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D EGG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셔틀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던 중,
사무실에서 옆 자리에 앉는 동료가
람보르기니에서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사람들도 수근거렸다.
”모네님 아니야?“
”맞아,“
나는 그를 아침 식사를 하면서 다시 만났다.
”로또라도 된거야?“
내가 물었다.
”비결이 있지, 가르쳐줄까?“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산 힐튼 호텔있지? 그 앞에 오래된 공중전화 부스가 있거든.
그 안에 지니가 살고 있어.“
그가 소곤소곤 말했다.
“지니가 산다고?”
내가 헛웃음을 지었다.
“지니든, 신이든, 사실 생긴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하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사실이 있지.
바로 그가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다는 거야.“
그가 말했다.
“힐튼 호텔 앞에 전화부스라면 알고 있어,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본 적이 있거든.
그 앞에서 잠깐 숨을 돌렸지.
그런데 그 부스는 투명한데다 크기가 그다지 크지도 않아.
체크무늬 남방 차림의 신이 거기 살고 있을리가 없다고.”
내가 말했다.
“성급하기는,”
그가 말했다.
“지니를 불러내는 의식이 필요해.
거기서 먼저 카드를 선불로 긁고,
마법의 주문을 숫자창에 입력하는거야.“
나는 얼른 수첩을 꺼내 그의 말을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자, 잘 들어,”
그는 한 글자씩 음절을 끊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별, 샾, 별, 샾, 4, 6, 3, 6, 샾, 별, 샾, 별,”
나는 그의 말을 입으로 되뇌이며 수첩에서 펜을 움직였다.
“그 다음 주민번호 앞자리, 주민번호 뒷자리를 입력해.”
그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내가 물었다.
“그럼 지니가 나타나,”
그가 손을 펼쳐보였다.
나는 그의 꿈꾸는 듯한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리곤 제안을 하지, 거기엔 기회비용도 있어.”
그가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그게 정말 있는 얘기야?”
내가 물었다.
“우리 동네에 내려져오는 일종의 도시전설이지, 아는 사람은 알지만, 그걸 직접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거야,“
그가 덧붙였다.
나는 곧바로 남산 힐튼 호텔로 갔다.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검은 진주같은 그 호텔 앞에는 여전히 전화부스가 있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유물이 아직도 있다니.’
나는 비좁은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가 카드를 꽂고,
숫자창을 누르기 시작했다.
‘*#*#4636#*#*9710203051737’
마지막 7을 누르는 즉시,
뒤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창문에는 여전히 남산의 거리 풍경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부스 문 바깥에는 어떤 검갈색의 방 안이 보였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전화부스 문간을 통과해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고풍스럽게 꾸며져있었다.
책상 너머에는 체크무늬 남방 차림의 한 남자가 흰색 변기 모양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 앞의 사발에 담긴 내용물이 보였다.
그건 우유에 만 씨리얼이었다.
‘씨리얼을 안먹어본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는걸 느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을까.
씨리얼을 먹은 기억이 없다,
아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팔기는 하던가?
내가 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먹을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무렵, 그가 고개를 들어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오셨죠?”
그는 은색의 동그란 안경에,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뒤돌아 내가 들어온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아, 남산 힐튼 호텔 앞에 있는 전화 부스와 연결되어 있는 저 문으로..”
그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네, 그러시겠죠.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는 그의 아무렇지 않은 태도에 살짝 놀랐다.
”아, 저는 말이죠.. 평생 돈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가지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말없이, 책상 옆에 놓여있던 조개껍데기 모양의 캐스터네츠-혹은 캐스터네츠 모양의 조개껍데기-를 들어 평평한 저울 한쪽에 올려놓았다.
저울이 기울었다.
“흠..”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몸을 굽혀 서랍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무언가를 찾는동안,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씨리얼 박스를 훑었다.
알록달록한 씨리얼이 참 먹음직스러워보였기 때문에, 그 브랜드 이름을 알아놓자는 생각이었다.
이 방을 나가면 곧바로 그걸 마트에서 사서 먹을 생각이었다.
박스에 적힌 이름은 그저 ‘SEEREAL'이었다.
’잠깐만, 씨리얼 스펠링이 저게 맞았던가?‘
머리 속으로
SEEREAL,
CEREAL,
SERIAL
이 세 글자를 떠올릴 때쯤,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한쪽 손에는 달걀이 들려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달걀을 책상 모서리에 내리쳐 금을 내고, 엄지손가락을 그 안에 집어넣고 벌렸다.
떨어지는 액체 상태의 노른자와 흰자를 그대로 비어있는 한쪽 저울에 올렸다.
그 위에서 액체가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저울이 묵직해져 수평을 맞추어가기 시작했다.
저울이 수평에 다다랐을 때, 계란이 끓기를 멈추었다.
이제 저울 위에는 노릇노릇한 계란후라이가 올려져있었다.
“그 소원의 대가로는, 계란후라이가 적당하군요.
평생 계란후라이를 먹지 않는 조건으로,
평생동안 돈 생각없이 돈을 쓸 수 있도록 해드리죠.
받아들이시겠어요?”
그가 말했다.
“네,”
내가 말했다.
그는 책상의 버튼 하나를 눌렀다.
쏴아아아 하고 변기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와 말없이 마주보고 있었다.
소리가 잦아들자, 그가 말했다.
“자, 되었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가 두 손가락을 모아 눈 앞에서 경례 자세를 해보였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의 자세를 흉내내어 인사를 해보이곤 들어온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잠깐만요,”
내가 열린 문을 두고 그를 돌아봤다.
그가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니라고 하던데요,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내가 물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니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요?
그럼 주니라고 부르시죠,
제가 당신에게 뭔가를 주었으니까요.”
문을 열고 나오자, 나는 전화부스 바깥에 있었다.
싱그러운 초록빛 남산과, 시야 옆에는 힐튼 호텔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회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는 카드를 내밀었고, 직원은 그걸 받아서
자신의 엉덩이골에 한차례 긁고 내게 카드를 도로 내밀었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와서, 롤스로이스 라운지에 전화를 했다.
“오후에 보러 갈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는, 앱에 들어가 오랜시간 장바구니에 있던 바에리르 가구를 구입했다.
성공적으로 구입 알림이 뜨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계란후라이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거야?’
궁금한건 정말 참을 수 없던 나는,
집에 가자마자 팬에 기름을 두르고,
검갈색 방의 그가 했던 대로 한 손만으로 달걀을 깨보았다.
’쉽지는 않네.‘
팬에는 계란껍질이 같이 들어갔다.
이제 액체 상태의 노른자와 흰자가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막간을 이용해 휴대폰을 열어, 오늘 온 알림들을 확인했다.
나는 오늘 주문한 롤스로이스 차량과, 배송이 올 바에리르 가구를 생각했다.
’내일 전화 부스에 다시 가면 평생 배송 시간을 없애달라고 해야겠어.‘
다시 팬 위로 시선을 돌렸을 때, 팬 위에는 양송이프리타타가 올려져 있었다.
작가의 말
우리가 때로는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소원을 이루는 대가에는 늘 선택이 따릅니다.
때론 소소한 것들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