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정에게"
2017년 3월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순정에게 자신이 간암 4기 판정을 받았다고 연락을 받은 직후부터 순정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을 쓰는 과정 중에 2017년 10월 마지막 주 수요일, 순정은 미약한 육신을 이 땅에 남겼고 그녀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멈출 수 없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글을 쓰면서 나는 슬펐고 기뻤고 분노했고 평화로웠고 그리고 고민에 대한 답도 찾았다.
어릴 적부터 내 고민에 대한 답은 나의 정체성이었다. 왜 내가 태어나야 했는지 왜 내가 인간이 겪어야 하는 그 모든 생로병사를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찰나의 쾌락과 기쁨과 행복을 위해 생의 모든 순간이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노동으로 채워지는 삶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내 몸에 생명체를 품고 아이가 탄생하는 경험을 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만큼 엄마로서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절대 얻어낼 수 없었던 ‘사랑’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비단 부모만이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을 주고 그리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어리숙했던 나는 매우 늦게 깨달았다.
길고 두꺼운 성경책을 몇 번 읽고 난 후 나는 그 긴 이야기의 핵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구구절절한 그 이야기의 본질은 ‘사랑’이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점점 내가 권력도 명예도 돈도 미모도 젊음도 없는, 길에 걸어 다니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보도블록 사이에 핀 잡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그 질문은 내가 왜 태어났는지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었고 답은 역시 똑같았다.
‘사랑’.
사랑이 본래 많은 성품이 아니어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하면서 살기로.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미소를 짓는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나는 친절할 수 있다. 나는 미소를 짓는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정도가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그 정도만 잘해도 나는 순정이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줄 거라 믿는다.
긴 글을 읽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미소와 기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