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정아,
넌 2017년 12월 항암치료를 중단했지. 나는 너가 병마와의 싸움에 지쳐서 신을 원망하며 좌절에 빠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넌 그 반대였어.
넌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어. 너는 매일 가족 예배를 드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이 사랑과 믿음으로 뭉쳐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어.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감하고 통증이 찾아오면 더욱 열심히 기도했고 그러면 통증은 서서히 물러났다고 했어. 넌 금식 성회에도 갔고 기도 중에 '딸아, 안심하라. 네가 병에서 놓였느니라'하는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지.
나는 너의 용기와 믿음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네게 해줄 것이 기도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했어.
“순정아, 미안해.”
“뭐가?”
“나만 건강하게 잘 먹고 잘살아서…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잘살아서 미안해.”
“A.K! 그런 소리 마. 나는 네가 교회도 다니고 건강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
순정아,
1989년 우리가 파릇파릇한 신입생이었을 때도 넌 내게 교회를 다니라고 말했지. 그때의 나는 너무 어이없는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지. 그 후 29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단다.
과거에 나는 교회란 참회한 범죄자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생각했어. 3박 4일 청소년 교회 수련회 이런 단어만들어도 속으로 ‘아니, 뭘 믿고 자녀들을 그런 곳에 보내지.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런 생각을 했었단다.
나는 나 역시 죄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 그저 법을 어겨서 쇠고랑을 차지 않았으니 내가 보통 정도의 착함을 지닌 인간이라고 생각했어.
무엇보다 나는 교회를 싫어했어. 돈이 모이는 곳에 인간이 모이고 인간이 모이면 악도 모이기 마련이니 당연히 돈이 모이는 교회에도 악이 창궐하리라 생각했지. 교회에서 십일조에 목을 매는 이유도 가난한 어린양들을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건물 짓고 교회 관계자들끼리 월급을 나눠갖고 교인들끼리 이런저런 재미난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한국교회가 구제사업에 헌금의 4%도 안 쓴다는 기사를 보고서 더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나도 교회에 대한 애틋한 향수랄까 그런 감정이 있단다.
나는 그때 초등학교 가기 전 나이였고 우리 집이 여러모로 어려운 상태였어. 누구의 권유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가면 과자 선물을 준다기에 나는 누군가를 따라서 동네 교회에 갔어.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교회 연극무대에서 나는 동방박사 중 한 명의 역할을 맡고 있더라. 연극이 공연되는 당일 날, 나까지 포함해서 반쯤 얼이 빠진 어린 동방박사 세 명은 무대 위에 서 있었어. 우리 셋 중 누군가는 ‘기름 사러 가세’라는 대사를 해야 했어. 퇴장도 못 하고 쭈뼛거리는 우리 셋과 객석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 그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지. 누군가 대사를 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고 결국에 내가 용기를 냈어.
“기름 사러 가세!”
돌연 사람들이 와하고 웃음을 터트렸어.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무대를 내려왔어. 아직도 나는 사람들이 왜 웃었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그 후로 교회를 다니진 않았지만 배를 곯았던 그 시절, 교회에서 받은 그 달콤한 크리스마스 과자 상자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웠는지 몰라. 나는 교회가 싫었어 라고 말했지만 기억의 밑바닥을 더듬으면 이렇게나 고마운 교회에 관한 추억이 나오다니 놀라울 따름이야.
성경을 보니 교회는 모임이나 어느 지역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지 건물을 일컫는 말이 아니더라.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면 그곳이 교회가 되고 테니스 치러 가면 바로 그곳이 교회가 되는 것이더라. 그러니까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는 것이냐 같아. 그리고 누구를 만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성경)을 읽는 것이고.
청소기를 사도 매뉴얼이 들어있는데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가 우리에게 매뉴얼 하나 안 남겼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인간이라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다 쓰여있는 성경을 왜 전에는 읽어볼 생각을 못 했을까. 성경에 있는 흥미로운 사건들만 뽑아서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갖다 쓰니까 왠지 성경에 나온 얘길 대부분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
왜 사람들은 내게 교회에 다니라고만 말하고 ‘인간이 살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성경에 쓰여있다’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찾아서 읽고 속으로 교양인이라 자만하면서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성경은 읽어볼 생각을 못 했을까?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었어. 그 책에서 철저하게 대중을 통제하는 총통이 자신만의 금고 속에 넣어둔 책이 성경과 셰익스피어더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이제는 알 것 같아.
종교개혁 전에 귀족들만 성경을 읽고 그것을 일반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인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한 이유도 이제야 짐작이 가.
순정아, 그런데 일반 책들과는 달리 성경을 읽는다는 게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 성경의 책 표지가 천근만근이라도 된 듯이 무겁게만 여겨지고 성경을 읽으려고 붙잡을 때마다 항상 다른 것에 눈길이 더 갔어.
성경을 읽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내 속에 방해 요소 때문이었을 거야. 나는 오랫동안 세상이 알려주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체화한 사람인데 성경은 세상과는 다른 특별한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고 있으니 세상을 따르는 내 몸과 마음이 성경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니.
