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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해이 Oct 06. 2024

첫-#7 너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아!

둘만의 세상


인형 같았다.
보들보들한 털에 따사한 느낌.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었다.
조금 더 만져보는데, 온기가 느껴진다.
아무리 봐도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사람이 아닌데, 사람 말을 이렇게 잘 알아들을까.
사람 마음이 얼마나 뒤죽박죽인데, 너는 올곧을까.

어디에서나 나만 바라보고,
어디에서나 나만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하든 따라주고…

이런 사랑을 이 아이가 아니면 어떻게 받아볼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랑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다른 사랑은 순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얀 양말을 신고 있는 것이 데일이의 특징이었다. 게다가 덩치에 비해서 발은 또 얼마나 작은지… 또… 발이 얼마나 동그란지… 마시멜로 같았다.



CCTV
- 펫캠이 아닌…최해이 캠…..


엄마와 아빠가 친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가고 난 후, 나와 데일 둘만 남았다. 뭐 원래 겁은 많이 없는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없으면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 딴짓을 많이 하는 나를 감시하는 건 데일이었다.


솔직히 엄마나 아빠가 심어놓은 CCTV? 혹은 스파이?인 줄 알았지 뭐람... 공부하다가 폰을 조금이라도 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쩝쩝 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나 원참. 나는 또 지레 찔려서는 다시 공부하고는 했다.


(좌) 한 겨울에 데일이를 안고 앉아있으면, 왠만한 난로보다 몸이 따뜻해진다. (우) 코! 하는 훈련을 해보려고 했는데, 코에 손을 감싸자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시선이 느껴져서 뒤돌아보면 엎드린 채 눈만 뜨고 끔뻑끔뻑 거리며 집중 안 하냐며- 시선이 느껴지더라도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뭐 그런 눈빛으로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쉬나 응가가 마려울 때면 소파에서 내려와서는 낑낑 거리며 소리를 낸다. 데일이의 루틴이었다.


데일이는 따로 배변패드가 필요 없는 것이 신기했다.


낑낑거려서 같이 화장실로 들어가서 화장실 칸막이 앞에서 뱅글뱅글 돌면 쉬를 누고 싶어 하는 것이었고, 칸막이 뒤로 가면 응가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쉬가 마렵다는 표식을 하면 재빨리 배변패드를 깔았고, 응가를 하고 싶어 하면 그저 응가를 주워 변기통에 집어넣는 것이 다였다.


 누군가의 응가를 치워본 것은 처음이었고, 그건 데일이의 것이었다.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은 이렇게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느꼈고, 이 아이를 위해 행동하는 순간순간 나의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고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은 해도 해도 기분 좋은 것이었다.




Sleepy


나는 데일이가 자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엎드려서 쿨쿨 자다가도 어느 순간 너무 깊은 잠에 빠져버리면 앞발을 하늘로 향하게 들고는 자는 것이었다. 달리는 꿈을 꾸는지, 대롱대롱 달려있던 팔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쭉쭉 뻗기도 한다. 가만히 있던 뒷발마저도 꿈틀꿈틀 거린다.


음악을 켜놓으면 가끔 춤을 추기도 한다. 귀가 그렇게 밝으면서도 사람을 너무 믿었던 것인지 어떠한 큰 소리가 나도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비상벨이 작동해도 절대로 눈을 뜨지 않는 개, 그건 바로 데일이었다.


그렇게도 깨지 않던 데일이는 ‘바스락…’하는 과자 봉지 소리만 작게 들려도 벌떡 일어나 걸어온다. 일단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ㅋㅋ)


한 번은 시험기간이라 오랫동안 공부한 날이었다. 데일이가 굳이 내 뒤에서 자길래, 숨 쉬는 코와 입만 빼고 몸과 눈까지 이불 여러 겹을 덮어주었다. 그러니 도로롱 거리며 깊은 수면에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팠다. 마침 깨어있는 엄마와 군것질을 하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가서 과자를 꺼내는데… 뭔가 이질감…? 혹은 인기척..? 이 들어서 아래를 쳐다보니, 코만 나온 이불 더미가 내 옆에 버젓이 서있는 것이 아닌가!!


기절할 뻔했다. 놀라서가 아니라 너무 웃겨서 말이다.


그 커다란 이불 더미를 등에이고, 눈도 보이지 않은 상태로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옆에 있는 것이 너무 웃겼다. 이 웃긴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나의 필력에 한탄스러울 뿐이다.




가끔 드르렁 드르렁 거리다가 자기 코소리에 놀래. 눈을 번쩍 뜨고는 한다. 눈이 부셔 반쯤 뜬 충혈된 눈으로 주위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 정적이 얼마나 웃기던지. 데일이는 자기가 아닌 척, 그저 잠시 일어나야 할 일이 있어서 일어난 척 주위를 둘러보고는 잔다. 이럴 때 보면, 수업시간에 졸다가 너무 깊이 자는 바람에 경련을 일으키며 일어나는 고3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내가 빠질 수 없다.



자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시간흐름에 맞진 않지만 이야기해 본다. 데일이의 미국 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엄청 큰 행사이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몇 달 전부터 꾸미고, 축복하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큰 연례행사는 선물 교환식이었다. 당시 미국 집에는 데일이의 엄마, 데일이의 아빠, 데일이의 할머니, 데일이의 할아버지 그리고 데일이가 있었다. (아마 몇 더 있었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무튼 대가족이 선물 교환식을 하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 각각의 선물을 샀을 테고, 개봉식부터 리엑션까지.


데일이도 선물이 있었다. 데일이의 선물부터 다 뜯고, 다른 가족들의 선물을 뜯는데… 데일이가 잠이 너무 왔던 모양이었다.



가물가물 거리는 눈으로 선물을 쳐다보다가 꾸벅…

또다시 일어나서는 꾸벅….


그러다가 리엑션 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서는 꼬리를 붕붕 흔든다.



누가 자면 안 된다고 했던가…

모든 강아지들이 그렇듯… 자도 되는데… 잘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마치 자신이 자는 동안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분 나도 안다.)


그렇게 데일이는 한참을 꾸벅. 꾸벅거리다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똬리를 틀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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