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보다 따뜻한 메모

-오늘도 행복하세요

by 하이움

다짜고짜 따지는 사람에게

처음에는 화나고 나중에는 질리다가

결국 같이 화를 내 버린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기운이 영 없었다.

결국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화를 버럭 내는 사람치고

깔끔하게 사과를 해 오는 경우 없고

설사 그렇다 해도

커피 자국 정도라면 식탁보를 뒤집으면 되지만

빨간 김치국물 얼룩은

결국 새것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쪽에서도 간단히 마음이 접어지지 않는 것이다.

흥!!


정말 우리 서로 말조심하자고

현수막이라도 여기저기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할 수 없이 라테를 마시러 나간다.


집에서 먹어도 좋지만

기억력이 다소 좋지 않은 나는 이런 날 빛을 발한다.

장소만 살짝 옮겨 주는 것만으로도

마른 나뭇잎이 떨어지듯 잡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

웬만한 건 잊게 되는 것이다.


전부터 눈여겨 둔 카페는

이런 날 가라고 아껴 둔 것 아닌가

나의 치밀함에 흐뭇해진다.

거봐 벌써 기분 상승모드다.


라테와 달콤한 시나몬 빵 몇 개를 주문하고 나니

직장인들 점심시간이었나 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저는 천천히 주셔도 돼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직원이 달랑 한 명이어서 바빠 보였기에

시간 많은 내가 무심히 한말이었는데 좋아해 주니

기분 또 한 단계 상승!!


단체 주문이 나가고

소금빵이 유행(빵 유행 주기가 너무 짧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라 그런지 빵 사러 온 손님 포장도

어지간히 끝나가나 했더니 나를 부른다.


네~~

하고 달려가니 먹기 좋게 썰어놓은 시나몬빵이랑

라테, 그리고 앙증맞은 빵포장 상자가 이쁘게 놓여 있다.


음~ 자리에 앉아 어디 한번 마셔볼까 하는 순간

어머나

어머나

엄청난 것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고객님

미모가 너무 아름다우세요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좋은 일 가득하시길~

빵 맛있게 드세요

빵포장 상자에 떡하니 붙어 있는 메모!!


아우 야~~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그녀는 알까

오늘 내가 여기를 어떤 기분으로 왔는지

물에 젖은 오래된 털옷을 입은 양

바닥에 질질 끌리는 마음으로 왔는데

그녀의 다정한 메모가

무겁고 축축한 옷을 삭 벗겨 버린 기분이랄까

축 늘어진 화분에 물을 준 것처럼

내 기분이

내 마음이 일어난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이 남아 있으니

3차 대전이 안 일어난다 싶다. 고맙다.


이쯤이면 기분 상승이 아니라

만렙을 찍었다.


메모에 적힌 것처럼

아름다운 미모도 아니고

엄청난 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녀 덕분에

정지되어 있던 배경화면이 다시 움직이고

세상은 다시 살만한 곳으로 변한다.

그제야 오늘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이런 예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녀만의 예쁜 하루가 저 골목 어디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일까

사람마다 감동받는 구간과 크기는

같지 않겠지만

이왕이면 애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역시 사람은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고인 물이 무섭듯이

내 생각도 가만히 있으면 고일 것이다.

머릿속에도 여러 길을 내주어야 한다.

흘러가기도 하고 바람이 통하기도 해야 하니까..

그러니

귀찮아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한가한 틈을 타

그 메모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전할 겸 잠깐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피차 서로에게 깨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

꾹 참고ㅋ

고맙다는 말만 아쉽게 전하고

나는 미모가 아름다운 손님으로 남기로 한다.


천천히 라테도 마시고

달달한 시나몬빵을 먹으면서

나는 오늘 누굴 감동시킬까

고민 중이다.


보물처럼 간직하려구요^^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