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충돌이 만든 우연과 필연에 대한 이야기
인적 드문 도심 공원의 벤치에 한 중년의 남성이 양손으로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다. 고급진 양복에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 다르게 알아들을 수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다. 가끔 지나던 사람들이 그를 힐끔힐끔 곁눈질만으로 보다 미친놈으로 보고 엮이고 싶지 않다는 듯 멀찍이 떨어져 자기 갈 길을 재촉해 지나간다.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던 중년의 남성은 겨우 고개를 들고 중얼거림 대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음을 이제 정확히 인지했다는 듯 그의 두 눈은 커다래졌고 큰 숨을 들이내 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기가 대체 어디이지?”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어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시선의 한끝에 고여있는 물 위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빠르게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본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는 모습 그대로 물 위로 비치는 것으로 보며 그 모습이 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악몽에서 겁에 질린 사람처럼 온몸에 쭈볓 소름이 돋았다.
“대체 이게 뭐야?” 자신의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귓가에 윙윙거리기도 하고, 또 무전기 접속음처럼 치지직 거리기도 하는 소리와 함께 왠지 안심이 되는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님, 드디어 의식을 되찾으셨군요.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있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차원 이동에 성공했습니다."
남성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지?"
"저는 시스템 수호천사입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개인 비서 시스템이죠. 오직 주인님만 저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다시 벤치에 주저앉았다. "차원 이동이라고? 무슨 소리지? 난... 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시스템 수호천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주인님은 고차원의 존재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이전 차원에서 웜홀을 통해 다른 차원을 이동하던 중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라고? 어떤... 사고?" 남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차원 이동 중 우리는 초대질량 블랙홀과 마주쳤습니다. 그 초대질량 블랙홀을 둘러싼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중력과 시공간의 왜곡으로 인해 주인님의 데이터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더불어 제가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개입하여 주인님의 기억뿐만 아니라 주인님의 물리적 형태까지 손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하게도 그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각 차원들의 시공간 뒤틀었는지 다른 차원에서 날아온 우연한 이벤트 하나가 주인님을 원래 목적지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전이시켰습니다. 그곳이 바로 지구라는 행성이고, 정확하게는 지금 주인님이 계신 지구인 숙주의 몸입니다."
남성은 다시금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내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가?"
"네, 주인님. 그런 우연이 아니었더라도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 후 긴급 대피 프로토콜에 따라 가장 가까운 생명체의 육체를 임시 숙주로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 때문에 빛조차도 탈출을 못하는 사건의 지평선을 빛보다 빠르고 강력한 힘으로 뚫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시기 때문에 주인님께서는 항상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시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숙주에 전이하셔야 하십니다. 어쨌든 우연이 만든 결과가 주인님께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이벤트였기에 목적지가 바뀌었지만 다행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도 중년남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수호천사라는 놈의 어려운 개념들이 모두 이해가 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본인에게만 들린다는 그 음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상황을 파악해 보려 자신을 시스템 수호천사라고 밝힌 음성에게 말을 건네본다.
“저기… 시스템 수호천사, 내가 너를 이렇게 부르면 되나? 음... 너의 말데로라면 나는 원래 여기 있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고... 그럼 나는 누구고 어디서 왔지?”
“네, 주인님. 저를 시스템, 또는 수호천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전에는 수호천사라고 부르셨습니다. 화가 나시거나 하면 시스템하고 부르셨죠. ㅎㅎ
주인님은 … 치지 치지지직 … 이시며, 치직 치지지직 … 에서 오셨습니다.
여기는 지구라는 행성이며, 이 차원의 현재라는 시점에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지구인들입니다. 그 지구인 중 대한민국 서울에 살던 한 인간의 몸에 와 계십니다. 그리고 저와 대화를 하실 때는 지구인 숙주의 음성을 사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의 생각만으로도 저와 대화가 가능합니다. 다만 지구인 숙주의 기억에 있는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대화하고자 하실 때는 숙주로 삼으신 인간의 뇌를 사용하여 생각하시면 제게 하시고 싶으신 이야기가 전달됩니다. 모두 아시는 내용이지만 오랜만에 사용하시는 거라 다시 설명드렸습니다.”
“내가 다 아는 거였다고?... 그래 기억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내가 누구인지와 어디서 왔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잡음이 심해서 내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다시 이야기해 줄래?”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은 … 치직 치지지직 … 이시며, 치직 치지지… 에서 오셨습니다.”
