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어느 날.
사랑하는 순정아,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네게 보내는 이 편지는 실은 내 일기와 같은 것이었어.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겠기에, 그리고 너를 향한 그리움을 묻어둘 곳이 필요했기에 이 글을 시작했던 거야.
순정아, 아직 네게 말하지 않은 소식이 있어.
남편이 마침내 직장을 옮겼단다. D가 세 살 때부터 다니던 직장이니 13년 만의 이직이야.
남편의 직장문제로 내가 너한테 종종 하소연했었지?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사이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는 남편의 직장 문제였어. 남편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 가정이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어.
아내인 내가 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만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밥 잘해주고 될 수 있으면 집안일 신경 쓰이게 하지 않는 것 말고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어.
그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뿜어내는 그 어두운 에너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혼자 즐거운 척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어대기도 하고 여행 계획을 짜서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어. 나도 가만히 있으면 집이 우울해지고 가뜩이나 혼자 크는 아들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내가 더 광대 노릇을 하게 되더라.
남편이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느냐면 내가 뭘 물으면 그냥 대답을 안 하는데 자기가 대답을 안 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어. 퇴근하면 나한테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는 없으니까 나랑 대화를 하는 대신 아이폰 속 웹툰 세상을 들여다보며 스트레스를 풀었어.
여행이라도 가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싶었는데 남편은 이렇게 말했어.
“여행 가면 올 때가 더 싫어. 다시 출근해야 하잖아.”
그래, 그 정도로 회사 다니기 싫었던 거야. 나는 남편에게 말했어.
“우리 차라리 작은 식당을 하자. 나 자신 있어.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은 한숨을 푹 쉬었어.
“장사는 자기 전 재산을 걸고 하는 건데 망하면 리스크가 얼마나 큰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음.. 그럼 지금보다 월급이 적어지더라도 다른 직장 구하면 안 돼?”
“이쪽 분야는 바닥이 좁아. 다 거기서 거기야.”
“해드헌팅 회사에 이력서는 보냈어?”
“바닥이 좁아서 소문이 나면 여기 회사에서 곤란해져. 신중해야 해.”
“여기를 아예 떠날까? 호주 어때? 자기 호주에서 일 구해보면 어때?”
“호주나 여기나 비슷하지… 그러면 나 한국 가서 강아지 미용기술 배워올까?”
“좋은 생각이야!! 여기 집 팔고 교외에 땅 좀 있는 거 사서 애견 호텔하고 미용을 같이 하는 거야.”
“근데 강아지 미용 그런 걸로 지금 우리가 쓰는 생활비가 충당이 되겠어? …. 잊어버려. 그냥 해본 말이야.”
이렇게 저렇게 제안을 해봐도 그에게선 언제나 비관적인 대답이 나왔어. 혹시 남편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내가 통장을 내밀며 ‘자, 여기 그동안 내가 숨겨둔 5억이야. 당장 회사 때려쳐!’가 아닌가 싶어 속상했어.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 그 와중에 나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남편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어.
어느 날인가는 남편이 자면서 앓는 소리를 내더라. 일이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어서 내가 자는 남편을 깨워서 손을 잡고 “기도해 줄게. 기도해도 돼?” 그러니까 잠에 취해서도 “그래”라고 하더라.
신앙이 없으면서도 얼마나 힘들면 기도해 달란 소리가 나올까 싶었어.
2018년 1월에 성경 공부 모임에서 그해의 기도 제목을 내놓을 때 나는 남편의 이직을 기도 제목으로 내놓았어. 그리고 매일같이 기도했어.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남편의 새로운 직장을 위해서 내가 붙잡아야 할 성경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어. 나는 그 구절을 놓고 기도했어. 그때 마음속에서 어떤 음성이 들렸어.
‘새 직장이 생길 거야’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얼굴이 달아올랐어. 마치 눈앞에서 남편에게 새 직장에 관한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나는 너무나도 강력한 확신에 찬 기쁨을 느꼈어.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에게 메세지가 왔어.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저녁 먹고 들어가.’
나는 그 약속이 새 직장과 관련된 것이라는 걸 확신했어.
그날 저녁 집에 온 남편이 말했어.
“실은 오늘 저녁 약속 있었는데 회사 이직 제안을 받았어. 중국 투자자가 여기에 새 회사를 차린대.”
며칠 후에 남편은 말했어.
“오늘은 다른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어. 그런데 이번 회사는 호주에 있어.”
남편은 두 가지 제안 중 호주에 있는 회사로 갈 것을 결정했어.
그런데 일이 순탄하게 진행이 되질 않았어. 11월이 다 지나가도록 호주행이 결정이 될 듯하다 안되다가를 반복하니까 남편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보이더라. 내가 그를 위해서 해줄 일은 여전히 기도밖에 없었어.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쏟아졌어. 남편의 불쌍한 영혼이 내 가슴을 쳤어. 성실하고 잔꾀를 부릴 줄 모르는 그가 짊어진 노동의 고통, 가장의 고통이 느껴지면서 한 인간의 삶이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어. 나는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어. 그의 연약하고 불쌍한 영혼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길 간절히 기도했어.
