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정아,
요즘은 우리의 대학 시절을 자주 떠올리고 있어. 네 별명 기억나지? 아마도 내가 지어준 별명 같은데… 애들은 너를 ‘데미 무어’라고 불렀어. 하지만 그냥 데미 무어가 아니라 반드시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데미 무어 어야 했어. 왜냐하면 넌 대학 내내 그리고 졸업 후에도 항상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데미무어처럼 검은 머리의 짧은 숏커트를 하고 다녔으니까. 나는 아직 너처럼 짧은 숏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내가 대학 시절의 순정이 널 떠올리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바로 너의 그 짧은 숏커트고 그다음 떠오르는 모습이 바로 강릉의 겨울 바다야.
순정아,
왜 우리가 1989년 12월의 강릉의 바닷가를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그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었어.
우린 대학교 1학년이었고 몇 명의 선배들과 함께 겨울 바다를 보러 강릉에 갔었지.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차가운 겨울 바다 위로 눈이 녹지도 않고 쌓이는 것 같았어. 우린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바닷바람을 맞고 놀다가 꽁꽁 언 몸을 녹이러 해변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갔어.
카페 안에는 장작이 타고 있는 벽난로와 피아노가 놓인 작은 무대가 있었어. 너는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피아노를 치며 푸른 하늘의 ‘겨울 바다’라는 노래를 불렀어. 벽난로에 익은 너의 빨간 볼, 반짝이는 눈빛, 수줍지만 최선을 다해 열창하던 네 모습은 사진처럼 뇌리에 각인되었어. 내 머릿속 그 사진은 너의 프로필 사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단다. 그 후로 겨울 바다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순정이 널 떠올렸고 그 함박눈이 내리던 겨울 바다가 마치 뮤비처럼 재생되었어.
당시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
“늙은 우리가 상상이 되니?”
“30대까지는 그럭저럭… 근데 그 이후는 상상도 안 돼.”
“우리도 뽀글뽀글 파마를 하게 될까?”
“순정이 넌 안 그럴 거 같아.”
“너도 파마 안 어울려.”
“우린 어떤 남자랑 결혼하게 될까?”
“애도 낳고 막 그러겠지?”
“아악! 이상해!”
멀고도 멀게 느껴진 미래였기에 그래서 더욱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선물상자를 받을 것은 확실한데 단지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부푼 기대와 흥분의 시간이었지. 그래, 우리에게 그런 때가 있었어. 하지만 그 나이를 살 때는 우리가 보내는 그 ‘현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었지.
순정아,
청춘은 영화의 플래시백 장면처럼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거더라. 그런데 우스운 건 어느 날 환갑이 넘은 지인이 날 보고 그러더라.
“A.K 씨는 젊잖아요. 뭐든 해도 되는 나이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까 옆에 계시던 70대의 지인이 그 언니에게 말했어.
“00 씨 나이도 뭐든 해도 되는 나이예요. 체력만 된다면요. 그런 의미에서 다들 운동합시다, 운동.”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우린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버리지 않고 살았지. 우리의 수다는 주제가 다양했는데 대부분의 수다의 결론은 ‘그래도 애들 안 아프고 추위 더위 피할 집 한 칸 있고 배곯지 않게 일용할 양식이 있고 반복되는 노동을 견뎌주는 건강한 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를 되뇌는 것이었어. 그런 대화 끝에 내가 말했었어.
“우리, 아내로서 엄마로서 할 일 다 해놓고 나면 둘이 같이 살까?”
“우리 남편들은?”
“보통 남자 평균 수명이 여자보다 짧다니까… 만약에 그때 우리가 서로 싱글이라면….”
악의는 없는 그냥 팩트에 가까운 말이었지.
“같은 집 안되면 옆집이어도 좋겠다.”
“그러니까. 제주도 어때? 한 달 살기 그런 거 유행이잖아.”
“제주도! 너무 좋아. A.K 너만 믿고 기다릴게.”
언젠가 너는 이런 말도 했었어.
“A.K, 나는 말이야 세상하고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려워. 뭔가 내가 잘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이야.”
나는 웃으며 네게 말했었어.
