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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Aug 10. 2024

토끼굴

연극 나라의 앨리스

공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 광경을 목격한 이들의 심장은 공포로 얼어붙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고정되었다. 소녀는 달 모양의 공이 떨어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며 앞에 펼쳐진 모험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소녀에게 닥칠 끔찍한 운명을 직감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달 모양의 공이 바닥에 충돌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겁에 질려 서로를 바라보았고, 소녀의 아버지는 혼비백산하여 사건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고, 그는 딸의 이름을 외치며 무너진 달의 잔해 사이를 뒤졌다.


사람들이 잔해를 치우며 조심스럽게 탐색했지만 놀랍게도 소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눈물로 얼굴이 젖은 채 절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속삭임이 퍼져 나갔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 앨리스는 토끼굴을 통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토끼굴은 더웠다.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어,'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램프가 온도를 높인 모양이지.' 노란 불빛이 토끼굴 내부를 가득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램프가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말했다. "램프는 분위기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공간의 온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야."


앨리스는 먼저 얼굴 주위를 감싸고 있던 토끼 머리띠를 조심스럽게 풀어내어 내려놓았다. 부드러운 띠가 그녀의 손끝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앨리스는 그 머리띠를 조심스럽게 가까운 공간에 놓았다.


이어서 앨리스는 입고 있던 퍼수트를 벗기 시작했다. 퍼수트의 지퍼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하자, 단정하게 잠겨있던 퍼수트의 앞부분이 서서히 벌어졌다. 지퍼가 완전히 내려가자, 퍼수트의 윗부분이 양쪽으로 펼쳐지며 그녀의 드레스를 드러냈다. 그녀는 팔을 번갈아 움직이며 퍼수트의 소매에서 팔을 뺐다. 먼저 오른팔, 그 다음 왼팔. 팔을 다 뺀 후, 그녀는 허리 부분에서 퍼수트를 살짝 잡아당기며 아래로 내렸다.


앨리스는 퍼수트를 손으로 잡고 허리와 엉덩이를 지나, 다리까지 천천히 미끄러뜨려 내렸다. 그녀는 한 발을 들며 퍼수트를 한 쪽 다리에서 빼냈고, 이어서 나머지 발도 빼냈다. 그렇게 해서 퍼수트는 공간에 놓였다. 그녀는 그 퍼수트를 주워들고 조심스럽게 잘 개기 시작했다.


퍼수트를 반듯하게 접어 손에 든 앨리스는 그것을 비어 있는 책장의 한 칸에 집어넣었다. 퍼수트를 다 넣은 후, 그 위에 토끼 머리띠도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녀는 한 번 더 정돈된 상태를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훨씬 낫네," 그녀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토끼굴의 내벽은 서재에 있던 창문과 가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중 서재에 있던 책과 그림 등이 보였다. 그 중 몇 가지는 책장과 선반에 진열된 상태 그대로였다. 그녀는 그 중 책 한 권을 집어 펼쳐 보았다. 그것은 그녀의 사진첩이었다. 그 안에는 앨리스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아기였을 때의 사진과 그녀의 언니와 함께 강둑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해 어린 시절의 모습, 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한 순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흐뭇하게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떨어지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 이는 마치 무한한 우주 속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곧이어 그녀와 닮은 소녀가 그녀의 곁에 가까이 왔다.



작가의 말


이번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모험을 넘어서,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그랜드볼룸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사건과 이어지는 토끼굴로의 여정은, 독자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신비롭고도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하려는 의도로 쓰였습니다.


앨리스가 맞닥뜨리는 비현실적 상황들은 그녀의 호기심과 용기를 통해 풀어지며, 독자들이 함께 그 여정을 따라가며 여러분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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