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내게 “안녕, 이제 그만 나를 떠나줘”
사랑하는 순정아,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 아니니? 맥도널드는 24시간7일 내내 열려있는데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말이야.
배가 고파 한밤중에 밖을 나가면 우리의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당장 위장을 채워주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영혼이 고파 한밤중에 밖을 나가면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이. 아마 맥도널드는 돈이 되지만 영혼을 채워주는 일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겠지. 24시간 7일 내내 언제나 열려 있는, 영혼이 고픈 자들을 위한 장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장소에서 영혼의 허기도 채우고 가능하면 따듯한 음식까지 먹을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우리 그런 곳을 함께 만들어볼래?
순정아,
인간은 모두 질병에 걸리기 마련인 건데 그래서 암이란 것이 나도 걸릴 수 있고 너도 걸릴 수 있는 건데 왜 나는 내가 암에 걸리는 것은 상상해 보았으면서 너가 암에 걸리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을까.
울며불며 하나님께 널 살려달라고 기도했어. 그런데 순정아, 네가 췌장암이라는 소식을 내게 전하던 날 나는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어. 가슴에 조그만 혹이 발견되어서 전문의를 찾았더니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하더구나. 네 연락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어. 네가 췌장암 말기라는데 수술도 못 한다는데 … 네 소식을 듣고 나니 내 가슴에 난 혹쯤은 아무것도 아니더구나. 기도하면서 난 이렇게 말했어.
‘하나님, 지금껏 당신 찾지도 않다가 제가 급하니까 아쉬우니까 당신 이름 부르고 제 가슴에 혹이 악성 종양이 아니게 해달라고 기도했잖아요. 근데 하나님, 순정이 췌장암 말기래요. 하나님! 순정이 어떡해요? 제 기도 바꿀래요. 제 가슴에 혹이 악성 종양이어도 좋으니 제 혹은 크기도 작고 이거 떼어내도 살 수 있으니 제발 순정이를 살려 주세요. 순정이 제발 치유해 주세요. 당신의 기적과 은혜를 보여주세요. 제발 하나님, 제발요…….’
다음 날 내 혹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어. 모양이 특이하긴 해도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고 하더라.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면서 나는 너도 반드시 나을 거라 믿었어.
그때부터 혼자 40일간 저녁을 안 먹기로 결심하고 아무 교회만 보면 뛰어 들어가 기도를 했어. 너무 이른 아침에 가면 교회 문이 닫혀있어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교회 문이 닫힌 밤에는 방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단다.
남편은 내가 저녁을 안 먹는 걸 보고 ‘맨날 다이어트야?’ 하고 혀를 끌끌 찼는데 그에게 네 얘길 꺼낼 수가 없었어. 만약 내 입으로 ‘췌장암 말기’라는 단어를 말하면 그건 취소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차마 그 단어를 꺼낼 수가 없었어.
순정아, 그렇게 기도에 매달리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단다. 네가 말한 ‘날 위해 교회에 가서 기도해줄래?’ 라는 의미가 나보고 교회라는 건물에 들어가서 기도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부르짖는 하나님이라는 분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데 내 기도가 과연 효력이 있을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구글 검색창에 ‘성경 공부’라고 치고 당장 성경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 한국분이 부목사로 계시는 이 나라 기독교 장로회 교회가 검색이 되더라.
그 교회를 찾아갔어. 그곳은 같은 이름으로 두 군데 장소를 사용하는 교회였어. 휴대폰 애플 지도에 교회 이름을 치니 위치가 A와 B 두 군데가 떴어. 구건물은 A에 있었고 신건물은 B에 있었어. 나는 B 동네에 있는 교회로 가야 했어. 약 40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고 지도에서 안내 음성이 들렸어.
