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도서관, 따뜻한 기억
주말마다 도서관을 갔다. 도서관 앞에는 공터가 있었고, 고요한 와중에 왕왕! 소리가 나더니 ‘쉿!’하는 소리가 나고 고요해지는 것이었다. 창밖을 보니, 데일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입성해서는 점심시간까지 공부를 하다 보면 엄마가 점심때쯤 오신다. 보통 때는 엄마 혼자 오셔서 같이 놀고 밥 먹다가 다시 엄마는 집으로.. 그리고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가고는 했는데, 데일이가 온 뒤로는 데일이가 같이 오는 것이다.
공터였고 강아지들도 많았다. 데일이는 종종 나랑 같이 뛰어다니고는 했다. 사실 데일이는 사람보다는 다른 강아지들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그 강아지들이 데일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큰 덩치들의 설움이다. 보통 한국에는 말티즈, 포메라니안, 푸들… 같은 소형견들이 많다. 2017년쯤인 그 당시만 해도 쉽독이 희귀했다. (2024년인 요즘에는 꽤 많아져서 길거리에서 자주 만나고는 한다) 그 작은 아이들은 데일이와 인사도 나누지 않고는 덩치에 지레 겁을 먹어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데일이의 그 낙담한 표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는 다리와 데일이의 시선이 기억에 선하다.
데일이는 잘생겼다. 그리고 털도 너무 아름답게 배색되어 있다. 얼굴이 작고 우아해 보이지만.
사실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가끔 넘어지기도 했다.
이모 말로는 콜로라도의 들판에서 쟁반 던지기도 하며 멀리 던저진 공을 받기도 한다고 했지만, 믿거나 말거나 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운동신경은 좀 부족했다.
이로써 나는 또 하나 깨달아간다. 너무 비약적 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 맞지. 잘생기고 똑똑하고 운동신경까지 좋으면 너무 불공평하잖아.
추운 도서관, 따뜻한 기억
도서관이 마감하는 10시.
그 쯤되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 무지하게도 추웠던 날들이었다. 히터가 틀려져 있는 도서관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손을 비벼대고, 차가운 손을 오금 아래 집어넣기도 했다. 그러다가 몸이 좀 따뜻해지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고, 화장실을 갔다 오면 또다시 열기를 빼앗겨 온몸이 덜덜 떨렸다. 10시가 되기 10분 전쯤, 책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겼다. 롱 패딩을 목 끝까지 올리고, 목도리를 둘둘 싸매고 밖으로 향했다. 숨만 쉬어도 입김이 나와 당장이라도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핫팩을 지지대 삼아 엄마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벌컥 문을 열었는데
운전대에 앉아있는 엄마의 품에 데일이가 있었다!
운전해 올 동안은 조수석에 있었고, 엄마도 기다리는 동안 춥다 보니, 데일이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데일이는 그때 털이 밀린 상태라서 후리스를 하나 입고 나왔다지만, 데일이 또한 추웠을 것이다. 엄마는 데일이의 따끈한 배로부터 온기를 얻고 있었고, 데일이는 엄마의 포근한 품으로부터 온기를 얻고 있었다. 차에 타자 데일이를 넘겨받았다. 데일이의 펑퍼짐한 궁댕이가 내 몸 위에 얹히자 온몸에 혈액순환이 되는 기분이었다. 인공적인 핫팩의 온기와 체온에 의한 온기는 차원이 달랐다. 온도는 확실히 핫팩이 높았지만, 강아지의 배로부터 오는 온기는 사람의 추운 몸을 녹이기에 딱 적당한 온도였다.
데일이는 그렇게 늘 데리러 왔다. 10시 근처만 되면, 벌떡 일어나서 현관 앞에서 기다렸고 엄마는 언제나 데일이를 차에 태워서 도서관으로 왔다. 공기가 입자로 변해 눈처럼 내릴 것만 같이 추운 날들에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며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래도 나를 버티게 만들어주는 힘은 늦은 저녁 변함없이 데려와주는 엄마와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히터,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 마지막으로 나를 온기로 맞이해 주는 데일이였다.
데일이는 고등학생 3학년의 시작을 추억으로 기록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