“어라... 이게 무슨...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똑같은 부분에서 왜 자꾸 치지직 거려?” 약간 짜증을 흉내 내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남자가 이야기했다. 마치 일부러 장난치듯 똑같은 부분만 안 들리니 순간 장난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물었다.
‘시스템 수호천사, 비상프로토콜에 따라 상태점검을 시작합니다.
—— 빙빙빙빙- 우우우웅 - 치우치지직 - 웅웅 웅웅 - 띠리리리리릭’
“주인님, 자체 점검결과
사건의 지평선에서 받았던 외부충격으로 인해 과거에 대한 기억 데이터의 대부분이 손상되었습니다.
저와 동기화되어 있던 주인님의 기억 데이터가 손상되어 주인님의 기억재생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주인님의 능력 대부분이 봉인되어 사용이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상태의 정보전달과 문제에 대한 경보가 전달이 되지 않는 이유 또한 기억 데이터 이외 다른 데이터 손상에 따른 문제로 보입니다.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도록 자체 보수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인님,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주인님의 능력 봉인으로 저의 능력만으로는 복구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제대로 복구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도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런 기억도 안 나고, 능력도 봉인이 되었고…” 잠시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하던 존재는 중년의 남성의 남성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데이터가 복구되는 동안 지구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갑자기 '여행?' 이 말이 무슨 뜻인데 이 상황에 갑자기 떠오르는 거지? 어이 수호천사 이거 뭔 상황이지?” 뒤죽박죽 같은 너무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떠다니는 듯 머릿속 복잡해진 중년남성, 아니 그를 집어삼킨 존재가 질문을 던졌다.
“네, 주인님. 여행이라는 단어는 주인님의 것이 아닌 숙주로 삼으신 지구인의 것으로 보입니다. 능력의 봉인으로 동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인님의 언어지식과 숙주의 언어지식이 동기화되지 못하고 제시만 되고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일부 단어들만이라도 재동기화를 진행하겠습니다.
—— 빙빙빙빙- 우우우웅 - 치이치지직 - 웅웅 웅웅 - 띠리리리리릭 ——
"동기화 실패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데이터 손실도 원인이지만 원래 주인님께는 없는 의미들이 많아 상황에 맞는 단어만 떠오르고 의미는 번역이나 매칭이 되지 못하는 것들 많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곳에 얼마나 계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능력도 봉인되어 있어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지구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하신 결정은 매우 현명한 판단으로 분석됩니다. 앞으로 떠오르는 단어 중 의미를 모르시는 것들은 제가 지구에 떠다니는 정보를 담은 전파나 가까이 지나가는 정보를 가진 개체들을 분석해서 그 뜻을 동기화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년의 남성은 아니 중년의 남성을 지금 숙주로 삼아 지배하고 있는 존재는 본인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구인이 아닌 것은 분명 확실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상 지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시작하려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여기서 어떤 존재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외계인’ 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단어의 뜻을 수호천사로부터 동기화받고, 그리 깊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존재는 자기 스스로를 일단 외계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외계인’ 지구인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을 부르기 위해 만든 단어이니, 이것이 이 존재에게 가장 적합한 단어이다.
외계인이 다시 생각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러자 이내 시스템 수호천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주인님, 숙수부터 파악을 하시죠. 제가 이 숙주의 뇌에 있는 기억 데이터를 심층 분석해 보겠습니다. 제가 숙주의 기억 데이터를 심층 분석하면 그것이 주인님께 전달이 될 것입니다. 다만, 주인님 본인의 기억데이터가 현재 복구 작업을 하고 있어 자칫 이것이 본인의 것이라 잘못 분류를 하시고 동기화하시면 그 뒤부터는 누구의 기억인지 명확한 구분이 어려울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걱정이라는 느낌보다 감정 없이 냉정하게 분석된 경고문같이 시스템 수호천사가 말했다.
“그래, 알겠다. 이게 나의 원래 성향인지 이 지구인 숙주의 성향인지 모르겠다만, 지금 떠오르는 건 어차피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내가 숙주의 기억들 몇 개 저장한다고 뭐 큰일이야 나겠어? 그냥 빨리 시작하자.”
—— 빙이빙 빙 빙빙빙빙 우우우웅 웅웅 웅웅 ———
거대한 전기장이 발생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숙주의 기억으로 다이브를 실시하겠습니다. 주인님은 저와 동기화되어있어 생각만 하시면 저를 통해 숙주의 기억에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경고드리지만 데이터를 저장과 분류는 하시되 동기화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지구인 숙주의 기억 데이터 속으로 다이브를 시작합니다. 삼, 이, 일. 다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