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멸하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
4. 오만함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례들
① 난청
오만함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현상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태도입니다.
루이 16세는 1789년 다른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이 했던 약속도 깨고 극도로 보수주의적인 정부를 구성하여 제3신분인 시민계급과 농민의 권리를 보살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식량공급을 걱정했던 몇 안 되는 대신들 가운데 한 명인 재무대신 자크 네케르까지 해임했습니다.
백성들이 네케르의 해임 소식을 알았을 때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그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고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앞을 보고 전속력으로 내달리기만 합니다.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리기에 경험이 많은 부하들의 생각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습니다.
② 나폴레옹의 사례.
나폴레옹은 자기 확신이 강한 통치자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관생도 시절부터 나폴레옹은 수학 과목에 있어서 다른 생도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하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리, 행군 속도, 식량의 보급, 운송수단이 전투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전사자와 부상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능숙하게 계산하고 분명한 지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다 그는 독도법에도 능했습니다.
그는 지도만 보고도 실제 전투가 벌어질 장소를 눈으로 보듯 환하게 꿰고 있었습니다.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한 전투지점에서 다음 전투지점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군사작전의 천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르시시즘의 인격 장애를 앓았습니다.
이처럼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명예욕에 불타는 지도자의 참모로 일하는 것은 견디기 힘듭니다.
나폴레옹에 감탄한 베토벤은 자기가 작곡한 세 번째 교향곡을 그에게 바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자 베토벤은 분노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이 평범한 독재자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격상 나폴레옹은 권한을 부하에게 나누어주려 하지 않았고, 주로 자기 명령을 정확하게 수행한 군인에게만 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나폴레옹이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려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제국을 몰락시킨 근본적 약점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거의 무자비할 정도로 목표 달성에 집착했습니다. 프랑스가 유럽 지도에서 제1위의 자리를 잃게 되자, 사람들은 그에게 명예롭게 퇴진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는 제일 처음에 나온 1799년의 국경선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거부했고, 그다음 1792년의 국경선으로 돌아가자는 제안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군대가 그에게 등을 돌렸고, 그는 엘바섬에 유배되었습니다.
1815년 엘바 섬을 탈출하여 다시 한번 군대를 모았지만, 워털루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는 또다시 참모 장교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적장인 웰링턴을 깔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웰링턴은 나폴레옹을 높이 평가하여 치밀한 작전을 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1799년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었습니다.
그가 1815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을 때, 프랑스는 유럽 최강국이라는 지위를 잃었습니다.
17년간 치러진 전쟁이 끝난 후 사망자만 수백만 명이 나왔고, 프랑스의 국가 재정은 파산 수준이었으며, 식민지도 잃어버렸습니다. 나폴레옹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법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멸하는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③ 장제스의 사례.
장제스는 1927년 중국 공산당과 연합하여, 상하이와 난징을 점령하고 그다음에 베이징을 점령함으로써 중국의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군대는 공산당의 군대보다 두 배로 강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지원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장제스는 아주 단순하고 고전적인 이유로 중국 인민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는 일반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무관심했습니다. 해리 길버트에 따르면, 이 때문에 그의 정책은 모든 부분에서 실패했습니다. 세금 부담이나 부패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정부와 농민의 사이는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관료와 군인들이 인민을 대하는 태도 역시 오만함과 무능력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지방 호족들도 섭섭하게 만들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공산당은 농지개혁을 약속하며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 때문에 장제스는 공산주의자와 마오쩌둥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타이완 섬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제스와 나폴레옹은 공통적인 점이 있습니다. 즉,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멸하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황실을 무너뜨리고 중요한 군사 지도자가 된 장제스의 사례와 나폴레옹은 비슷한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조직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과 ‘팀워크’입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최근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윤석열의 경우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타인에 비해 특별히 우월한 능력도 부족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릇된 판단에 집착하면서, 자기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방을 적이나 피의자로 간주하여 경멸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편견에 집착하다가 여기에 발이 걸려 스스로 넘어진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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