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아?
오늘 내가 전개할 이야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초등학생과 화투를 쳤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초등학생과의 만남에 처음으로 겪은 일이라, 이게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나는 초등학생과 동양화 그림 맞추기 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나의 버라이어티 한 교직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는 것인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아이들은 여러 유형이 있다. MBTI는 인간을 16 부류로 나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인간은 16가지의 성격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게다가 mbti의 초석을 다진 카를 융 또한 이 성격부류를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며 연구 도중에 버린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부류를 언급하며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도 복잡한 인간형들을 재미있게 단순하게 명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분류는 어렵지만 큼지막한 대분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보인다.
특성을 세세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나 또한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똑똑이’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첫날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 아룬’이다. 말하는 모습, 차림새, 노는 분야… 전부 ‘아룬’이가 똑똑이 형(type)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퍼즐, 교구게임( 다이아몬드 게임, 다빈치코드 게임, 표정 맞추기 게임…), 카드게임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화투였다.
‘아룬’이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 애는 나에게 할머니와 화투를 친다고 자랑을 했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어릴 적 할머니께 화투를 배웠고, (도박이 아닌) 카드게임으로 화투를 재미있어했다.
“선생님도 어릴 때, 할머니랑 화투 했는데! “
이 한마디가 파장을 가져온 것이다. 아룬이는 분주해 보였다. 점심을 먹고는 원장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어딘가를 바쁘게 가는 것이다. 한참 뒤,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아룬이의 손에는 화투가 들려져 있었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카드게임이라 치면 상관이 없지 않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초등학생과 화투가 과연 맞는 일인지는 고민이 되었지만, 아룬이는 이미 화투패를 깔고 있었다.
실력은 꽤 괜찮았다. 내가 잘 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룬이는 게임의 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고도리!”
“어! 쌤!! 곧 홍단이네요! 홍단 패 깨야겠다…“
“아… 광박이야…”
“쌤 고 할 거예요??”
정신이 혼미했다. 나와 같은 또래이자, 그곳에서 근로하는 선생님 또한 이게 맞나…? 하면서 점수를 계산해 주셨다.
아무튼 두 판 정도로 끝내긴 했지만, 이 상황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사건이었다.
‘아룬’이는 게임에 탁월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게임에서 항상 일인자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늘 말한다. “아룬이가 이기는 건 당연해요!” 당연한 건 없다고 말했지만, 나도 몇 번 지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아룬이는 나와 게임을 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인지, 나를 끌고 다니며 여러 게임을 가르쳐주었다.
어디서 A4 용지 2장을 들고 와서는 카드를 만들고 나에게 게임을 알려주었다. 그 어떤 카드 게임보다 어려웠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아룬이가 창작한 카드 게임 같았다. 다만, 아룬이의 수식어답게 제법 정확한 룰이 있었고 나는 그 룰을 단기간에 파악하기 위해 아룬이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어쩌면 수능 국어문제 풀 때 보다도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머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또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쓰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한 아이의 게임을 위해 머리를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한 후, 이것이 바로 어른의 책임인가.... 싶기도 했다.
아이는 아이다!
아룬이는 또래보다 똑똑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너무 신기하게도 아룬이 또한 아이의 모습이 다분한 것이었다. 운세 게임 카드를 만들다가 문제가 생겼다. 얇은 종이에 매직으로 무늬를 그리다 보니 뒷면에 다 보이는 것이었다. 종이의 뒤에 무늬가 비취는 것을 보고 아론이는 절망에 빠졌다.
당황한 나는 빠르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럼 우리 보지 말고! 고개 돌리고! 뽑으면 되겠다 그지?”
아룬이의 울먹거리려고 움찔거리던 눈과 입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행동이 성숙하고 차분하더라도 여전히 아이는 아이인 것이다.
철이 빨리 든 아이들도, 여전히 아이일 텐데. 가끔 철이 든 아이들을 다 컸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다. 여전히 마음이 말랑말랑한 아이인데 말이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몸이 하나이긴 하지만, 여러 아이들 앞에서는 다채롭게 바뀌어야 하는 카멜레온이다. 처음에는 부단히도 어렵다.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성숙한 아이들에게 너무 애처럼 대했다가는 ‘이 선생님 왜 이러시지?’하는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성숙하게 대하다가는 ‘이 선생님… 너무 어려워…’하는 표정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신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을 대하는 법’인 것 같다. 교권이 낮아진 지금, 법적 문제… 학부모의 영향력… 그런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대하는 법’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나라는 존재가 한 아이의 인생에 어쩌면 아주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쁜 파장이든, 좋은 파장이든 말이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그리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행동과 말 또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도 아니었고, 그저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봉사자였을 뿐인데도 나의 말투, 행동, 표정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부담감이 아닌 책임감을 느꼈다. 봉급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그들의 사명 때문에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며 비약적인 추측을 해본다. (모두가 좋은 교사는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교사라는 직종을 꿈꿔본 적도 없고, 원한 적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교사가 된다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담이지만, 글을 쓰고 고치고 무작정 발행하는 이유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고 싶고… 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 내뱉는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밥이 맛있었다.
(노동이 주는 선물)
이건 뭐… 교육봉사 수기라고 하기 좀 그렇고… 먹방 후기? 정도라고 해야 할 듯하다.
9시부터 17시. 이 어마어마한 시간의 봉사에 점심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첫날, 대빵 선생님(원장 선생님 말고 총괄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이 말하셨다.
“선생님 아이들이랑 같이 내려가셔서 점심 드시면 돼요”
아이들도 낯선데… 밥이 넘어갈리가 있나….
하지만 남은 4시간을 생각하니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음식이라도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물쩡 내려가니, 센터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아이들의 급식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간 첫날이 본의 아니게 방학 첫날이었고, 그래서 그 기념으로 분식 데이였다. 떡볶이, 튀김, 오뎅국물 까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혹시나 배가 아플까봐 (과민성 대장염을 달고 산다) 조금만 먹었지만, 첫날의 긴장+ 스트레스+ 노동+ 떡볶이 조합은 그저 최고였다. 그 이후 먹은 총 다섯 번의 급식 모두 꿀맛이었다.
다 먹고 먼저 올라온 아이들에게 물어볼 때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아 점심 뭐 나왔어?”
“기억 안나여. 맛없어서 맨밥만 먹었어여”
“@@아 점심 맛있었어?”
“그냥 먹었는데여?”
까다로운 아이들… 나는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 먹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하루종일 그 다음 끼니를 뭘로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삶의 낙이다. 특히 학기 중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억들로 버티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름 미식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초. 중. 고 학생 때도 급식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물론 미화된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까탈스러운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라고 물으면 “다 괜찮은데, 뭐 맛집이라고 꼽을 만한 곳은 생각이 안 나네 “라고 말할 정도로 ”맛집”과 “맛이 괜찮은 집”의 경계는 크다만, 그렇다고 맛없다고 하는 곳은 없다.
그런 내가 맛없다고 하면 진짜 맛없는 곳이다.
잠시 이야기의 흐름이 다른 데로 샜다만, 아무튼 이곳의 급식은 단언컨대 맛집이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대가 없는 봉사… 그러니까 내가 얻는 것이라고는 봉사 이수 시간과 밥…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들의 사랑…? 정도 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물질적 보상은 밥뿐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느껴지게 해주는 노동이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