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난제
(작은사회 앞 편과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삼공주 무리는 단단하고 견고했다. 그 견고함을 깨고자 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윤슬‘이다. ’ 윤슬‘이에게는 자신이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친구가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이것도 참 애매한 부분이었다.
누구든지 같이 놀면 되는 건데, 친구를 가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려서 사귀고자 하는 그 친구들은 ‘윤슬’이와 놀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우진’이다. 어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 윤슬‘이는 그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서 같이 놀고 싶은데 ’ 윤슬‘이는 ‘우진’이가 자신하고만 놀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진’이는 ‘윤슬’ 이를 피해 다니게 된다.
결국, ‘윤슬’이가 울게 되고 센터 원장님이 중재에 나서게 된다.
‘우진’의 입장은
‘윤슬’과도 놀 수 있지만, 다른 친구와도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에게도 자유가 있다.
“윤슬’의 입장은
‘우진’이는 나랑만 놀아야 한다.
였다.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무마가 되었고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들은 ‘윤슬’의 성격을 대충 파악했을 것이다.
친구를 가리는 바람에 종종 혼자가 되는 ‘윤슬’이에게 나는 자주 다가갔다. 말도 걸고 같이 놀자고 했는데… 보통 아이들이면 좋아하라면서 선생님인 나를 끌고 다닌다. 하지만 ‘윤슬’이는 나와 놀기 싫다며 나를 가려버린 것이다. 나를 가려냈다…!!! 내가 놀아준다고 했는데!!! (마상…) : 마음이 상했다는 뜻이다.
아무튼 시무룩해 보이는 윤슬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삼공주랑 놀고 싶은데 끼워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삼공주는 아지트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윤슬이 손을 잡고 삼공주에게 끼워달라고 내가 말해보았다.
”얘들아 안녕 윤슬이가 너희랑 놀고 싶다는 데 어떻게 하면 같이 놀 수 있을까? “
하니
”여기 너무 좁아서 세명 밖에 못해요 “
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공간은 넓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물음표 띤 눈으로 쳐다보니, 눈치를 챈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윤슬이랑 별로 놀고 싶지 않아요.“
정말 애매하다. 그들에게도 자유가 있는 것은 자명했다. 내가 친구관계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이 있더라도 싫을 수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것이다. 친구라면 무작정 다 함께 놀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애석하게도 그렇다. 교사 생활을 하면 이러한 부분은 어떻게 중재를 하고 해결을 해야 할지가 가장 큰 난제일 것 같기도 하다.
윤슬이는 끝까지 다른 친구와는 절대로 같이 놀고 싶지 않고, 삼공주랑만 놀고 싶다고 했다. 난감해하던 찰나, 센터 선생님께서 조심스레 나에게 오셔서는 말씀하신다.
“저기 삼공주는 원래부터 누구 잘 안 끼워줘요. 윤슬이가 아니더라도요.”
중재자, 통솔자, 리더. 그건 참 어려운 것이다.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이성적인 이론에 따라 고칠 수 없다. 결국에는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치열한 무리 짓기 조차도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정답이 없는 것이 바로 인간사회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잠시 나의 경험을 꺼내 보고자 한다.
이간질 트라우마
무리에 의해 누군가를 ’ 돌린다 ‘라는 개념이 있었다. 중학교 때, 처음 겪어 본 여중생의 무리생활은 기상천외했다. 어제는 마치 둘도 없다는 듯이 서로 놀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무리에서 배제시킨다거나 그런 일들이 다반사였다. 하필 무리에 이간질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 친구는 나를 이간질시켜서 모든 친구들이 나와 멀어지게 했다. 반 친구들만 그리했다면 상관없겠지만, 같은 학년의 모든 친구들과 선배 몇몇한테까지도 이간질을 한 것이다.
나는 하루아침에 왕따가 되어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찾아와서 알 수 없는 이야기들로 나를 빙둘러싸서는 따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싫어서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도서관으로 뛰어가고는 했다.
해결이 되는 그 시점에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냥‘, ’ 질투‘라는 이유 밖에 듣지 못했다.
그 순간 너무 힘들었지만, 다행히 운이 좋게도 후속조치가 좋았다. 선생님들이 나 그리고 그 친구들 사이를 집중해서 살폈고,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그 친구도 따로 자신의 무리가 있었지만, 나의 상황을 설명해 주며 만장일치로 함께 있어주자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마음 깊이 그 친구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서 무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경각심을 얻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늘어났다. 또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인연 하나가 얼마나 나에게 큰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 나는 나를 스치는 모든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인간관계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쉬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적정한 거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후일담인데, 2학년 때 이간질한 친구와 내가 같은 반이 되지 않는 조건으로 학폭위원회를 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친구와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고 생각했지만, 교직 이수 중인 지금 이 상황이 선생님들의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다행인 것은 나를 받아준 친구 무리와도 같은 반이었고, 이간질시킨 친구는 또 다른 친구를 이간질시키는 바람에 결국 모든 아이들에게 신뢰를 잃고 혼자가 된 것이다.
이렇듯,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이지만 나를 성장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를 때리고 왕따 시키는 행동들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될 명백한 범죄이다. 그런 것들을 제외한 이런 사소한 인간관계의 트러블들은 결국 중재자들의 현명한 해결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것이 앞으로 교사가 될 내가 수 없이 고민해보아야 할…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조언받고 싶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