“순정이 너가 TV를 너무 안 봐서 그래. 세상이 직접,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주입하는 가치와 관념들이 있잖아. 그것들을 수용해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지는데 넌 안 그렇잖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살면서 혼자 겉도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어. 취미든 직업이든 다양하게 시도해 봤지만 딱히 내 열정을 불살라서 그것에 빠져들고 싶은 그런 분야는 찾지 못했어. 그나마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해오고 있는 취미는 글쓰기이지만 나머지 것들은 내 흥미를 오래 끌지 못했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어. 잃어버린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세상 속에서 열심히 찾고는 있었어. 그러다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단다.
‘이 세상 어떤 경험으로도 만족되지 못하는 어떤 갈망이 있다면, 내가 지금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개연성 높은 설명이다’.
신을 만나고 나서 나는 내가 찾던 것이 ‘진실’이 아니라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진리의 책인 성경을 읽기 시작했어. 그래, 순정아. 네가 그토록 나를 위해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졌어.
순정아,
나도 들은 얘긴데 어떤 남자가 교회를 다니는데 주변에서 아내분은 왜 전도 안 하냐고 물어봤대. 농담으로 “혹시 일부러 전도 안 하시는 건 아니죠?" 라고 물으니까 그 남자도 농담으로 “혹시 천국에서도 부부가 또 만나게 될까요?” 하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리더라. 물론 천국에서는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도 없겠지. 하지만 그런 농담을 할 정도로 신앙인들에게도 부부관계란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인 가봐.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존재는 아내가 되고 아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존재도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이 되는 것 같아. 평생의 동반자로 함께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지.
특히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남편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자존감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 살림한다고 사회나 회사에서 ‘아내 월급’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나오는 게 아니니까. 남편의 급여에 아내 월급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겠니. 나도 결혼 생활 동안 남편에게 자주 많은 평가를 받아왔어. 나도 역시 그를 평가해 왔고. 나의 경우엔 가족들과 친구들과 떨어져서 혼자 타국에 있다 보니 남편의 나에 대한 평가에 많이 의존했던 것이 사실이야.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순정이 너도 만나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그랬을 때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한 느낌이었어. 친구들이 내 말에 빵빵 터지고 나도 그들 말에 배꼽을 잡고 웃고, 밤을 새워 수다를 떨며 아하면 어 하고 알아듣는,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이 제일 감격스러웠어. 그때 깨달았어. 내가 성격이 급해서, 내가 특이해서,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다툼을 하면 남편은 자꾸 내가 말을 잘못해서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한 것이고,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저렇게 이렇게 된 거다라고 주장했었어.
남편이 끊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던 시기, 그는 그 사실을 내게 몇 년 동안 숨겨왔어. 내가 어디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는 못 들은 척 혹은 모르는 척하다가 내가 자꾸 말하니까 괜히 이상한 소리 한다는 듯 행동했어. 나는 내가 정말 이상한 아줌마인 줄 알았어. 그러나 집 차고에 있던 남편 옷 주머니에서 담배가 발견되었고 그는 그제야 그동안 간간히 회사에서 담배를 피웠던 것을 인정했어. 별 대단한 일도 아닌데, 담배를 다시 피운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세상이 두쪽 나는 것도 아니고 내게 그저 한 두 마디 잔소리를 듣게 될 텐데 그게 그렇게 싫어서 오랜 세월을 그 사실을 숨겨 왔다는 것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지.
친구들과 만나서 실컷 수다를 떨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내 언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발견했어. 그러자 연애 시절 남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생각났어. 그리고 그때 깨달아졌어. 남편이 아파하는 약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 나는 남편에게 당신과는 대화가 안 통한다고 종종 잔소리를 했던 게 틀림없어.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이 공격당하는 것에는 관대한 편이지만 약점을 공격당하면 과도하게 반응하고 맹렬히 방어하잖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는 나름의 방편을 강구한 거였어.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공격이 그의 방어였던 셈이지.
남편은 나를 인생의 동반자이자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소한 예로 같이 줄넘기 같은 것을 해도 나보다 자신이 못하면 언짢해했어. 그의 강한 자존심 때문에 나는 그가 신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역시 신앞에 절대 고개를 숙이기 싫은 마음,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야.
