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랜드 쉽독’의 매력에 대하여
듣다듣다 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아- 이모! 그거 다 이모의 자식 같은 애완견이니까 그렇게 좋게 보이는 거예요.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어요. 이모 개가 최고는 아니라고요. 자랑 좀 그만해요! 아- 진짜. ”
하던 내가 이젠 자랑질을 좀 해보려고 한다.
“이모! 도대체 데일이는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이렇게 말을 잘 들어요?”
나는 뭔가 특별한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개의 타고난 천성’이었다.
“처음 데려오고 집에 적응을 좀 하기 시작할 때, 데일이가 갑자기 가구 다리를 물려고 입을 아앙- 하고 벌리는 거야. 그때 이모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이모부가 멀찍이서 보다가 ‘안! 돼!’ 하고 크게 호통 쳤는데 그때부터 그런 행동은 안 하더라. 그때부터 말을 잘 들었어”
…..
이모 그건 타고났다는 말이잖아.
셔틀랜드 쉽독은 머리가 좋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머리가 좋을 줄은 몰랐다. 말을 잘 듣는 것과 머리가 좋은 것은 전혀 다르다. 훈련이 잘 된 강아지는 주인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데일이는 달랐다. ‘말을 알아듣고’ ‘미움받지 않게 행동하면서도’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젠틀하게 행동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화에서는 스마트한 데일이의 몇몇 에피소드를 풀어보고자 한다.
스파이 대작전
제일 기억 남는 에피소드는 영화관 에피소드였다. 미국에 있을 때였다. 이모와 이모부가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려는데, 작고 어린 데일이를 차마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평소에 이모는 백화점에 쇼핑을 다니며 데일이를 아동용 유모차에 태워 다니셨다. 이불을 덮어두면 눈이나 코만 빼꼼 내밀어서 이모와 함께 쇼핑하고는 했다. 항상 보호자와 동행해서 그런지 데일이는 ‘우리 엄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안심되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는지, 낯설어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보려는데 데일이를 데리고 가야겠는 것이다… 그래서 이모는 커다란 점퍼를 입고 점퍼 안에 데일이를 넣었다. 원래가 중형견이라서 어렸다 해도 크기가 어느 정도 있었다. 말티즈 성견 정도는 된다고나 해야 할까. 이모가 데일이에게 속삭였다.
품속에 있는 데일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영화관에 들어서서 표를 끊기 위해 티켓박스로 향했다. 주변에서 팝콘 냄새가 났는 건지, 이모의 점퍼 속에 있던 데일이의 꼬리가 꿈틀- 거리더니 슉- 하고 점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이모가 데일이의 하얀 꼬리를 점퍼 안으로 후닥닥 집어넣었다. (참고로 데일이의 꼬리는 끝부분이 하얀색이다.)
그렇게 표를 끊고 팝콘을 사서는 영화관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개라… 그 모습은 영화나 만화에서나 볼 법했지, 개들의 참을성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해냈다.
데일이는 영화 상영 내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스파이 게임을 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에이. 이모 거짓말 하지 마요. 개가 그런 게 어딨어.“
하지만, 믿게 되었다. 평소라면 이모와 엄마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내가 데일이와 함께 차 안에서 기다렸겠지만, 나는 학원에서 수업 중이었고, 그 수업시간 동안 잠시 마트에서 장을 보려는데… 추운 차 안에 데일이를 두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약 13kg의 중형견이라 케이지가 필요했는데, 케이지는 없고… 장은 급하게 봐야 하고….
그래서 이모와 엄마가 선택한 방법은 ‘스파이 대작전!’이었다.
카트 바닥에 차에 있는 커다란 방수포 쇼핑백을 여러 개 깔고 담요를 깔았다. 그리고는 데일이를 올려두고는 담요를 덮어두었다. 그러고는 이모가 속삭인 것이다.
‘자- 이제 스파이 대작전이야…!’
필자의 엄마는 두 눈을 의심했다. 스파이 대작전이라고 하니, 데일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납딱하게 엎드린 채로 마치 무생물체인 짐덩이처럼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경비아저씨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와 이모는 장을 보면서 가끔 담요를 열어서 물어보곤 했다.
“데일아… 이 과자 살까?”
물론 데일이의 과자는 아니었지만, 보여주면 눈을 깜빡였다. 이것은 일종의 확인 수단이었다. 카트에 올라오는 물체를 데일이가 겁먹지 않게 확인하는 확인사살용이었다. 냄새를 한번 맡고 눈으로 확인한 물건이라면 카트 위에 올라와도 데일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장을 보고 계산을 하고 나가는 동안까지도 데일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쇼퍼홀릭 데일
이모는 유명한 쇼퍼홀릭이다. 옷을 좋아했고, 코디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미국에서 산다는 점, 패션쇼에 관심이 많다는 점 덕분에 늘 유행에 앞선다. 나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패션을 이모에게 코치받고 나면, 몇 개월 뒤 제니가 입고 있어서 결국 한국에서 유행한다던가... (그래서 나는 늘 제니가 날 따라 한다고 착각한다. 농담이다. 제니 또한 해외 트렌드를 따르는 것일 테니) 앞서 말했듯이, 데일이는 늘 그 쇼핑에 동참했다. 부모는 자식의 뭐다? 거울이다~
정확히 맞는 말이다.
데일이 또한 유명한 쇼퍼홀릭이었다. 펫마트나 폴리파크에 가면 간식이 진열되어 있는 첫 칸부터 하나하나 냄새를 맡으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었다. 아- 그냥 냄새 맡고 싶은가 보다. 했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 (마치 사람이 옷을 한 장 한 장 구경할 때 손으로 넘기듯이) 넘기며 1차 검증을 하더니 2차 검증을 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 딱! 멈추어버리는 것이었다. ‘치킨’ 그것도. 1 kg. 데일이가 계산대로 안 들고 가면 발을 절대로 떼지 않겠다는 듯 엉덩이에 힘을 주고 버텨 서 있었다.
강냉이를 드러내지 않는 개
‘개는 훌륭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무는 개, 싫으면 으르렁 거리는 개가 어쩌면 정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수의 것들이 보편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어쩌면 저 말을 기본틀로 사용해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라도 저 말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이다.
데일이를 데리고 다니면 다른 개를 산책시킬 때보다도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하다. 덩치가 커서 샤워를 시키는 건 좀 힘들지라도 산책을 나가는 장벽이 낮은 것이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 개가 다른 개를 공격할 걱정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데일이는 덩치가 커도 코와 턱에 다른 개의 이빨 자국이 있다. 아무리 사나운 개들이 달려들어도 가만히 있다가 결국 물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모는 오히려 데일이를 다른 강아지들과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데일이는 사람보다 강아지를 훨씬 좋아한다. 마치 사람이 강아지를 보면 귀여워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작은 아이들이 오히려 사납게 짖는다. (멀찍히 있어도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짝사랑에 마음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이빨은 누군가를 무는 용도가 아니야
데일이는 이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낸 적도 없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이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지 않을까. 굳이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삶. 그니까 아마 데일이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