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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해이 Oct 23. 2024

첫- 외전 1. 할머니 상하이 가다!

그 후.


“엄마, 비자 때문에 잠깐 미국 갔다 와야 하는데 데일이 좀 봐줄 수 있겠어예?”
“내가 우에 보노!”
“데일이는 보채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같이 있어주고 밥 챙겨주고 산책시켜 주고 뭐 그런 거만 하면 되예”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서 며칠?”
“한 2주…. “


그렇게 시작되었다.


데일 돌보기 특훈!


날 돌보아보시게.




눈을 좀 게슴츠레 뜨는 경향이 있다.



털찐 종은 옷을 입히면 그닥 예쁘지 않다....!



턱 받치는 걸 좋아한다.


리허설


아파트 1층 로비 터줏대감.


할머니는 당시 70대 후반의 나이셨다. 개를 키워본다고 해봤자, 할머니가 젊었고 엄마와 이모가 어렸을 시점에 집을 지키라고 묶어두고 키웠던 스피치가 전부였다. 옛날 사람이라, 개를 사람처럼 키우는 것을 유난이라고 생각하실 수밖에 없으셨지만 둘째 딸이 부탁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 시점이 딱 수능칠 때쯤이라 엄마나 내가 도와줄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짐을 싸서 상하이로 향했다.



약 일주일은 적응 기간이었다. 이모가 데일이에게 어떻게 하는지, 어떤 식으로 케어해주면 되는지를 할머니는 배우고 계셨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셨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셔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개를 키운다’는 것에 관점이 지금 세대와는 다른 세대에서 나고 자라신 할머니는 데일이를 접해보면서 많이 변하셨다. 동물의 따끈따끈하고 몰캉한 몸이 느껴지는 것이 싫어서 늘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고 만지셨지만, 점차 장갑을 벗고 쓰다듬기 시작하셨다. 여전히 다른 개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데일이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다. 조금만 변한다 해도 그것이 모이고 모여, 쌓이고 쌓이면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다.


상하이


때가 되면 테라스에 나가서 광합성을 한다.


이모가 미국으로 잠시 떠난 첫째 날이다. 이모만 없을 뿐이었지, 할머니는 평상시처럼 했던 대로 했다. 눈을 떠서 오줌을 누이고, 응가를 누이고. 밥을 주고.


여러 번 시행착오를 해본 할머니는 기가 막힌 방법을 발견하셨다. 바닥에 패드를 깔아 두고 데일이가 뱅글뱅글 돌기시작하면 오줌을 누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다가 쉬를 하기 위해서 다리를 드는 순간 타이밍을 잘 맞춰 데일이의 쉬 아래에 안 쓰는 컵을 갖다 대어 오줌을 받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패드를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들어보니 어이가 없었지만, 데일이가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으니 차후에는 가족 모두가 애용한 방법이다.(ㅋㅋㅋ)



할머니, 따라와요.


할머니는 규칙과 루틴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이모가 아침마다 산책하는 모습을 보였어도 만약 나 같았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띵가 먹었을* 것이다.(빼먹다) 하지만 할머니는 꼬박꼬박 지키셨다. 어차피 할머니도 아침 운동을 하셨고, 이왕 하는 김에 데일이 산책도 꾸준히 시키신 것이다.



당시 데일이는 청춘이었고, 그 힘이 어마어마했다. 마음만 먹으면 할머니가 딸려갈 수도 있었지만, 데일이는 다행히 할머니의 발걸음에 맞춰주었다. 그러길 며칠. 어느 날, 할머니가 끌려가는 상황이 생겼다. 평상시처럼 로비에 도착했고, 원래 가던 산책길로 가고자 했던 것인데, 데일이가 줄을 확 끌더니 할머니를 끌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데일아! 아이고!”


할머니와 셔틀랜드 쉽독. 이 둘은 동네에서 유명한 존재였다. 경비원이나 카페 주인들이 인사를 하니 할머니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하이’를 외치셨지만,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데일이는 끝까지 할머니를 이상한 길로 끌고 가는 것이다.




“아이고 어디에 가는 거는거고! “



헉헉 거리며 한참을 달리다 보니, 데일이가 끼익- 하며 멈춰 섰다. 그제야 숨을 돌린 할머니가 두리번거리자 보이는 건, 아파트 로비였다. 데일이는 뭐하냐는 눈빛으로 산책 다했으니, 이제 들어갈까요? 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꽤나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랬다. 데일이는 늘 똑같은 루트로 산책하는 것이 지겨웠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준 것이었고, 오래간만에 다른 길로 산책을 하고 나니 만족스러웠던 것이었다.


에라이

이 할머니는 엄마와 친해 ‘


데일이의 생각이었다.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가 잘 지내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보호자로 인식했다. 게다가 데일이는 아이와 노인들에게 매우 젠틀한 개였다. 다행히 뭐든 할머니를 배려하는 쪽으로 행동했는데, 너무 산책썰을 보면 알다시피 할머니는 FM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융통성이 없으셨다.


데일이는 사실 입이 까다로운 아이였다. 잘 먹다가도 가끔씩 맛있는 것을 먹고 싶으면, 고기를 얻어낼 수 있는 아이었다. 처음에는 할머니를 배려하기 위해 사료를 계속 먹던 어느 날이었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



라며 데일이는 밥그릇을 앞다리로 엎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실수인가 싶어 할머니가 다시 사료를 담아주니, 이번에는 코로 그릇을 엎었다.



고의가 아니구나!



여러 번 저항 운동을 시도한 데일이는 결국 할머니를 꼬셔 뻥튀기와 고기를 얻어내었다고 한다.



상바이


할머니가 감동받았던 순간이 있다. 쌀쌀했던 상하이의 어느 날, 침대에서 홀로 자고 있는 할머니의 온몸이 순간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눈을 떠서 아래를 보니,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온 데일이가 펑퍼짐하고 뜨끈한 궁둥이를 할머니의 허리에 붙여 자고 있었다.


등을 보여주는 행위, 살을 맞댄다는 것. 그것은 할머니의 얼은 마음을 녹이기에도 충분했다.


상하이에서 퇴근하면서 할머니는 데일이를 ‘반려견’이 아닌 그저 ‘데일’이로 인식하게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데일이 최고’를 외치며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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