그리고 2018년 12월에 남편은 마침내 새로운 고용계약서에 사인을 했어.
그로부터 6개월 전, 2018년 7월, 남편은 말했어.
“12월 가족 휴가 날짜 아직 결정을 못 하겠어. 공장문을 1월 초에 열면 휴가를 1월 중순에 가야 할 수도 있고..“
그때 나는 마음속에 떠오른 말을 불쑥 내뱉었어
“지금 회사 일정은 신경 쓰지 마. 당신이 12월 휴가 갈 때도 지금 직장에 계속 다니게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아. 크리 마스 휴가 다녀와서는 새 직장으로 출근하게 될 거 같아.”
나의 이런 황당한 예언적인 발언에 남편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는데 실제로 그 말이 현실이 된 거야.
순정아,
알아.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지 내 말의 힘이 아니라. 남편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하면서 자신의 평판을 쌓지 않았다면(다른 사람들이 일 년을 못 버티고 떠나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며) 그리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분은 응답해 주실 수 없었겠지.
처음에 나는 아이와 내가 당연히 같이 호주로 가는 건 줄 알았어. 침대에 나란히 누워 미래를 계획하면서 나는 말했어.
“그럼 바로 집정리하고 준이 학교 전학하고 그러면 되는 건가?”
옆에 누워있던 남편이 말했어.
“그럼 나 안가.”
마치 토라진 듯한 그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어. 나는 당연히 가족이 함께 가는 줄 알았지만 남편 생각은 그게 아니었어. 나는 서운함을 감추고 말했어.
“하기는 D도 대학입학까지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전학을 시키는 거는 무리지. D 졸업 때까지 내가 여기서 수험생 뒷바라지하고 D 졸업하고 가는 게 맞네.”
솔직히 이런 악한 마음이 들더라. 남편이 싱글라이프를 즐겨보고 싶어서, 회사에서 아파트도 제공해 준다니까 급여가 현재 받는 금액보다 훨씬 낮은데도 저렇게 기쁘게 떠난다고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남편이 처음 시작하는 곳에서 나와 아이까지 책임지기에는 짐이 너무 무거웠을 거야.
남편은 워낙 비행기 타는 것도 좋아해서인지 한 달에 두 번씩 집에 오는 게 여행 오는 기분도 들고 좋은가 봐. 시드니에서 혼자서 장보고 밥 먹고 운동모임도 나가고 그런 생활이 괜찮대. 단지 출근하지 못하는 일요일에만 조금 괴로운 모양이야(교회를 가면 좋을 텐데). 물론 현재의 직장이 이전 직장처럼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견딜 만 해진 것이겠지만.
나는 남편과는 반대로 적어진 수입과 두 집 살림에 드는 비용으로 허리띠를 바싹 동여매야 하는 형편이라서 가정주부로서 마음이 편한 상태는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좋아. 남편의 얼굴이 밝아졌으니 그것으로 된 거야.
우리 부부 사이는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어.
예전에 엄마들 모임에서 남편들 얘기가 나왔는데 누군가 말했어.
“그쪽 남편들은 어때요? 왜 제 남편은 제가 감기에 걸렸나 봐 그렇게 말하면 아무 말도 못 들은 사람처럼 구는 걸까요? 아무 반응이 없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내 남편은 그래도 병원 가보라고는 해요, 내 남편은 작은 병도 심각하게 생각해요 등등의 말을 했어.
그분이 내게 물었어.
“D아빠는 뭐라고 할까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했어.
“내가 안 그랬어, 아마 그렇게 말하겠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어.
그래, 순정아,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어. 내가 남편에게 “00 어디 갔지? 여기 있던 00 봤어?”라고 물으면 보통 사람들은 “아니, 못 봤어” 혹은 “봤어, 저기다 뒀어”라고 대답하지만 남편은 “내가 안 치웠어”라고 말하는 타입이었어.
그가 자기 방어가 강한 사람이라는 건 결혼 후 살면서 알게 되었어. 신혼여행 때부터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됐어. 그는 아내인 나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마치 무대에 올려진 사람처럼 주위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행동했어.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내가 이상한 사람과 결혼한 줄 알았거든.
이민 초기에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돌연 나는 숨이 막히면서 어떤 감정에 휩싸였어. 나는 절망적으로 그에게 말했어.
“자기야, 나 숨을 못 쉬겠어. 더 솔직히 말하면 그냥 목을 메서 죽고 싶은 심정이야. 내 말은 내가 그 정도로 답답해.”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어.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말했어.
“실은 우리 아버지 쪽… 그쪽 형제들에게 시집온 두 분이 모두 자살했어.”
남편이 왜 돌연 그 얘길 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가 그 얘길 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처음으로 그가 내 문제가 내 문제만은 아니라고 우리 공동의 책임일 수 있다고 인정한 것 같았거든.
