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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릴리 Oct 05. 2024

내겐 너무 무서운 정신과

  정신과를 가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진짜 정신병에 걸린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무섭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집에서 나와 4평 정도 되는 오피스텔에 따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를 원망하며, 펑펑 울고 집을 뛰쳐나왔었다.

     

  당장 월세도 내고 먹고살아야 하는데, 직장이 없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다가 나온 터라 그랬다. 급했다.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뒤졌다. 그런데 막상 일자리를 구하려고 보니 하고 싶거나, 할만한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었다. 다 내려놓아야 했다. 내세울 것도 애초에 없었지만 자존심이고 뭐고,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 그래도 좀 괜찮을만한 곳들에 이력서를 넣었다.     


  첫 번째로 야간콜센터 상담원 면접을 보고 들어갔다. 실근무시간 짧고, 격일제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했었다. 교육은 짧았다. 업종특성상 그랬던 건데 짧은 교육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문제는 휴게시간이었다. 보장해 준다던 야간 수면시간 4시간은 저질 수면이었다. 수면시간도 불규칙하게 들어갔으며,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잠이 들었다가도 금방 깼다.


  아침에 7시~9시까지 출근시간 피크타임에 필요한 상담원들을 붙들어 놓기 위한 회사 측의 잔꾀였던 것 같다. 겨울이었는데 몹시 추웠고, 나중에는 4시간을 잠들지도, 나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보내서 퇴근 후 피로감이 엄청났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팀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참다 참다가 잠시 화장실 금방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앉아서 일하라고 소리를 쳤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직원들 위하는 척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기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할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 거긴 사람이 자주 바뀌었는데 내가 일했던 약 한 달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다. 거기는 요즘도 구인공고가 올라온다. 상시 구인인가 보다.    


  퇴근길에 병원 발렛주차 직원을 뽑는 광고를 보고 바로 찾아가서 면접을 봤다. 그리고 출근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일할 때 나는 정신과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은 정신건강의학과라고 하더라.


  내가 차에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것 같다. 발렛주차 공간에 그냥 주차하려고 들이대는 고객들과 하는 실랑이, 병원에 사람들 다니는 입출구 막는 빌런들, 그리고 병원 주변 여기저기 불법주차하는 빌런들과 수없이 실랑이했고 싸웠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고, 그 당시 모임에서 알게 된 전문의 선생님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정말 오래오래 고민한 결정이었다. 드디어 정신과를 내 발로 찾아갔다.


  처음에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누가 볼가 봐 두려웠다. 나를 아는 사람이 병원으로 들어가는 나를 알아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주변 눈치를 한참 보다가 사람들이 없을 때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막상 들어갔더니 이상한 분위기라던지, 이상한 사람들은 없었다. 상상 속에 있던 정신과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냥 동네 의원 같은 분위기였다. 과연 내가 정상인들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의사선생님은 좋아질 수 있다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단,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했다. 약을 처방받았다. 그렇게 준 약을 먹고 잠들었다.

  다음날 출근했는데, 기분이 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적으로 보이고, 나를 화나게 할 것 같고, 싸워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무뎌진 것처럼 이상했다.


  약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동료들이나 병원 사람들도 내가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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