그러나 다행인 것은 성경은 글자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처럼 ‘breathed out by God(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은 혹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것이어서 성경을 정석(?)대로 해석하지 못하더라도 개개인에게 고유한 경험과 감동을 선물해 주는 것 같아.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 400번이나 인용되어 있다고 들었어. 그러니 성경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성경을 읽고 그것이 내 마음에 무엇을 남기는지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었어.
순정아, 어느 일요일 아침에 나는 그것을 경험했어. 그날 나는 원래 다니던 교회로 향하던 중이었어.
차를 타고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예배 시간을 맞추긴 틀려서 그냥 집 앞에 있는 교회에 가게 되었어. 그곳을 지나는 8년 동안 나는 한 번도 그 교회로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그날의 그 교회의 설교 주제는 '지옥은 존재한다'였어. 속으로 좀 놀랐어. 바로 한 주전에 성경 모임에서 내가 한 말 때문이야.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내겐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오늘이 지옥인 사람에게 죽음 후 영생을 약속하는 건 의미 없이 들릴 거예요. 게다가 천국 가는 티켓 받겠다고 죽을 날 가까워서 교회를 찾는 건 속 보이는 일이죠. 평생 죄짓고 살다가 죽기 전에만 회개하면 천국 간다니 그건 너무 불공평해요.”
목사님 설교를 듣고 나는 천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 지구에서의 삶은 평생을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기다란 길에서 완전히 초입일 뿐이더구나. 지구 이후의 삶이 더 길고 긴 것이더구나. 죽은 후 남은 길이 어떤 길이 될지 살아있는 동안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어. 그리고 그 선택의 기회는 지금 한 번뿐인 거였어.
목사님 설교가 끝나고 남자가 나와서 성경 구절을 읽기 시작했어. 마태복음이었어. 그가 25장을 읽기 시작했어.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그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 눈물은 점차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나는 콧물까지 줄줄 흘리며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어. 옆에 앉은 여자분이 휴지를 건네주더라. 그런데 그분이 휴지를 박스로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잖니. 몇 장의 휴지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눈물 콧물 범벅의 향연이었단다. 그 여자분이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셨어. 나는 너무나 창피해서 눈물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마침내 남자가 성경 구절을 읽는 것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어. 그제서야 내 눈물도 멈추었고 보니까 아저씨는 내게 휴지를 건넨 그 여자분의 남편이더라. 나는 창피했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을 저지른 거야. 교회에서 울고불고하는 사람들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생판 모르는 외국인들 틈에서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른 거야.
순정아,
내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넌 병마와 싸우면서 네가 겪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넌 내게 말했어.
"A.K, 내가 말기 암에 걸리고 나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 실제로 만나본 분도 있고. 그분은 암을 이겨내고 지금은 목회자로 살고 계셔. 근데 그런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뭔지 아니? 그분들은 병을 낫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지 않았어.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주님께 맡겼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주께 기도를 드렸대.
작년에 항암치료를 받을 때… 그걸 받고 나면 정말 온몸의 세포가 모두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거든. 이렇게 죽는 거구나 싶어서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기도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아. 기도하면서 생각했어. 나는 모든 걸 다 참회했는데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해야 그분들에게 일어나는 기적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지. 주님께 더 이상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어. 그래서 나도 그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께 내 목숨을 맡긴다고 그렇게 기도를 드렸는데…. 근데 그때 내가 말이야. 내 스스로 알아. 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주께 맡긴다, 죽어도 좋다 날 데려가시라 그렇게 말하는 내가 백 프로 진심이 아니란 걸 내가 아는 거야. 그래도 살고 싶다는 염원이 고개를 삐집고 나오는 거야. 나는 괴로웠어. 왜 내 목숨을 놓아버리질 못하나. 그래서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솔직히 고백하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했어. 그렇게 기도하는 와중에 천둥 같은 음성이 들렸어.
주권!
그리고 다시 음성이 들렸어.
널 내게 맡기지 않았다!
A.K야, 내 믿음은 잘못돼 있었어. 나는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를 완벽히 믿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믿은 건 아니었어. 그리고 왜 내가 주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지도 깨달았어.
어릴 때 어떤 영상을 보았었어.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분의 이야기였는데 그분이 집을 비운 사이 그분 아내가 집에서 테러를 당하셨어. 온 벽에 피칠. 너무 끔찍해서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선교사분 아내의 머리 가죽, 선교사가 아내의 머리 가죽을 들고서 우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그분은 그래도 선교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어.
어릴 때 그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그리고 내 무의식에선 '주님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 = 죽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버린 거야. 주님을 믿는 게 기쁨과 평안이 아니라 죽음과 공포와 두려움으로 오염되어 버린 거야. 까맣게 잊고 있던 그 기억이 그렇게 떠올랐단다. A.K야, 우리의 모든 기도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거더라. 우린 그저 인간이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더라. 전지전능한 그분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더라. 나는 그걸 깨달았고 그래서 지금의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된 거야.”
순정아, 넌 답을 구한 듯 보였어.
그러나 나는 내가 받은 답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전교에서 꼴찌 학생 주제에 난이도가 높은 문제, ‘고난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요?’라는 문제지에 답을 구하려 꽤나 골머리를 썩였고 결국 출제자가 답안지를 보여주었는데도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솔직히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내가 받은 답안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어. 답안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어.
‘고난은 징계와 은혜를 위해 존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