그런 그가 스트레스의 원천으로부터 벗어나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나니까 사소한 것들을 더이상 문제 삼지 않더라.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그런 날들이 결국에 오긴 오더구나. 어떻게 그런 축복이 왔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 아무튼 그런 날들이 오기 전까지는 나도 남들처럼 아웅다웅 에너지가 소모되는 부부싸움을 했단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서 한 지붕 아래서 평생을 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니. 그래서 부부관계란 독실한 신앙인들도 넘기 힘든 태산 중에 태산인가 봐.
순정아,
너 앞에서는 당당한 척했지만 실은 나도 가족이나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나도 뉴질랜드로 이민 온 후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했었어.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유치원 교사 과정을 공부했어. 유치원 실습과 공부에 정신이 없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방과 후 프로그램에 아이를 등록했단다. 그렇게 일 년 여의 시간이 지났는데 아이가 천식 때문에 아파서 학교를 못 가게 되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는 거야. 집에서 애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비용이 내가 일해서 버는 돈보다 비쌌으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일 대신 아이를 택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어.
어느 날, 방과 후 프로그램 선생님이 내게 말했어.
“D가 애들하고 놀지도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어요. 좀 걱정이 되는군요.”
서둘러 일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가면 보게 되는 풍경은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마치 설탕을 한 컵씩 먹은 것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고 D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거야. D가 책이라도 읽으려고 펼치면 누군가 뛰어와 그 책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다시 뛰어간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어. D는 어릴 적부터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선호했고 특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어. 선생님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정상적인 행동은 D도 다른 아이처럼 괴성을 지르며 책상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괜히 옆에 있는 아이에게 부딪치고 몸싸움을 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라. 그때만 해도 내 아이에 대한 나의 판단과 이해에 자신이 없을 때라 나는 D가 환경에 적응을 잘 못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어.
처음으로 아이의 학교 성적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도 그때였어. 그래서 나는 일을 그만두었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도 굶주리지 않았으니까, 혹은 자아실현이 절박하지 않아서였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어. 내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을 챙겨 먹었던 그 경험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내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어. 아이가 학교에 돌아오면 대문을 활짝 열며 정다운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고 간식을 내어주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는지 정담을 나누는 거 말이야.
순정아,
네게도 힘들었던 그 부부 문제가 네가 병에 걸리자 햇볕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더구나. 지옥 같은 고통을 주는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건 바로 네가 얻은 ‘사랑' 때문이었어. 너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너는 그렇게 가졌지. 너와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고 그건 네가 전에는 결코 맛보지 못한 완전한 충만감을 준다고 했어. 그렇게나 사랑이 위대한 것이었어.
사랑이 그렇게나 위대한 것이라는 걸 네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어. 이제 나는 사랑만이 인류의 희망이라는 것을 인정해. 사랑할 대상이 없는 인간이 얼마나 불행한 인간인지를 이제 알게 되었어.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없는 사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대상이 없는 인간은 삶에 목적도 희망도 갖지 못하고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해 버리지.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희망이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사랑이 위대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단다.
순정아,
네가 전화했을 때가 2018년 7월이었지? 한국이 무더운 여름일 때 여긴 한겨울이었지. 이 땅은 섬나라라서 바람도 많이 부는데 특히 우리 집은 바닷가 앞이라 집안에서도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잘 들린단다. 폭풍이 자주 치는데 바람이 시계 초침처럼 규칙적으로 치면 그 소리에 숙면을 취하기라도 할 텐데 그놈의 바람은 제멋대로 방향과 세기를 달리하는데 게다가 비까지 합세해서 소리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단다.
그런 겨울에, 썰렁한 집안에서 어깨를 웅크린 채 창문에 미친 듯이 부딪치는 빗줄기를 보고 있을 때 네게 전화가 왔어.
나는 아이 방학을 맞아 12월에 한국 간다고 가서 널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했지. 그때 강릉 겨울 바다에 가자는 얘기가 나온 거야. 29년이나 지났으니 그 카페는 당연히 없어졌겠지만 왠지 그곳에 가기만 하면 다시 29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 불현듯 네가 말했어.
“A.K 야, 너 요리 잘하지?.”
“그럭저럭 한국음식 구하기 쉽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좀 늘긴 했지.”
“막 빵도 굽고 그러지?”
“응.”
