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걱정이 많았던 데일이의 엄마, 즉 우리 이모는 중간중간 한국에 왔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빽빽한 데일이의 털에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 엄마를 목격한 것이다. 어딜 봐도 쉽독 털을 미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창창한 청춘이자, 털갈이 시즌을 맞이한 데일이의 털을 한번 밀어보자! 는 것이었다.
특명. 데일이의 털을 밀자!
정리만 좀 하려고 했었는지는 제대로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하교를 하고 집에 오니 데일이가 아닌 다른 개가 있는 것이었다!
순둥이 데일이는 미용실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스파+미용 까지 하는 동안 이모와 엄마는 다른 곳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데일이를 데리러 가보니, 애견 미용사님이 그 커다란 덩치의 데일이를 어깨에 이고 만지며 청소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어딜가나 사랑을 나눠주는 우리 덩치였다.
문제는 집에와서였다. 아니… 분명 그리 눈에 띄지 않았던… 꼬리!
꼬리가 민들레홀씨? 혹은 부채꼴? 빗자루? 뭐 그런식으로 미용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참을 수 없는 촌스러움….. 참고로 우리 엄마와 이모는 촌스러움을 참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짧은 하의 아래에 쭈왁 올려 신는 발목 긴 양말, 양말을 신고 신는 샌들, 리본 달린 핀으로 여러갈래로 묶는 여자 아이 머리… 이런 것들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데일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대서 화장실로 향했다. 응가를 하고 응꼬를 닦고 나오는 데일이가 기분이 좋았는지, 꼬리를 휘리릭~ 휘리릭~ 젓는 것이 아닌가. 쾅- 쾅- 데일이의 촉수 같은 꼬리가 벽과 문을 치는 소리였다. 안방에 있던 아빠가 놀라서 나왔다.
이럴 수가. 이건 재앙이었다. 소리는 물론이고 획획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살랑이는 그 촉수들이 얼마나 웃기던지.
결국 데일이를 다시 미용실에 데리고 갔고, 촉수까지 완벽하게 이발했다. 나름 미용사님이 신경써준 디테일이고 디자인이었을 테지만… 쿨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우리 집안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소동이 끝나고. 그때는 겨울이었다. 하필 겨울이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털을 다 밀어본 데일이가 추위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조상이 시베리아 쪽이라고 하여도 이렇게 벌거벗은 적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맨몸으로 자던 데일이는 이제 이불을 덮고자기 시작했다. 사실 외관상으로는 털이 있는 것이 멋드러지긴 했다만, 안았을 때 데일이의 따끈한 살이 직접적으로 몸에 닿았기 때문에 더 귀엽게 느껴졌다.
추울까봐 데일이의 몸에 담요와 이불 더미를 올려주었고, 가끔은 사람의 조끼패딩을 입혀주었다. 후리스는 따로 있었지만, 보일러가 지글지글한 우리 집에서는 또 너무 더울까봐서 였다.
쿨쿨 자다가 ‘데일아!’ 하고 부르면 이불 더미를 전부 등에 지고 일어나서 걸어가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데일? 대일?
영어이름인… 하지만 영어이름 같지 않은…
‘데일’ 사실 데일이가 한국에 온다고 반 친구들에게 자랑했을 때,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일이라고? 대일?’ 영어로 ‘Dale’이지만 한국어로 쳐도 너무 한국스러운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우리학교 화학 선생님의 성함이 ‘*대일’이셨다… 하필…. 한참 선생님을 싫어할 나이 고2…. 다들 이름을 들으며 깔깔 웃었다. 설상가상으로 선생님과 나의 성이 같았다. ‘최’… 데일이는 외국의 성을 가졌지만, 딱히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 친구들은 내 성에 데일이의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나는 아마 우리 데일이랑 이름이 비슷해서 인지, 대일 선생님의 수업을 더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화학 과목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화학선생님을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긴 했다.
데일이는 하루종일 누나만 기다려
구성원이 다 들어와있어야만 잠을 푹 자는 한 반려견이 있다.
아침에 인사를 하고 나가면, 대장(필자의 엄마이자, 데일이의 이모)과 함께 있으면서도 계속 해서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은 이모부.
마지막은 누나.
고등학생인 누나는 야자가 끝나면 오후 11시이다. 그런 누나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너무 마음이 따스하다가도, 나만 오면 반겨하다가 간식 통 앞에 빠딱 서 있는 궁댕이를 보면 미워죽겠다.
누나 is 간식 이었다.
간식 사물함은 루틴이었다.
간식 몇개를 얻어먹고 나면, 제자리로 가서는 잠이 드는 데일.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식탐이 많더라도 ‘먹고 싶어 하는’ 본능이 너무 소중한 것이다.
두번째 만남의 이야기에서 전개하겠지만, ‘먹는다’는 것은 동물이 살아있다는…그리고 살고 싶다는… 앞으로도 살아낼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아파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들 듯이. 강아지들도 마찬가지 이다. 아파도 간식은 좋아한다. 그러니 더더욱 보호자가 관찰을 잘 하여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 입이 짧은 강아지라면, 또한 사료를 싫어하고 간식만 좋아하는 편식쟁이 강아지라면 어디가 아파서 먹지 않는 것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간식도 먹지 않고, 물도 먹지 않는다면. 당장 병원에 달려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