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ITATION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떠 있는 십자가를 본 적이 있는가?
그 날 새벽이 그랬다.
자욱한 안개가 낀 동네,
아직은 검은 하늘 위로 흰 네온사인 십자가만 내 앞에 보였다. 그것은 둥둥 뜬 모양이었다.
“십자가가 공중부양을 하는 것 같네.”
그 다음에 마주한 것은 기괴한 거인의 두 눈과 같이 빛나는 한 쌍의 창문 불빛이었다.
길 건너편에 있는 대형빌딩에서는
새벽에 우연히도
단 두개의 불빛만 켜져있었는데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은 검은 안개에 가려져
나에게는 얼굴이 일그러진 한 거인이 길 건너에서 나를 빛나는 두 눈으로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도로 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음산하게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고,
뿌연 안개 탓에 신호등의 불빛은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커보였다.
‘드르륵 드르륵-’
차가운 도로에 금속판이 맞닿는 소리,
헤드라이트가 조금 더 가까워지며, 금속 마찰음이 들렸다.
자동차인줄 알았던 그것은, 탱크였다.
낯선 물체에 놀란 나는 재빨리 건물 사이로 몸을 숨겼다.
탱크는 나를 지나쳐 도로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갔다.
나는 고개를 내밀고 멀어지는 탱크를 쳐다봤다.
“서울 한복판에 탱크가 있다니?”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6시가 훌쩍 넘어있는 시간,
그러나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탁- 탁- 탁- 탁-‘
탱크가 지나쳐온 방향에서 규칙적이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군인들이었다.
안개 너머로 비치는 그들의 수는 8차선 도로를 가득 매울 듯이 많았다.
나는 여전히 몸을 어둠 속에 의탁한 채,
그 운율감있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오와 열로 줄을 서 오고 있었다.
문득, 군인들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좀 더 율동감이 있었다.
‘내가 이 걸음걸이를 어디서 봤더라,’
나는 TV에서 본 장면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곧 식겁해졌다.
그들의 발걸음은 북한의 열병식 장면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꿈인가.”
그러나 나는, 근래 그 어느때보다 명료하게 깨어 있었다.
최근 직장 스트레스로 수면 장애가 심해져서 산소치료를 받고 있었다.
간호사는 말했다.
“하루밤 푹 주무시고, 나가실 때는 이쪽 문으로 가시면 돼요.”
어제는 공휴일인 한글날이었다.
집에서 다음 역에 있는 병원,
나는 밀폐된 공간에 산소 공급 시스템이 갖추어진 작은 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 곳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덜컥 다가온 가을이 반가워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한 날,
나는 이제 거리에 그 흔한 버스마저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밀폐된 환경에서 잠들어있던 동안, 어떤 수상한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휴대폰으로 브라우저를 켜고,
자주 들어가는 포탈에 들어갔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없었다.
아침의 뉴스란에는 평소와 같이 어제의 소식들이 올라와있었다.
그 다음에는 SNS에 들어갔다.
방금 올라온 외국 유명 사업가의 글,
그리고 지역의 광고들.
나는 별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우유와 잼을 꺼내고,
방 한 켠의 식탁 위에 놓인 빵봉지에서 빵 세 장을 꺼내 아침 식사를 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앉은 자리에서는 늘 지역 복지센터의 태극기가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에 인공기가 걸려있었다.
나는 스크린을 설치하고, 홈 프로젝터를 틀었다.
와이파이도 아주 잘 잡혔다.
방송에서는 한 북한의 아나운서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쌍십절인 오늘 남조선 땅의 괴뢰들을
공화국의 생화학 무기를 이용해 말끔히 쓸어버리셨다.
우리의 생화학무기는
바람이 남쪽으로 부는 6시간 동안 서울을 비롯한 적의 주요 거점들을 강타하였으며,
자연환경은 그대로 두고 인간만을 죽게 만들었다.
6시간이 지나, 우리의 생화학무기는 분해되었고,
공화국의 전사들이 남쪽 영토 수복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남쪽의 모든 경제적 시설은 모두 우리 조선의 것이 되었다.
장군님 만세.”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작가의 말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잠든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이미 변화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