남편은 종종 내게 “넌 꼭 우리 아버지 같아”라고 말하곤 했었어. 남편의 아버지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 엄격했고 소리도 지르시고 아무튼 남편은 결혼할 당시까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었어. 반면에 남편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어떤 지적도 하지 않으셨지. 그가 내게 기대한 건 자신의 어머니 같은 여자였을텐데 나는 내 태도를 고치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건 그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
‘나는 네 엄마가 아니라고!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꼭 맞잖아. 배우자를 선택할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억압한 부모를 닮은 배우자와 결혼한 후 그 힘의 관계를 정반대로 실현하면서 억압되었던 욕구를 해소한다더니!’
내가 그의 실수나 단점을 사랑으로 감싸주었더라도 그가 항상 방어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신앙을 가지고 나서야 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어떤 문제가 있고 상대방만큼 나 자신의 허물도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의 허물은 남편의 단점이나 허점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는 거였어. 그가 나보다 모든 면에서(인격과 성격을 포함해서) 뛰어나길 바라는 욕심이었지.
순정아,
알지?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대부분의 대화 주제가 부부 문제였다는 걸. 언제나 너를 괴롭히던 그 부부문제가 네가 병에 걸리고 나서야 뜨거운 태양에 눈 녹듯 사라져 버렸었지.
얼마 전에,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어.
“순정이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지금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 나는 언제나 당신과 가족, 친구들,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정작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은 없어.”
남편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말했어.
“내가 기도해 줄게, 뭐라고 기도할까?”
남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전에는 상상도 못 했어.
그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어. 영적인 전쟁터에서 혼자 싸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내게도 지원군이 있었던 거야. 언제나 내 뒤에 서 있었어. 저렇게 약한 무기를 들고 도대체 나와 가정을 잘 지켜줄 수 있을까 항상 의심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화려한 총기가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성실함과 책임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지.
D가 대학을 가고 나면 나도 남편이 있는 시드니로 가야 해. 20여 년을 살아온 나라를 떠나는 일, 내 신앙생활을 도와주고 많은 고민을 함께 나누어준 성경 공부 모임의 자매들을 떠나는 일은 슬프지만 하나님이 주신 답이 떠나는 것이라면 순종해야지.
다행히도 시드니는 큰 도시여서 한국 교민도 많을 테니 글쓰기 모임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 시드니에 있는 대학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볼 꿈도 꾸었어.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말했어.
“실은 선샤인코스트에 새 공장을 지을 거야. 투자를 받았어. 거기로 가야 할 것 같아. 브리즈번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야.”
알아보니까 선샤인코스트란 곳은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전형적인 휴양지더라. 백인 비중이 호주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고 제대로 된 한국 슈퍼도 없는 곳. 새 공장을 짓는다니 남편을 위해서라도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고 잘된 일인데 난 가슴이 철렁했어. 바닷가에 서서 하염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기운이 빠졌어. 내가 세운 계획이 다시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어.
그런데 생각해 봐. 내가 세운 계획이라는 문구 속에 얼마나 큰 교만이 숨어져 있는지. 우리가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거잖아.
하나님이 내게 다시 인내의 시간을 주시는구나 생각했어. 순종이 가장 큰 예배라고 생각하면서도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어.
그러던 중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어.
이민 초기에 그때는 신앙도 없었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었어. 교민 잡지에서 광고를 봤는데 우리 학교 동문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목회를 시작했더라고. 반가운 마음에 신앙도 없는 주제에 당장 가보았단다. 작은 교회 예배당에 앉아서 그분의 설교를 들었어. 그분 안색이 초지일관 좋지 않더구나. 그분이 말했어.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뉴질랜드인 가요. 여기 아는 사람도 없고 연고도 없고 제겐 여기가 광야나 마찬가지입니다. 외로움의 땅으로 절 왜 보내셨나요.”
알고 보니 목사님은 자원하신 게 아니라 해외파견으로 이곳에 오시게 된 거였어. 그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왜 자기가 여기에 왔어야 했냐는 의문을 담고 있었어.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어.
‘목사님이 오신 게 저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저라는 별 볼 일 없는 인간 한 명 때문에 당신이 여기로 온걸 수도 있잖아요. 당신 때문에 하나님 믿지도 않으면서 이 먼 교회를 찾아온 사람을 못 알아보시는군요.’
그날 이후로 나는 그 교회에 가지 않았는데 내가 선샤인코스트에서 사는 게 맞냐고 하나님께 질문을 드렸을 때 그때 그 목사님이 떠올랐어. 그러자 생각이 바뀌었어.
‘애초에 내가 세운 계획이란 하나님이 세우시는 계획에 비하면 얼마나 헛되며 불안정한 것인가! 그래, 그곳에서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어떤 외로운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친구를 찾고 있을지도 몰라. 내가 그 사람 옆에서 친구가 되어주고 목자에게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순정아, 과연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나는 여전히 너무나 나약한 존재인데 내게 그럴만한 힘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