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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전략(友愛戰略) 3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29

by Rani Ko
함께 웃은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제를 이어주는 가장 따뜻한 끈이 된다.




윤이와 준이는 평소엔 각자 일정에 쫓기며 따로 노는 시간이 많다. 그러나 여행만큼은 다르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신기하게도 형제애가 다시 살아난다. 놀아주는 사람이 서로밖에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오랜만에 떠난 친정나들이 길에서도 그랬다. 이번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자연스레 여행 코스를 곁들인 ‘엄마표 역사기행’이었다. 한국사 덕후 첫째를 위한 특별 코스였다.
당일 일정으로 찾은 곳은 불국사와 석굴암. 실제로 다보탑과 석가탑을 마주한 윤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진으로만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으며, 돌 하나하나의 조각이 정교해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사람이 깎았을까?”

석굴암 앞에서 연신 “우와, 우와!”를 외치는 윤이의 모습에 엄마 미소가 번졌다. 아직 역사를 깊이 배우지 않은 준이는 형의 감탄을 그대로 따라 하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돌부처상 앞에서 장난스럽게 합장하고, 탑 주위를 돌며 형의 설명을 흉내 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둘이 똑같이 **‘목탁 두꺼비’**를 골랐다. 차 안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드르륵 드르륵’, ‘탁탁탁탁’ 소리를 내며 소근육 운동을 실컷 했다.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나 시합이라도 하듯이. 시끄럽지만, 그 시끌벅적함이 참 사랑스러웠다. 형제가 함께 있을 때의 에너지는 언제나 유쾌하고 따뜻하다.



가족 여행을 가면 아빠는 운전하느라 바쁘고, 엄마는 짐 챙기고 다음 스케줄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사이 형제는 어느새 숙소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침대 위를 뛰어다니고, 서로 장난을 치며 웃음소리를 쏟아낸다. 결국 ‘아들 둘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이런 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여행을 자주는 못 가지만, 시간과 경비를 쪼개서라도 윤이와 준이를 데리고 꼭 가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대에 태어나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부모의 피를 나눈 사실 이상으로 깊고 진한 의미가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세대의 간극이 존재한다. 최소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로 인해 공감의 온도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형제는 다르다. 함께 자라며 같은 순간을 겪고, 그 경험 속에서 정이 들고 동지애가 싹튼다.
이런 마음의 뿌리는 훗날 각자의 삶을 살며 멀리 떨어져 지내더라도 여전히 그들을 이어주는 힘이 된다. 부모님께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손을 잡아주는 사람, 힘든 순간에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람, 그리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 — 바로 형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 아이들이 함께한 기억이 많을수록, 서로를 더 오래 사랑할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웃던 그 겨울날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웃었으면 좋겠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아이들과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문득 나의 어린 시절 겨울이 떠올랐다. 1980년대의 겨울은 참 길었다. 스마트폰도, 게임기도 흔치 않던 시절. 오락이라곤 집안의 유일한 즐길거리인 텔레비전뿐이었다.그때 즐겨 보던 외화 ‘V’ — 인간의 얼굴을 한 파충류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드라마였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 우리 삼남매와 정확히 같은 구성이라 더 몰입했는지도 모른다. 오빠는 아빠 협탁에서 검은 가죽장갑을 꺼내와 돌아가며 끼자고 제안했고, 나는 주로 ‘다이아나’ 역할을 맡았다. 눈을 부릅뜨고 손끝을 휘저으며 파충류 인간 흉내를 내면, 막내는 비명을 지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쇼파와 거실 벽 사이 좁은 공간이 무대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른 채 놀았다.



‘V’ 시리즈 이후에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국민 드라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여명의 눈탱이’라 불리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했다. 훗날 김성종 작가의 10권짜리 원작을 다 읽기는 했지만, 그때는 오로지 드라마만으로 세상을 배웠다. 그 작품을 연출한 고 김종학 PD는 이 드라마로 ‘스타 PD’라는 별칭을 얻었고, 주연이었던 박상원·채시라·최재성 역시 이후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 우리 삼남매도 성별은 다르지만 각자 장하림, 윤여옥, 최대치를 맡아 명장면을 따라 하며 깔깔거리곤 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나는 늘 부드럽고 멋진 장하림 역을 맡았던 것 같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여명의 눈동자’**를 함께 봤다. 마지막 회에서 여옥이(채시라)가 설원 위 최대치(최재성)의 품에 안겨 눈을 감는 장면이 나오던 날, 거실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 삼남매가 각각 윤이와 준이의 엄마, 외삼촌, 이모로 불리우며 모두 어른이 되었다. 윤이, 준이는 알까? 어른인 우리에게도 너희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나는 윤이, 준이가 내가 형제들로부터 받고 준 것과 같은 행복과 충만함을 서로에게 느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OTT 시대’다. 각자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개별 화면으로 본다. 가족이 같은 시간대, 같은 프로그램을 본다는 건 이제 거의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그게 많이 아쉽다. 그래서 방학이면 일부러라도 한 편의 영화를 함께 본다. 형제에게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두 번이나 함께 봤다. 화려한 액션과 음악이 결합된 그 세계 속에서 윤이와 준이는 눈을 반짝이며 같은 장면에 동시에 감탄했다. 영화를 본 후엔 ‘케데헌 OST’를 함께 들으며 따라 부르고, 그 멜로디에 맞춰 서로의 표정을 흉내 내며 깔깔거렸다. 짧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안에서 형제는 또 하나의 추억을 나눴다.



결국, 형제애란 ‘같이 웃은 시간의 총합’이 아닐까.
그 총합이 많을수록,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날에도 그 웃음의 기억이 두 아이의 마음을 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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