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에 처음으로 불을 밝혀 준 사람
- 작가님은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가장 소중한 인연이 있나요?
-소중하고 이쁜 인연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딱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저에게 ‘사랑’을 처음 알려준 사람을 꼽을 것 같아요.
-오 혹시 작가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건가요?
-하하 아니에요. 흔히 ‘사랑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라고 하면 연인이나, 첫사랑을 생각하겠지만, 유년 시절부터 저에게 사랑을 알려주신 분은 저의 이모할머니세요.
나의 세상에 처음으로 불을 밝혀준 사람.
나의 영원한 등대이자 어른. 나의 이모할머니다.
태어날 때부터 쭉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던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보다 나를 돌봐주셨던 이모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네가 하도 나를 따라다녀서 너를 아기 침대 위에 놓고 집안일을 했어. 그래도 내가 가는 곳마다 고개를 돌리면서 나를 하도 쳐다보니까 집안일을 할 수 있었어야지, 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기억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를 얼마나 잘 따랐을지 보인다. 유치원 가기 전에 매일같이 머리를 만져주시고, 함께 밤늦게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책도 같이 읽고, 드라마도 같이 봤던 우리 할머니.
특히 우리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셔서, 나는 초등학교 때에도 아이들이 흔히 좋아하던 피자보다 집밥을 훨씬 좋아했다.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늘 심심하다고 떼를 썼던 나를 위해 할머니는 종종 나와 함께 요리를 하고는 하셨는데, 팥죽이나 호박죽을 끓일 때에 새알심을 만드는 것은 늘 나의 담당이었다. 너무나도 열정적인 제자 탓에 우리 집의 죽들을 늘 죽 반 새알심 반이었지만, 어른이 되어 죽 한 그릇에 새알심 2개 정도 들어가는 죽집의 죽들을 먹을 때면 이때가 늘 그리워지고는 한다.
이 외에도 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놀고, 나의 유년 시절의 모든 부분에는 우리 할머니가 계셨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할머니는 본래 댁이 있었던 전주로 돌아가셨다. 건강이 더 안 좋아지시기도 했고, 이제 나의 동생도 스스로 본인 끼니 정도는 챙겨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14년 남짓 나를 키우시며 나와 언니의 사춘기로 마음고생도 많으셨을 것이고, 원래 가족은 가까운 사이인 만큼 서로에게 의지한 시간도 많지만 상처 준 기억도 많았을 테니까.
어릴 때 철없이 했던 가시 돋친 말들이 한꺼번에 너무 큰 후회로 다가오며 눈물이 흘렀다. 본래 나의 옆에 있던 사람의 소중함은 떠날 때 가장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던가.
할머니가 떠나신 날, 헛헛한 마음에 혼자 옥상에 올라가 남산이 훤히 보이는 야경을 보며 펑펑 울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많이 운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아 이 사람과 내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구나’라는 사실은 어떤 한순간으로 인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함께한 모든 순간에 녹아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 뒤로는 언니의 입시 때문에, 나의 입시 때문에, 나의 대학 생활 때문에... 온갖 일로 점점 바빠지니 얼굴 보는 날들도 확 줄었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엔 할머니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 ‘사랑해’라는 말을 부모님이나 선생님, 가족 등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물론 커서도 듣는 말이지만, 아이 때보다 확실히 ‘사랑해’를 쉽게 말하기 힘들어진 것 같다. 나의 기억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해요’라는 말을 그렇게 어색해했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왠지 모르게 어려워하곤 했는데(-물론 지금도 그렇다-), 할머니께 전화드릴 때마다 마지막으로 심호흡 한번 하고, 꼭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린다.
지금 팔순을 앞두신 우리 할머니.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의 등대가 되어줬던 우리 할머니.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것처럼 나에게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할머니가 밝혀주신 불은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빛나고 있다. 떠올리면 아무 이유 없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예쁜 기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내 인생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받은 삶이다.
나도,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