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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Nov 06. 2024

열여덟이 짊어진 삶이란

 성현은 전봇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갛게 상기된 두 뺨만 보아도 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영보다 키는 훌쩍 컸지만, 아직도 여드름이 나는 이마를 보자 ‘아직 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영은 슬쩍 성현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을 훔쳐보았다. 누군가와의 카카오톡 대화 창이었다. 성현은 술기운 탓인지 오타가 작렬하는 메시지로 상대와 다투는 중이었다.      


성현 : 사장님그래도우러급은빨리낳아줏야조저도지금돈이급하가궁ㅅㅈ요

사장새끼 : 이 새끼가 술 처먹더니 아침부터 돈 타령하네 준다니까? 언제 네 돈 안 준댔어?

성현 : 지금돈2주쨔안주고있쨔나요그리고술은어젯뱜사장님이마감손님들매상올려야댄댜규같이마시라시킨거쟈나요

사장새끼 : 뭐라는지 모르겠으니까 나중에 말해

성현 : 우러급주라규요저할머니병웡비내야한다구ㅛ요

사장새끼 : 돈 준다고! 줄 거니까 나중에 연락해     


 다영은 성현의 대화 창을 보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고작 열여덟 먹은 애가 이렇게 살고 있었다니…….  우성현. 다영은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 30분!”

 울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시간은 데드라인 30분을 딱 5분 남긴 채였다. 다영은 마구 뛰어서 학생부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문을 열자, 시간은 정확히 휘파람을 불고 30분이 흐른 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멈추었던 세계는 다시 역동하기 시작했다.      


 “야! 우성현!”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지 코를 골던 성현도 움찔하며 눈을 떴다. 다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씩씩대며 성현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고함을 빽 질렀다.

 “이놈의 시키가! 빨리빨리 안 다니냐! 학교에 술이나 처먹고 오고! 학생이란 놈이!”

 다영의 불호령에 성현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고개를 푹 숙였다. 다영은 여전히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네 월급 떼먹으려고 하는 사장 있는, 그 가게 어디야?”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성현에게 물었다. 순간, 성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영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말씀드린 적 없는데―”

 조금 화가 난 것도 같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켜버려서 상처받은 것도 같았다.

 “그럼, 미성년자가 그런 데서 일하는 걸 끝까지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아르바이트는 부모님과 학교장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전 돈이 필요했고, 시급 센 알바를 구했을 뿐이에요.”

 고개를 들어 다영을 올려다보는 성현의 눈에는 잔뜩 독기가 어려 있었다.

 “…그래. 네 사정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 안 해도 돼. 나도 알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건, 시급이 아무리 세도 못 받으면 0원이라는 거야. 질 나쁜 사람들은 네가 미성년자라는 점을 이용해서 돈을 안 주고 버틸 수도 있어.”

 순간, 성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저 진짜 돈 필요해요. 못 받은 돈이 350만 원이 넘어요. 정말 나쁜 데 쓰려고 알바한 거 아니에요.”

 “나쁜 데 쓰려고 알바하는 사람은 너처럼 성실하게 일 못하지. 그 말 믿어.”

 다영은 성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현도 다영과 눈을 맞추었다. 어느새 아까의 그 독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선생님, 도와주실 거죠?”

 성현이 말했다.

 “오늘 학교 끝나고 같이 가자. 나쁜 놈, 내가 그 새끼 족치려고 어제저녁으로 소고기 먹고 왔다.”

 다영이 말을 마치자 비로소 성현이 빙그레 웃었다.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성현은 깜짝 놀라서 다영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학생부실 문을 열고는 휘리릭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뒤에 대고 다영은 또 한 번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야 이 녀석아, 양치 한번 하고 가라!”     


 다영이 씨익 웃으며 뒤돌아서는 순간, 누군가 조심스레 다영을 불렀다.

 “저… 주다영 선생님?!”

 다영을 옆을 돌아보았다. 2학년 2반 담임교사 임철만 선생님(이라고 쓰고 ‘너드남’이라고 읽는다)이었다. 오늘도 그는 억센 반곱슬머리가 열대우림처럼 무성하였고 두꺼운 뿔테 안경 때문인지 가느다란 실눈을 뽐내고 있었다.

 “네, 무슨 일이실까요?”

 “아, 선생님께 전해드릴 게 있어서….”

 철만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하얀 규격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다영에게 건넸다.

 ‘경조사 봉투인가?’

라고 다영은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받았다.

 “네, 선생님. 확인하고 전달하겠습니다.”

 “다영 선생님, 그 봉투는 꼭 따로 봐주세요.”

 철만은 실눈을 빛내며 의뭉스러운 당부의 말을 남기고 쌩 2층으로 사라졌다.     


 아침부터 이건 무슨 업무람― 다영은 봉투를 챙겨서 학년부실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규격 봉투 속에 세 번 접힌 채 들어있는 A4 용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검정 모나미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듯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주다영 선생님께


 당신만의 패기 넘치는 카리스마, 대장부에 필적하는 용맹함에 저는 진실로 반해버렸습니다. 제가 평생을 찾던 이상형이 바로 당신입니다.

 저와 교제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임철만 올림]     


 “헉, 이거 뭐야?!”

 다영은 기겁하며 종이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


 학교, 정말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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