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설아 Aug 16. 2024

겨울밤의 악몽

가습기의 덫

복숭아뼈 근처 500원 사이즈의 수술 후 남은 흉터는 한순간의 방심이 남긴 끔찍한 흔적이다. 그날 새벽, 나는 가습기처럼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용품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겨울철, 건조한 공기는 아기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늘 가습기를 틀어놓고 잠들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기 옆에서 편안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 3시, 아이가 코가 막히는지 '컥컥'거리는 소리에 가습기의 물이 다 떨어짐을 깨닫고   비몽사몽 상태로 주방으로 향했다.


가득 찬 물통을 들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잠결에 가습기 뚜껑을 열고 물을 붓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물통을 엎질렀다. 뜨거운 물이 내 발목 쪽에 쏟아지며 순식간에 끓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순간 아찔했지만, 단지 "조금 데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너무 졸려 다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약국에서 산 연고와 밴드를 붙이고 큰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출근하고 일상을 보냈지만, 그 후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화상 부위는 붉게 부풀어 오르고,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이어졌다.


2주가 지나도록 상처는 낫지 않았다. 오히려 짓무르기 시작하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병원을 찾게 되었고, 의사는 내 발목을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온 화상이네요.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저온 화상은 피부 깊숙이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단순한 치료로는 회복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결국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과정은 고통 그 자체였다.


치료하는 데만 무려 3개월이 걸렸고, 병원비는 70만 원이 넘었다. 그 모든 고통과 비용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발목에는 그날의 끔찍한 흉터가 남아 있다. 그 흉터는 한순간의 방심이 남긴 끔찍한 흔적이다. 가습기처럼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일상용품이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그날 새벽의 경험을 통해 절감했다.


사실, 저온 화상은 겨울철에 흔히 발생하는 사고 중 하나다. 전기장판이나 온열기구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저온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전기장판을 밤새 켜두고 자고 일어난 후 다리나 등 부분이 붉게 변하고 물집이 생기는 일이 드물지 않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핫팩이나 온열 패드도 조심해야 한다. 피부에 직접 닿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그날, 가습기에서 시작된 작은 방심이 이렇게 큰 재앙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이 예기치 못한 상처와 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작은 사고라도 결코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매일 밤, 가습기를 켤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작은 방심이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이전 03화 소리 없이 찾아온 공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