“네가 만든 빵 먹어보고 싶다. 거기 가서 맑은 공기 쐬고 너가 해준 음식 먹으면 왠지 내 병도 다 나을 것 같아. 어떤 분이 감사하게도 내가 아픈 거 알고 어느 날 찾아와서 돈을 좀 주셨거든."
순정아, 너가 그때 뜬금없이 돈 얘기를 꺼낸 것이 우리 집에 올 비행기 값은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는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단다. 너는 시한부라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직장을 다녔잖아. 직장의 배려로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할 수 있다고 너는 그것에 진심으로 감사해했어.
말기 암 환자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전 재산을 팔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일 따위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인가 봐. 너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고 그 와중에도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었지. 그런 너에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나는 기억해.
“…근데 지금 여기 겨울이야. 여기 겨울 별로야. … 제주도는 어때? 거기서 쉬면 기분전환도 되고 좋지 않을까?”
“제주도 좋지……”
순정아, 나는 왜 그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당장 와! 대환영이야! 내가 밥 다 해줄게. 아침으로는 베이컨, 구운 버섯, 스크램블 에그를 해줄게. 갓 짠 오렌지주스와 우유 크림을 얹은 플랫 화이트 커피랑 같이. 점심으로는 육수에 갖은 야채를 넣고 쇠고기 핫팟을 해 먹자. 저녁엔 초록 잔디만 먹고 자란 양의 갈비를 양념에 재워서 바비큐로 구워 먹고. 너랑 집 앞 바닷가에 우리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가는 거야. 공원에 가서 양들이 풀을 뜯어먹는 것도 구경하자.’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네가 여기 오고 싶다는 말을 듣자마자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가 떠올랐어. 임종이 가까워진 상태로 우리 집에 오시자마자 돌아가셨지. 그 모습이 떠오르면서 겁이 났고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어.
‘혹시 순정이가 여기 와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넌 항암치료를 중단한 지 7개월이 넘은 상태였고 장시간 비행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너도 어쩌면 그냥 해본 말이었을 텐데도 왜 나는 그렇게 냉정하게 말했을까.
순정아,
너도 이미 알고 있었지. 내가 실은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넌 나를 너의 소울메이트로 대해주었어.
얼마 전 집에 운전하고 오다가 내 눈앞에서 차가 사람을 치는 걸 목격했단다. 얼마나 놀랐는지 집에 도착해서도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어.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배가 고파서 얼른 밥상을 차려 한 그릇 뚝딱 비웠단다. 나는 그런 인간이야. 겉으로는 휴머니즘, 우정, 사랑 등등의 가치를 토해내지만 실상은 내 한 끼가, 내 목숨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이야.
인간이 모두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맞아. 우린 다 그런 인간이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게만은 더 괜찮은 인간이어야 해. 특히 네가 병마와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는 더욱. 널 위해 기도한다고 해놓고 나는 처절한 기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울며불며 신께 매달리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어. 태어나서 그런 기도는 해본 적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저절로 그런 기도가 터져 나오는 경험을 그때는 해본 적도 없었어. 그래서 널 위해 하는 눈물 찔끔 어린 그 기도가 나는 나의 최선의 기도인 줄 알았단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절대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비극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겪는 고통을 가족과 친구들이 나눠 가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환자가 느끼는 100의 고통을 100명이 1씩 나눠가질 수 있다면.... 그런데 고통의 공유가 불가하다는 그 사실이 비극이면서도 엄청난 은혜라는 게 너무 아이러니해. 눈앞에서 타인이 죽어 넘어가도 나는 건강하니까 손가락 하나 아프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 수가 있는 거잖아. 저 먼 나라에서 전쟁이 나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어도 그래도 우린 멀쩡히 잘 살 수 있는 거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외롭게 만들어버리는 게 인간이잖아.
우리의 대화의 마지막에 내가 말했어.
“순정아, 우리 12월에 보자. 겨울 바다 내가 너 모시고 갈게.”
“A.K, 나.. 그때까지.. 나 몸 그 정도 상태 안돼.”
“… 순정아, 기도할게. 사랑해.”
“고마워. 나도 사랑해.”
순정아, 나는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어. 만약 알았다면… 만약 알았다면 나는 네게 무슨 말을 했을까? 기도하겠다는, 사랑한다는 말 이외에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