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릴리 Nov 09. 2024

자꾸만 눈물이 나요

  약 3년 전 세종으로 무작정 내려갔었다. 아버지와 크게 다툰 일도 있었고, 서울살이에 지쳐있던 터에 모험을 했다. 사실 내가 한 직장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은 적도 없었고, 잃을 게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작정 지방으로 내려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움직이려고 알아보니, 고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천안쪽을 알아보다가 너무 비싸서, 더 아랫동네로 알아봐야 했다.

     

  충남이나 충북쪽을 찾아봤다. 병원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딱 여기다 할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세종을 봤는데 아파트임에도 전세가 비율이 낮았다. 실제로 내려가보니 동네도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부동산을 통해 집을 구했다. 변변한 상가도 근접한 곳에는 없는 외곽 쪽으로 얻었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대중교통만 빼면, 동네는 살기 좋았다. 서울에 살 때보다 조용하고,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시골도 아닌, 시끌벅적한 대도시도 아닌 그 중간 같은 느낌이랄까.

     

  이제 문제는 직장이었다. 일단 세종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얻으려고, 온라인 구직사이트를 검색했다.  일자리 자체가 그리 많이 않았기에 보이는 곳은 다 이력서를 넣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렸다.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 연락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식품영업에 지원했었는데 면접 일정이 잡혔다. 직장을 빨리 구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면접일정에 찾아갔다.

        

  식품영업 쪽에 경력은 전무했지만, 운 좋게 사장님이 나를 채용하겠다고 했다. 연봉이 결정되고, 회사를 빙 둘러보며 이러저러한 설명을 들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상사에게 대든다거나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부직원들과의 관계가 늘 어렵다. 뭔가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몇몇 사람들 중에 특히 나를 심히 괴롭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꾸준히 회사를 다니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있지도 않아서, 일단 식품회사에서 마음을 다잡고 일해 보기로 했다.

     

  안 힘든 일이 어딨겠는가. 그래도 외부 고객들 때문에 힘든 것은 견딜만했다. 할만했다. 단지 내부사람들 때문에 크게 힘이 들었다. 처음 5~6개월 정도는 참고 견딜만했다. 그 이상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때 내 정신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도 참고 억지로 회사를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서 회사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난 한마디 들은 걸 곱씹고 또 계속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남에게 한마디 들으면 그걸 못 견뎌하는 타입이라 더 힘들었다.

    

  이 시기에 나는 어그적 어그적 어눌한 걸음걸이로 걸었고, 구부정한 상태로 다녔다. 표정은 늘 어두워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사장님의 지나친 간섭이 가장 힘들었다. 영업사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비일관적인 태도로 간섭을 했다. 거기는 왜 가냐, 가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렇다고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영업사원이 밖으로 거래처를 돌아다녀야지 사무실에 있으면 뭐 하냐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일 외근 다녀오겠다는 보고를 하는 게 내겐 큰 고문이었다. 운 좋게 신규거래처도 개설하고, 실적이 잘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 살 많은 남자 상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 참 이상했다. 무능하고 무지한데, 야비하고 비열했다. 멍청한데 내면은 양아치 같은 사람이었다.     


  매일같이 퇴근 후에 술 먹자고 하고, 집에 돌아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술자리에서도 일얘기로 혼내고 안 좋은 소릴 해댔다. 후배들 업무성과도 본인 것으로 돌리려고 했으며, 허례허식에 목숨 걸었고, 사소한 것으로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다.

     

  한 번은 따로 조용히 부탁을 했다. 나는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 이러저러한 부분들은 좀 안 그래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중하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역효과로 너 앞으로 두고 보자는 반응을 보였다.     


  이 사람은 결재 타는 것, 보고하는 것으로 병정놀이하는 걸 즐겼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결재선인데, 본인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약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내 마음은 병들어갔다. 잠시 중단했던 정신과 약물치료도 회사에 다니면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내 마음이 깊이 병들어가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말투가 어눌해지고, 조금 이상해진다 싶을 정도로 약이 세졌다. 의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 했는데, 아니었다 약을 줄일 필요성이 있었다.     


  내 마음은 누군가에게 계속 혼날 것 같고, 내가 뭐만 하면 누군가 와서 뭐라고 할 것 같았다.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가는 게 정말 고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존감은 바닥에 있었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일과 회사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은 병들어서 타들어가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둔 것에는 후회가 없었다. 다만, 당장 경제적인 부분이 문제였다. 불안했다. 그런데 나는 당장 어디를 가도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집에서 쉬는 날이 길면 길어질수록 경제적인 불안감은 커져갔다. 그러던 중에 정신건강의학과 중에서 뇌에 체외충격파 치료를 하는 곳을 찾았다. 단기간에 물리적 치료로 효과를 조금은 기대해 볼 수 있어 보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빨리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일을 구하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치료를 받기로 했다.     


  새로운 정신건강의학과에 치료 예약 접수를 하고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너무 울컥하고, 서글퍼졌다. 너무나 비참했다.


  치료비도 적지 않지만, 내 마음이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서러웠다. 병원문 밖에서 엉엉 울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전 06화 제발 좀 고쳐주세요, 약만 주지 말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