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명의 죽음을 부른 침묵의 살인자

by 권설아

마리 할머니의 마지막 숨결은 8월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흩어졌다. 파리 근교의 한 작은 아파트, 닫힌 창문 너머로 그녀의 생명이 서서히 스러져갔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폭염이 앗아간 수많은 생명 중 하나일 뿐이었다.


2003년 7월, 유럽은 1540년 이래 가장 잔인한 여름을 맞이했다. 프랑스의 욘 오세르 지역에서는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가 8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석조 건물들은 더 이상 보호막이 아닌 화덕으로 변해갔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식지 않았고, 도시는 서서히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갔다.


"엄마 다음에는 같이 휴가가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들의 말에 마리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남부 해안에서 휴가를 보내는 아들은 어머니의 창백해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은 바싹 말라있었고, 맥박은 점점 약해져갔다.


병원의 의사 장-피에르는 마지막 환자 차트를 덮으며 한숨을 쉬었다. 응급실은 이미 과열된 환자들로 넘쳐났지만, 그의 휴가 일정은 바뀌지 않았다. 프랑스의 8월은 신성불가침의 휴가철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도시를 덮어가는 동안, 의료진들은 하나둘 휴양지로 떠나갔다.


한편, 포르투갈에서는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8월 1일, 악마의 숨결 같은 시로코 바람이 불어닥쳤다. 30도를 넘는 밤 기온 속에서 산불이 광풍처럼 번져나갔다. 215,000헥타르의 대지가 화염에 삼켜졌고, 18명이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독일의 강들은 피처럼 말라갔다. 엘베 강과 다뉴브 강에서는 더 이상 배가 다닐 수 없었다. 라인강의 수위는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고, 발전소들은 끓어오르는 냉각수를 감당하지 못해 멈춰섰다.


영국의 M25 도로는 뜨거운 태양 아래 초콜릿처럼 녹아내렸다. 철도 레일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휘어졌다.


마리의 아파트에서는 시계마저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녀는 마지막 힘으로 창가로 기어갔지만, 바깥세상은 이미 용광로가 되어있었다. 찬물을 마시라는 뉴스 속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녀는 이미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9월이 되어서야 끔찍한 진실이 드러났다. 프랑스에서만 14,80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대부분은 마리처럼 홀로 사는 노인들이었다. 일부 시신은 한 달 넘게 방치되었다가, 휴가에서 돌아온 가족들에 의해 발견됐다. 부패한 시신들이 발견될 때마다 프랑스는 충격에 빠졌다.


유럽 전역에서 최대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탈리아에서 2만 명, 스페인에서 12,963명, 네덜란드에서 1,500명...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침묵의 살인자는 아무도 모르게 유럽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정부는 책임 공방에 휩싸였다. 보건부 장관은 휴가를 즐기다 뒤늦게 돌아왔고, 공립 병원의 비상 조치는 막혔다. 유럽의 가장 뜨거운 여름은 가장 차가운 인간의 민낯을 드러냈다.


2004년, 프랑스는 마침내 국가 폭염 계획을 수립했다. 파리는 녹색 오아시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건물들은 새로운 규정에 따라 지어졌다. 하지만 마리와 같은 수만 명의 희생자들에게는 너무 늦은 변화였다.


2003년의 여름은 유럽의 무덤이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회가 치른 대가는 너무나 컸고,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기후변화가 보낸 첫 번째 경고는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keyword
이전 16화물의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