"You have arrived at your destination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그곳은 A도 아니고 B도 아니었어. 나는 엉뚱한 동네에 있었어. 휴대폰 지도는 목적지 B에 도착했다고 말했지만 출발하기 전에 구글 지도로 미리 확인해 둔 교회 건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나는 차를 타고 교회 이름을 다시 입력했어. A와 B 두 군데 위치가 보였고 나는 다시 B를도착지로 입력했어. 그러나 15분 후 내 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 전혀 엉뚱한 장소에.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성경 공부 시간이 이미 30분이나 지났어. 이렇게 안 찾아지는 걸 보면 어쩌면 신이 내게 이 교회를 허락하지 않는 거 아닐까?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게 신의 뜻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아니면 내가 이 교회에서 어떤 악연을 만나게 되는 걸 미리 막아주시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교회라는 곳은 나와 안 맞는 곳일 수도 있어.’
포기하고 집으로 향하려다 아이폰 지도를 끄고 출발 전 지도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어 교회를 찾아가 보기로 했어. 잠시 후 나는 B 동네에 있는 교회에 도착했어.
수업을 마치고 성경공부반을 운영하는 분에게 나는 말했어.
"첫날부터 늦어서 죄송해요.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휴대폰 GPS가 자꾸 엉뚱한 곳을 가리키는 거예요. 절 뱅뱅 돌려서 엉뚱한 곳에 데려다 놓고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교회는 보이지 않고 30분 넘게 헤매다가 오느라 늦었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속으로 아차 싶었어.
‘이런 얘기를 하다니. 첫 만남부터 날 어리숙하고 이상한 여자라 생각하겠네.’
그런데 그분은 마치 날씨 얘기라도 하는 듯 웃으며 말했어.
“원래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 알게 되는 거잖아요. 별 해괴한 짓으로 다 훼방을 놓는데요 뭘. 우리 사무실에 가서 얘기 좀 해요. "
순정아, 그때 내 기분을 넌 이해하지? 그분의 말은 마치 ‘우리 세계로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로 들렸어.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녀에게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느낀 ‘사악한 기운’에 대해서도 고백했단다. 그녀는 말했어.
“어휴, 말도 마세요. 저도 어느 분 집에 기도해 주러 갔는데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분은 정말 그 악한 기운이 제가 지금까지 만난 분 중 가장 최악이었어요. 정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간신히 기도를 마치고 도망치 듯 왔다니까요.”
너가 궁금해할 것 같아 그 교회 휴대폰 지도에 관한 뒷이야기를 해줄게. 두 달 정도 시간이 흘러 다시 휴대폰 지도에 교회 이름을 쳤을 때 그 교회는 검색이 되지 않았어. 예전에는 교회 앞 단어만 쳐도 뒤 단어가 자동 검색으로 보였는데 교회의 풀네임을 쳐도 'no result(검색 결과 없음)’이라고만 나오더라. 아직도 그건 내게 미스터리로 남아있어.
그즈음 나는 남편에게 네가 아프다는 얘길 드디어 했어. 그는 나와 함께 교회에 가주었어. 네가 항암 치료 때문에 구토로 몸과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도와달라고 참을 수 없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 남편과 나는 교회로 향하고 있었어. 나는 울음을 터트렸고 남편은 말없이 날 위로해 주었지.
순정아,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깨달음이 왔단다. 부활을 믿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라는 걸 말이야.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그러나 가장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한계잖아. 그 죽음의 문제를 놓고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갈린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게 되었어.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육체에서 영이 떠나 새로운 형상을 입는다는 것을 제도교육을 받고 자란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었겠니.
