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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설아 Aug 08. 2024

8층 조리원에서 불안한 밤

아이를 낳고 나서, 세상은 완전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작은 위험도 이제는 거대한 재앙으로 느껴졌다. 박사과정을 마친 후 처음으로 조리원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책도, 연구도 없는 그 시간은 오랜만의 평화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날, 조리원 TV에서는 화재 현장이 방송되고 있었다. 불타는 건물에서 사람들이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연기를 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8층에 있었고, 내 아이는 신생아실이 있는 9층에 있었다. 아이를 낳은 지 하루 이틀 밖에 되지 않아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불이 난다면 나는 9층으로 올라가야 할까?


일반적으로 화재 시 연기가 퍼지는 속도는 초당 약 1.5~2.0미터인 반면, 보통 사람이 걷는 속도는 초당 약 1.2~1.5미터다. 그러나 연기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사람이 걷는 속도는 초당 0.2~0.5미터로 줄어든다.


나는 그 당시에 아이를 낳고 하루이틀 밖에 지나지 않아 혼자서 걷기가 어려운 상황이였으니, 평균적인 사람의 걷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겠지.


그렇다면 9층에서 1층까지는 약 18미터, 즉 9층을 내려오려면 최소 12~15초가 걸린다. 하지만 연기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36~90초가 걸릴 것이다. 연기는 훨씬 더 빠르게 퍼지니 내가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이를 생각하니 더욱 불안해졌다.


게다가 신생아실에서 내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신생아실을 가보면 알겠지만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은 모든 아기들은 비슷하게 생겼다. 즉 내가 한눈에 내 아이를 찾아낼 자신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만약 아이를 찾았다 하더라도, 불이 났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단으로 1층까지 연기보다 빠르게 내려올 수 있을까? 그 당시 화장실도 어기적어기적 가고 있던 내 몸 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또한 TV 뉴스처럼 대피 에어매트으로 뛰어내릴 수 있을까? 작은 아이를 안고 8층, 혹은 9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안전하게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대피가 어려운 내가 조리원 8층이나 9층에 있어야 하는 걸까?


결국, 멍하니 누워 있다가 컴퓨터를 켜고 관련 자료, 연구, 정책들을 찾아보았다. 조사를 해보니, 대피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건축 규제는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왜 우리는 일상의 안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 걸까?


이런 생각들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안전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주의해야 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느낀 이 불안과 걱정이 다른 부모들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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