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하세요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단아하게 머리를 뒤로 묶고
하얀색 셔츠에
블랙 에이프런을 단정히 매고
완벽하게 블렌딩 된 미소를 띤 채
얌전한 포즈로 서 있던 그녀
들어갈까 말까
막 문을 연 백화점에는 사람이 없었고
-허긴 한낮이라도 해도
이런 코너엔 좀처럼 사람이 붐빌 리 없지만-
아무래도 내가 첫 손님인 것 같은데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나중에 다시 올까도 싶었지만
좀처럼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몽롱한 내 정신을 데리고 갈만한 데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의 나라면 당연히 카페에 갔을 테고
역시 아침은 모닝커피지 하며
쌉싸름한 커피를 열심히 마시면서
카페인의 향기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커피를 좋아했는데
커피와는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세상 영원한 게 없다.
그렇게 좋아하는 카페인의 향기를 마다하고
허브티를 마셔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건
지난 불면의 밤이 너무 무서웠던 거다.
"저기... 라벤더 있을까요..."
"네, 그럼요~"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풍기던 그녀가 바로 다가온다.
"잠자는 데 도움이 되는 거 맞죠...? 라벤더.."
그때 그녀는 거짓말이 아니라
아주 걱정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지하게 물어왔다.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건가요?"
흠칫 놀랬다.
아니 그러면 설레잖아요..
그냥 라벤더가 있으니 팔면 그만일 텐데
남에게 관심이 없는 요즘
자기 말만 하기 바쁜 요즘
상대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위에 축 늘어진 꽃들이
이른 아침 시원한 물주기에 몸을 세우는 것처럼
그녀의 질문에-어쩌면 무심할지 모르는-
나는 단박에 확 살아난다.
이상한 일이다.
안 사면 미안해서 시식 코너는
무조건 건너뛰는 내가 그녀가 건네주는
차를 넙죽 받아 들며 간단히 그녀 앞에 앉아버렸다.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이 참에 나의 외국어 실력도 점검할 겸
내 맘 알아주는 마음공부 선생님이라도 만난 듯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탈탈 털어놓는다.
여행을 왔는데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어제도 통 못 잤다고
그래서 오늘 너무 피곤한데
숙면을 도와주는 차가 있냐고~
좀처럼 털어놓는 것을 하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술술 고백하다니..
잠을 영 못 잔다고 말하면
대개는 나이 들면 다 그렇다는 둥
나는 말도 마라며
본인 이야기로 비집고 들어오는 통에
내 이야기를 할 새도 없고
할 마음이 삭 사라지곤 했는데
그녀는 완벽했다.
영업사원의 영악한 미소가 아닌
아주 인간적인 눈빛에 그만 매달리고 말았다
한가해서 그런 것인지
응대 매뉴얼이 그랬는지 어쩌면
원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물어봐주는 것..
인간관계는 그게 열쇠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삼켜 버렸던가
얼마나 많은 질문들이 스러져 갔던가
사려 깊은 눈빛으로 진지하게 듣던 그녀가
숙면에 도움이 될 거라며 블렌딩 된 차를 권해준다.
그리고 한찬 내어준다.
스며든다.
허브티의 온기가..
그녀의 진심이..
민트향이 진하게 우러나는 차 덕분인지
마음속에 바글대고 있는 불안함을 털어놓은 덕분인지
기분이 개운해지고
눈이 맑아진 것 같다.
나만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덕분에 기운을 되찾았다.
단순히 물건을 팔겠다기보다는
내가 내린 차 한잔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
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듯한 그녀에 반해
허브티를 한가득 사서 나왔다.
그 티를 내려 마실 때면
자연스럽게 그녀가 떠오르고
오늘은 또 어떤 힘든 손님이 잠시나마 구원받을지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믿거나 말거나
그 티를 마신날은 잠을 잘 잔다
허브를 좋아해서 딜도 키워보고 바질이나 로즈메리도 키워봤지만
민트는 키운다는 말이 미안할 정도로 스스로
너무 잘 크는 것 같아요.
그 씩씩한 생명력을 보고 있으면
나도 힘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아요~
모두 꿀잠 이루시길 기원하며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