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고리

by 권설아

1장. 브라질의 눈물


마리아 산토스는 포르투알레그리 일간지 '글로보'의 수석 기자였다. 20년 경력 동안 그녀는 수많은 재난을 취재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었다. 4월의 하늘은 마치 검은 장막처럼 도시를 덮고 있었고, 한 달 넘게 쏟아지는 폭우는 그들이 알던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마리아, 새로운 사망자 보고서야."


조용히 다가온 파울로가 그녀의 책상 위에 서류 한 장을 올려놓았다. 마리아는 천천히 숫자들을 읽어내려갔다.


사망자 169명.

이재민 581,000명.


"이게 다가 아니야." 파울로가 태블릿을 건넸다. 화면에는 살가두 필류 국제공항의 위성사진이 떠있었다. 남미의 하늘길을 책임지던 거대한 공항은 이제 거대한 호수가 되어있었다. 활주로는 완전히 사라졌고, 계류장에 남겨진 비행기들은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처럼 물 위에 덩그러니 떠 있었다.


"330킬로미터..." 마리아는 중얼거렸다.


창 밖에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또 다른 구조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마리아는 재빨리 카메라를 챙겨들었다.


"어디 가는 거야?" 파울로가 물었다.


"현장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카를로스 노브레 박사를 만나기로 했어."


폭우 속을 뚫고 달린 30분 끝에, 마리아는 브라질 기후연구소에 도착했다. 노브레 박사는 창가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사님, 이번 홍수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하셨죠?"


노브레 박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깊은 우려가 서려있었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산토스 기자."

그가 컴퓨터 화면을 가리켰다.


"우리의 기후 모델은 앞으로 더 심각한 재난이 올 것을 예측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100년, 200년에 한 번 일어날 법한 폭우가, 이제는 1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할 겁니다."


"3백만 명..." 노브레 박사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적어도 3백만 명의 브라질 국민들이 더 이상 그들의 집에서 살 수 없게 될 겁니다."


## 2장. 파키스탄의 절망


2022년 9월, 파키스탄 신드주의 한 야전병원.

아슈라프 칸 의사는 피로에 지친 눈을 비볐다. 72시간 연속 근무였지만, 쉴 수는 없었다. 텐트 안은 환자들로 가득했고, 매 시간 새로운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칸 선생님!" 간호사 파티마가 다급히 달려왔다.


"5번 텐트의 아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슈라프는 달리기 시작했다. 5번 텐트에는 7살 아미르가 있었다.

사흘 전 콜레라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미르의 작은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오늘만 열 번째에요."

파티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가..."

아슈라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6월부터 시작된 폭우는 파키스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3300만 명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선생님, 새로운 보고서입니다."


의료지원팀장이 건넨 서류를 받아든 아슈라프의 얼굴이 굳었다.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피부감염, 말라리아, 뎅기열... 660,120명.

전염병 감염자 수는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었다.


"이재민들이 홍수물을 마시고 있다고 합니다."

의료지원팀장의 말에 아슈라프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도로와 고지대에 마련된 임시 거처가 보였다. 화장실도, 깨끗한 물도 없는 그곳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4주에서 12주..." 아슈라프는 중얼거렸다.

"이대로 가다간 500만 명이 감염될 거라고 했지."


그때, 텐트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또 다른 환자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 3장. 대한민국의 선택


2024년 현재, 한국.


"김태준 과장님! 군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김태준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인명피해는?"

"아직 집계 중입니다. 전북, 충북, 경북 지역에서도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스크린에는 빨간색 경보가 끊임없이 번쩍였다.

"2020년 54일 장마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2022년 서울 집중호우, 작년 충북의 500mm 폭우...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후학자 박민서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더 이상 기후위기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기후지옥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요."

김태준은 자신의 태블릿을 열었다. 기상예보는 암울했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비였다.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과장님."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WHO에서 보고서가 왔습니다."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미국,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이탈리아, 케냐, 수단, 브룬디, 탄자니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호주...


최근 2개월간 홍수 피해를 입은 국가들의 목록이었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도 저 목록에 들어가게 되는 건가요?" 누군가가 물었다.


김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있었다.

브라질의 마리아, 파키스탄의 아슈라프, 그리고 이곳의 자신까지.

세계는 이미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물의 고리 안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그 고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박민서 교수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하지만 그리 많지 않아요. 이제 우리가 선택할 차례입니다."

창밖으로 번개가 번쩍였다.


마치 자연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처럼.


## 에필로그

그로부터 며칠 후, 유엔 총회장.

"왜 우리 국민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지구 온난화의 대가를 치러야 하나요?"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지 않은 위기와 홀로 싸우고 있습니다."


회의장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인류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자연은 이미 충분한 경고를 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결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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