 범인의 DNA를 구분한다.




2주 간의 서머캠프에서 PCR, 전기영동(electrophoresis), STR 등등의 내용을 배웠다. 아 물론, 미국 대학의 서머캠프였기 때문에 이 모든 강의 내용은 영어였다. 영어로 듣는 강의였지만, 이해하기에 엄청 어렵지는 않았다. 교수님은 과반의 한국인 학생들을 위해서 쉬운 영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학생들도 이런 내용들을 수업 시간에 미리 배우기도 했으며, 교과서에도 영어 어휘가 자주 등장했다. 강의를 이해하기 쉬웠다는 점과는 별개로, 강의 내용 자체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서머캠프동안 기억나는 일들은 강의 밖의 에피소드들이다. 서머캠프동안 윤하 4집이 발매되어서, 윤하 4집을 주구장창 들었다. 윤하의 크림소스파스타 노래 정말 좋다. 그리고 이 때는 강남스타일이 한국에서 막 뜨기 시작할 때였다. 기숙사에서 한국에서 나온 강남스타일을 멜론으로 처음 들어보면서 뭔 이런 노래가 다 있나 했는데, 그 노래가 전세계를 강타할 줄은 몰랐다. 서머캠프동안 친구들에게 마이티 라는 카드게임을 배워서, 이후 고등학교 생활 중에 한동안 재미지게 마이티를 했었다. 수영도 했었고, 수영장의 다이빙대에서 친구를 밀려다가 사고 위험으로 제지당하기도 했다. 발야구도 했었고, 조교 형을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도 난다. 잔디밭 위에 공기를 주입하여 만드는 간이 워터파크에서 물 뿌리고도 놀았다. 한 주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방문해서 M&M 초콜릿을 비닐 잔뜩 가져왔다. 이 시기에 구매했던 보스턴 빨간 후드티는 아직도 잘 입고 다닌다. 미국 친구들이랑 조교 형누나들과 페이스북 친구추가도 했던 것 같다. 그냥 이 서머 캠프에서는 그냥 재미있게 잘 놀고왔다는 인상만이 남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도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때는 지도 선생님과 친구 2명이서 떠난 해외 연구 프로젝트였다. 여름방학동안 해외 연구실과 협업하여 고등학생들이 2-3주동안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때 방문한 대학교는 하버드 병원 연구실이었다. 하버드가 워낙에 보스턴 전반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버드 의대였는지, 병원이었는지, 암센터였는지까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버드는 미국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 시에 위치한다. 보스턴 내에는 크게 3개의 대학교가 있다. 보스턴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MIT. 하버드와 MIT는 차로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유명한 해외 대학교의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2개 학교가 이렇게나 가까이에 붙어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하버드 연구실에서 뇌 혈관 연구를 하시던 교수님과 함께 2-3주 간 연구를 했다. 연구라고 했지만, 실제로 고등학생이 그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연구실에 출입하는 일도 어려웠다. 실험실에는 3주동안 5회도 출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에 출근해서, 연구소 라운지에서 영어 논문을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라운지에서 어렴풋이 혈관 관련된 논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밤늦게 실험실에서 쥐의 뇌를 해부해서 coronal section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사람의 뇌를 실험대 위에 올려둬보자. 우리는 뇌를 위에서도, 옆에서도, 앞에서도 볼 수 있다. 뇌를 위에서 본다면 중앙의 틈을 기준으로 대뇌가 반원 모양의 좌뇌와 우뇌로 나뉘워진 모습이 보이고, 뇌를 옆에서 본다면 헬멧 모양의 대뇌와 후면 아래 부분의 소뇌 부분까지 보인다. 뇌를 앞에서 본다면 사분원 모양의 좌뇌와 우뇌가 보인다. 뇌의 겉을 넘어서 뇌 속까지 보고 싶으면 뇌를 슬라이스로 층층이 절단하여 그 내부의 단면도를 관찰한다. 뇌를 앞에서 보고 있으면, 앞에서부터 0.5cm 간격만큼 뒷부분에서 뇌를 잘라서 그 단면을 보고, 그 다음 0.5cm 간격만큼 뒷부분에서 뇌를 잘라 또 단면을 보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행위를 지속하면 어느샌가 뇌의 맨 뒷부분까지 닿아, 뇌의 내부를 단면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앞에서부터 뇌의 단면을 자르는 행위를 coronal section 이라고 한다. 위에서부터 단면을 자르면 horizontal section, 옆에서부터 단면을 자르면 saggital section 이다. 쥐의 뇌는 맨 앞의 후각망울에서부터 매끈한 피질을 가진 대뇌, 그리고 운동을 담당하는 맨 뒤의 소뇌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연구하고픈 뇌 위치를 설정해서 단면을 보지만, 그 때는 고등학생들에게 실험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후각망울부터 소뇌까지 coronal section 을 진행했던 것 같다.




1학년 여행과 마찬가지로, 2학년 여행에서도 주말과 저녁에 놀았던 에피소드만 기억난다. 무슨 논문을 읽었는지, 연구 보고서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 일정 중에 미국 독립기념일이 있었다. 그리고 보스턴이 미국 독립에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에, 보스턴에서 독립기념일 관련된 행사가 많이 있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내셔널 트레저를 따라서 교회도 다녀오고, 미국 독립 기념 공원의 오벨리스크도 다녀왔다. 그리고 그 날 밤 찰스강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봤다. 찰스강을 따라 MIT가 있다. 하루는 MIT의 여러 건물을 구경했고, 또 다른 날은 하버드 본관의 건물을 구경했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한인 목사님 집에서 홈스테이였다. 그 집에서 연구소까지 버스를 타면서 헤매던 기억도 나고, 미국스러운 저녁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음... 여행을 주제로 글을 써보기는 했는데, 이번 글은 그냥 주제에 맞춰서만 작성한 감이 있다. "참 재미있었다." 같은 초등학생의 일기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등학생 수준에서 미국에 갔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었다. 서머캠프던, 해외연구던 사실 연구는 구실일 뿐이고, 여행은 놀기 위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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