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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현 Sep 04. 2024

학교 안의 식당 하나가 또 문을 닫았다

우리 대학 안에 있는 식당 하나가 또 문을 닫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인이 바뀌고 새 상호를 달았다. 

문을 닫은 식당은 젊은이들의 입맛을 겨냥해 메뉴도 보강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 같다. 

그 장소는 각각 다른 주인들이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 다른 주인이 다른 특색을 가지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제발 오랫동안 유지하고 식당 주인의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게 되면 좋겠다. 


문을 닫은 식당을 자주 가지는 않았다. 학교 안에 있기는 해도 나의 연구실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고 그 중간에도 몇 개의 식당이 더 있었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는데 굳이 가게 되지는 않았다.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 그곳을 한번 가보자고 하거나 그 식당 근처에서 무엇인가를 하다가 마침 점심때가 되면 들르는 정도였다. 그럴 때에도 그 주변에 식당들이 더 있어서 꼭 그곳 만을 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식당의 음식이 수준 이하라는 뜻은 아니다. 깔끔했고 맛도 괜찮았다. 가격도 학교 안의 다른 식당들과 비교해서 결코 비싸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무난했다. 다만 다른 식당을 물리치고 일부러 그곳을 찾아가게 되지는 않는 정도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딱 그 정도여서 그런 것인지 그 식당은 대체로 붐비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곳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번잡하지 않고 편해서 좋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식당 주인은 이 빈 공간이 얼마나 크게 보일까?’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식당을 나오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가능할 때 운동 삼아 갔다 와도 괜찮았을 법한데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표시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 외에는 사람이 없었던 어느 날 ‘이러다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마음만 그렇고 행동은 하지 않은 사이에 정말 그 식당이 문을 닫고 말았다. ‘그동안 좀 더 갈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돼 버렸다. 식당의 분위기는, 중년을 넘기고 있는 부인이 요리사를 두고 주방과 손님 테이블을 오가며 주도했다. 남편은 다양한 허드렛일을 하며 보조를 하는 듯 한 모양으로 운영됐다. 그들의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밝거나 즐거웠던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상호가 바뀐 것을 본 순간 미안한 마음이 솟아 씁쓸하게 가슴에 고였다. 나 하나 몇 번 더 갔다고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안에 있는 식당들은 크게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잘 없지만 경기변동에 따라 크게 출렁이지도 않는 편이다. 대학 안에는 비교적 일정한 규모의 유동인구가 있고 음식 같은 필수 소비재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비규모가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을 위한 공간이 마구 확장될 수 없어서 경쟁이 제한적인 것도 약간의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대학 주변에도 상가가 형성돼 있어서 제한경쟁의 이점은 상황에 따라서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학 안의 식당들은 반면 치명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여름과 겨울, 짧지 않은 두 차례의 방학이 그것이다. 방학 때에는 학교 안에서 움직이던 유동인구가 썰물처럼 죽 빠져나간다. 일 년 12달 중 길게는 4달, 짧아도 3달 정도는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수축한다. 주기적인 침체기가 예정돼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해방의 시기에 식당들은 바위처럼 무거운 압박을 받으며 지내야 한다. 울타리 밖에서 움직이는 소비인구가 대학 안으로 들어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학의 내부 상권은 외부 소비자에게는 대체로 닫혀 있는 공간이다. 누가 막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울타리의 경계를 넘는 것은 편한 일이 아니다. 대학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래서 방학은 대부분의 학교 안 식당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혹한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학교의 그 식당도 결국 이 시기를 못 넘기고 문을 닫았다. 어려움은 지속적으로 가중됐을 것이다. 메뉴도 늘려보고 다양한 대응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했을 것이다. 어려운 중에 더 어려운 방학이 됐을 것이고 마침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버티는 동안이 문을 닫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식당 주인은 괜찮을까? 어디 다른 곳에서 할 만한 일을 또 하고 있겠지?’ 

소용도 없는, 때늦은 염려를 바람결에 흘려보냈다.


소비자 입장에서 식당이 들고 나는 것은 슬라이드가 넘어가듯 장면이 바뀌는 것에 불과하지만 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부푼 희망이 꺼지고, 세상이 천연색에서 흑백으로 급전하는 암울한 과정이다. 지금 우리 주변의 식당들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볼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한 번의 시도에 인생을 거는 것이고 실패하면 퇴장하는 것이다. 

문을 닫는 식당에 철거업체가 들어가 부수고 정리하는 장면은 길거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철거 작업은 유난히 모질다. 간판을 뜯어낼 때 식당 주인의 가족사는 그 모양 그대로 무참하게 뜯겨 나간다. 조각난 장식물이 아무렇게나 트럭에 던져질 때 식당 주인의 계면쩍은 희망은 차가운 쓰레기로 폐기된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다. 식당 할 마음을 애초에 먹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생길 리가 없다. 그렇지만 구조가 밀어붙이는 힘을 개인이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다. 딱히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식당이라도 해 볼 수 있었다면 누가 그냥 앉아있겠다고 할 수 있을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조건을 주고 네 탓이라고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다. 

거기에 식당을 할지, 카페를 할지, 아니면 치킨집을 할지에 대한 선택은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 주변의 환경은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외통수의 길이다. 


전문가 입네 하고 이런저런 자영업 정책에 참여하고 말참견을 한 것이 무색해지고 면구스럽다. 나의 제안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고 책임이 면탈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나의 의견조차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데 얼마나 보탬이 될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나마 경험이랍시고 세월이 쌓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예전에 명쾌해 보였던 굵은 줄기보다 요즘에는 그 사이에 엉켜 있는 복잡한 잔가지가 먼저 보인다. 몇 가지 이론보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얼마나 많은 식당이 간판을 들어내고 종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야 할까. 그들은 그 길의 끝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더 힘들어졌을까. 


두서없는 상념에 빠져 있다가 새로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갔다. 늦은 끼니로 때 잃은 후회를 삭였다. 후회가 입맛을 돋울 리 없는데 음식 맛이 괜찮았다. 

‘나에게만 말고..’

‘학생들에게도 입맛이 맞아야 할 텐데...’ 

일말의 도움도 되지 못하는 마음이 지레 염려로 씹힌다. 

이 식당만큼은 새로 단장한 조명처럼 주인의 마음도 내내 밝고 편안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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