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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릴리 Oct 20. 2024

제발 좀 고쳐주세요, 약만 주지 말고요.

  약을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감기처럼 일정기간 복용하면 낫는 그런 병이 아닌, 그저 기분을 보통의 상태로 연명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짜증이나 우울은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어도 완전히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절실했다.     


  나는 불안과 함께 강박증이 심했다. 강박증은 꽤 오랫동안 앓았고,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 마음의 병이었다. 초조하고, 누가 뭐라고 할 것 같고,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지는 않을지, 내 물건을 어디다 흘리지는 않았는지 늘 확인하고 다닌다. 이 병을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부분인지 이해하겠지만, 정상인들이 볼 때는 왜 저러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그런 증상들이다.

    

  병원에서는 약물치료를 하면 좋아질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인지행동치료 같은 치료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해주지를 않았다. 그런 치료를 받고 싶다고 얘기해도, 약물치료를 권했다.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다른 치료를 원했지만 치료해 주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정신분석적정신치료를 해주는 병원을 찾아서 약 6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비용도 많이 비쌌다. 그만큼 기대감도 컸다. 좋아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는 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 내 마음의 불안과 강박증은 좋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크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나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실수를 할까 봐 늘 전전긍긍했고, 위축되어 있었다. 항상 누군가에게 혼날까 봐 염려스러웠다. 사람들이 무섭고, 모든 일이 걱정이었다.     


  안 그런 척하느라 힘들고, 증상을 숨기려 하면 할수록 내 마음속은 더 병들어갔다.


  직업을 바꾸면서 패션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첫 번째 다녔던 패션학원에서는 다른 수강생들과 원만하게 지냈다. 잘 지냈다. 지금도 연락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만큼 괜찮았다. 재미도 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다녔던 패션학원에서의 생활이었다.

     

  수강료도 비쌌고 수강기간도 1년이나 되는 곳이었다. 여기서 잘 배우면 취업과 잘 연계될 수도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수업도 어려웠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결국 외톨이가 되었다. 주도적으로 무리를 만들어 다니는 아이들 몇이 있었다. 그 무리에 끼지 못하니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서로 하기 싫어하는 반장도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되었다. 아이들은 비협조적이었고, 신입생환영회에서 팀별 장기자랑을 혼자 해버리기도 했다.     


  수업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외톨이 흔히 말하는 왕따가 되고 나니 더 흥미를 잃었다. 모두가 다 내 흉을 보는 것 같았고, 눈치를 보며 학원을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조별과제에서는 나도 재료비를 똑같이 냈는데, 내 의견은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무시당해서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8살 많았던 여자는, 내가 나온 대학교 얘기가 나오자, 요즘 없어져야 할 대학교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본인도 저 밑에 동네 학교 나왔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학원 다니는 게 정말 싫었다. 그래도 나는 수업을 빠지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었어서, 꾸역꾸역 졸업까지 했다. 아이들도 아니고 성인들인데, 무리를 지어서 나를 조롱하고 비웃는 아이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바보같이 참고만 있었다. 그런데 학원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좋아했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를 좋아했다. 나는 도무지 그런 나쁜 사람이 인기가 많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학원에서는 내게 취업자리를 연결해 주기 어려운 실력이라고 하며, 나 몰라라 했다. 어리고 실력 있는 친구들은 좋은 회사로 다 취업하고 나 혼자 남았다. 남은 동기들도 없었다. 나는 상처만 얻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약을 복용하는 것 만으로는 현실을 이겨내거나, 지금의 나를 바꾸기 어려웠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피하려고 해도, 어디서는 받고야 말았다.     


  병원 치료에만 의지할 수가 없었다. 병원 외에, 심리치료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 책에 의하면 먼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도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생각과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쉬웠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겠지.    

 

  나는 말하고 싶다. 약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연명에 불과하다고.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그 치료를 해주는 의사는 어디에 가야 만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는 고칠 수 없다는데, 그럼 누가 고쳐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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