솔직히 구약을 읽을 때는 한숨이 터져 나왔어. 인간이 너무나 미개하게 느껴졌어. 하는 짓이 맨날 각종 짐승 모양 조각을 만들어서 신이라고 그 앞에서 빌고 자기 자식까지 제물로 갖다 바치고 사소한 일로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는 그저 먹고 자는 일 외에는 관심도 없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뜻도 모르는 짐승들처럼 보였어. 그리고 신약까지 읽고 나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 과거에 인간이 비행기나 스마트 폰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현재 나도 신이 움직이시는 원리를 하나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라는 자각이 들었어. 이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예수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분이 신인데 그가 인간의 육체를 빌어서 지구에 나타나고 그 육체를 벗어버리고 원래 오신 곳으로 돌아가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이었겠니. 그런데 10여 년 전 내가 성당에 잠깐 발을 들였을 때는 예수님에 대한 의심이 있었단다. 혹시 예수님은 그저 인간이지 않았을까? 위대한 혁명가였을 뿐인데 그를 신격화하기 위해 제자들이 그의 부활을 꾸며낸 것은 아닌가? 그가 보인 기적들은 실은 인간이라면 엄청난 수양을 쌓으면 갖게 되는 초능력이 아닐까?
그런데 그날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가 이 작은 뇌에다 신을 담으려고 부질없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깨달았어. 신은 내가 그를 믿기 전에나 믿은 후에나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고 내 미천한 지식과 지성으로는 이해가 되는 존재가 아닌 거였어.
순정아, 그렇게 내가 예수님을 받아들인 후 이런 일이 일어났어.
아침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문득 남편이 과거에 내게 한 서운한 행동과 말이 생각나면서 속에서 분노가 치미는 거야. 전날 싸운 것도 아니고 아침에 다투고 회사를 출근한 것도 아닌데 설거지하다가 뜬금없이 예전일을 떠올리고 혼자 화가 솟구친 거야. 그런 감정이 처음도 아니었어. 난 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자꾸 재생하면서 남편을 다시 미워하며 살고 있는 걸까? 지금도 갑자기 그가 미워졌잖아.
뭔가 이상했어. 갑자기 의심스러웠어. 그 미움에 가득 찬 내 목소리가 과연 진짜 나일까 의심스러웠어. 그 미움에 찬 분노의 목소리는 전혀 나답지 않은 목소리였어.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어. 내 안에 살고 있는 그 미움에 가득 찬 그것을 성령의 힘으로 내게서 내보내 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어.
기도를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밤이었어. 그날 밤, 나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있었어. 그때 뭔가 귀 안에서 움직였어. 바퀴벌레! 나는 귀에 바퀴벌레가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 재빨리 귀에 있던 이어폰을 뺏어. 이어폰을 빨리 빼서 귓속에 벌레를 빼내야 했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깨달았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 바퀴벌레가 들어갔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어. 하얀 연기가 내 귀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어. 그 연기 속에 여자 얼굴이 있었어. 금발이었고 목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하고 얼굴 살이 퉁퉁한 여자는 우울하고 슬프고 억울하고 심술 난 표정으로 속삭이듯 소리쳤어.
"How could you do this to me!!(어떻게 네가 내게 이럴 수 있어!!)"
그래, 그렇게 정확히 영어로 말했어. 그 순간 그녀의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가면서 그녀의 고통이 모두 이해가됐어. 그녀는 말썽을 부리는 남편 때문에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어. 그녀는 고독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내 안에서 나를 친구 삼아 내 안에서 살고 있었어. 그녀는 정말 내 안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내가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를 떠나고 있었어. 당시에 나는 놀라서 가슴만 부여잡았어. 혹시 몰라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재빨리 기도를 드리는 것은 잊지 않았지. 나중에야 알았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빛과 어둠은 함께 공존할 수 없어서 우리 안에 있던 어둠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순정아,
내가 이런 얘길 누구한테 할 수 있었겠니.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단다. 오직 너에게만 ‘혹시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라는 근심 없이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었어. 너도 역시 ‘너만 알고 있어. 실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내게 참 많이 했었지.
순정아, TV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많이 하더라. 사람은 안 변한다 혹은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아니, 사람은 변해. 변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의 미약한 힘이 아닌 그분의 힘으로 그게 가능한 거더라.
마약을 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하루아침에 마약을 끊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대. 약물중독은 의지로 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래. 하지만 21년 동안 마약을 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한 그 순간부터 그게 단칼에 끊겼대. 그렇게 인간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신의 도움으로 할 수 있더구나. 그래서 정신과에서 하는 알코올 중독 치료 12단계에도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단계가 들어가 있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소리 아니겠니. 우리가 해결 못 하는 문제들을 우리의 창조주가 아니면 누가 해결할 수 있겠니.
그날 이후 나는 남편의 행동이나 말에 상처를 받거나 서운한 마음이 생기면 그런 감정을 드는 내 모습을 먼저 알아차렸어. ‘내가 그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게 과연 그의 말 때문인가? 나 자신의 문제는 아닌가?’ 하고 한번 되짚어 보게 되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참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어.
‘아이고, 회사 일이 얼마나 힘들면 한마디도 안 하고 저러고 있을까.’
‘맞아, 남편에게 이러저러한 성장 과정이 있었어. 그래서 저렇게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거야.’
‘우리 남편도 불쌍하지. 하필이면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남편이 겉모습은 어른인데 내면은 작은 소년인 것이 마음으로 느껴졌어.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총탄이날아다니는 전쟁터에 총알도 총도 없이 자기 몸무게의몇 배가 되는 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서는 어린 소년병 같은 남편을 떠올리면 눈물이 났어.
그리고 어떤 이미지도 떠올랐어. 아홉, 열 살쯤 돼 보이는 꼬마가 무릎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외로움에 떨며 앉아 있어. 그 아이는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남편의 마음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어. 나는 느꼈어. 그 아이는 절대 남편에게서 떠나고 싶지 않구나. 남편이 자기의 부모이자 친구이자 집이구나. 절대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겠구나.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를 차고에 집어넣기 전에 내가 남편에게 말했어.
"너 손 잡고 기도해 줘도 돼?"
남편은 당황했지만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어. 나는 기도를 시작했어.
"하나님, 제 몸에서 악하지만 외롭고 불쌍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전 분명히 보았습니다. 단발머리에 퉁퉁한 얼굴에 두꺼운 입술. 마치 그녀를 전부터 알아 온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그녀는 내 몸을 떠나면서 배신이라도 당한 듯 너무나 서러워했습니다. 하나님, 그녀를 떠나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남편 속에 살고 있는 불쌍한 아이를 봅니다. 어린 소년입니다. 열 살 정도 보이는 소년이 춥고 외로워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의지할 곳 없습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자 남편을 친구 삼아 그 안에서 웅크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절대 남편을 떠날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남편이 유일한 안식처이자 친구라고하소연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그 불쌍한 영혼을 남편에게서 떠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기도를 하는 내 눈에는 언제부터인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어. 기도를 마치고 남편을 보았어. 남편은 울음을 참느라 새빨개진 눈을 깜박였어.
순정아, 남편의 몸속에 소년 귀신이 진짜 살고 있었는지 그 소년이 남편을 진짜 떠났는지 안 떠났는지는 난 몰라. 실은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중요한 건 그 후로 남편도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순정아,
성경에는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쓰여 있더라. 언제나 사람 속에 살 집을 찾는다고. 그래서 예수님의 많은 행적 중에는 사람 몸에 들어가서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일으키는 마귀를 내쫓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지. 생각해 보면 무당이니 굿이니 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로마 교황청에서 구마 의식을 허용해 온 것도, 마귀의 존재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일 거야.
선이 있으면 악이 있듯이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신이 있으면 사탄도 있는 거였어. 그러나 감사하게도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둠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어둠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모든 악한 것을 사랑의 빛으로 없애야겠지. 이걸 알게 된 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과 은혜인지 몰라.
순정아, 넌 그즈음 기도로 응답을 구하고 있었지. 네가 겪는 고난의 의미를 알게 해 달라고. 그리고 마침내 넌 답을 얻었지. 순정아, 네게 묻기 두렵지만 물어봐야 하겠어. 췌장암 말기. 시한부 판정.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네게 일어난 거지? 도대체 왜 너여야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