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기면 밥 먹여주나? 네~ 제가 먹여드립니다~!
ID)
Full name : Dale Seward Bluediamond
Breed : Shetland Sheepdog
D.O.B : Sep. 6th. 2010
SEX : Male
Born: IN U.S.A
슬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너와 나의 만남에는 행복뿐이었으니,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뻤고, 나는 그 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 이모에게 Dale의 어릴적 사진을 요청해 보았지만… 전부 메모리카드에 저장되어 있고, 그 메모리카드는 창고에 있어서 어릴적 사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귀한 것입니다… 언젠간 창고 대방출을 한다면 많이 건져 오도록 하겠습니다.
첫 만남
18세에서 19세로 올라갈 겨울방학이었고, 공부에 손을 놓고 있던 내가 고3이라는 이름표로 마음을 다잡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수학 학원이 끝난 오후 10시쯤이었다. 미국에서 이모가 인천공항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시린 손 끝을 비벼대며 엄마 차가 오길 기다렸다. 멀리서 회색의 엄마 차가 보여 달려가는 와중 조수석 창문이 열렸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이모에게 간 시선도 잠시. 시선은 이내 이모의 무릎 위로 향했다.
Dale이라는 애가 온다며 며칠이나 투자하여 만든 쿠션이었다. 집에 남는 베개에 큰 타월을 덮고 꿰매고 그 위에 자수로 D.S 까지 새겼다.(Dale Seward 약자) 쿠션을 보자마자 알았다.
네가 데일이구나!
덩치는 커다랗지만, 열린 창문 너머로 얌전하게 그리고 동그랗게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자마자 입가로 뿌연 연기가 새어 나왔다. 아하하하. 이거구나.
사랑에는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등등... 많고 많은 위대한 사랑이 있지만,
사랑만으로 완벽할 수 있는 대가 없는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
그것은 인간이 해낼 수 없는 난제와도 같다.
그렇다면 가장 순수한 사랑은 동화 속의 허황된 이야기일까.
또 그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이 있다.
반려인의 반려견에 대한 사랑?
아니다.
바로
반려견이 반려인에게 주는 사랑이다.
이 깨달음이 바로 이별의 아픔을 더욱 짙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맑다 못해 투명한 에매랄드 색의 바탕에 끔뻑일 때마다 빛나는 심해저 같은 눈동자로 뒷좌석에 앉는 나를 자꾸만 호기심 있게 쳐다본다. 손을 뻗어 가장 보들보들해 보이는 하얀 이마를 슥슥 쓰다듬어보았다. 촉촉하고 까만 코로 킁킁거린 데일이는 게슴츠레 눈을 내리깔며 새침하게 고개를 쓱 돌리고는 혀로 코와 입을 한번 축인다. 그러더니 멍하니 있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그 매끈하고 촉촉한 코로 뻥쳐있는 내 손을 툭- 하고 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누나, 이제 냄새 기억했으니, 이제 그만 좀 쳐다봐.’
하는 듯한 느낌. 어째 대화 하나 나누지 않았는데, 말이 통하는 걸까. 신기해서 어버버 거리는 나를 보며 쿠션에 턱을 대고 누워버린다. 미국에서 인천공항까지. 인천공항에서 대구까지.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비행기까지도 대단히 힘들었을 텐데, 인천공항에서 대구까지 약 3시간 반동안, 데일이는 얌전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학기 중이라 내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는 혼자서 인천공항까지 왕복하느라 엄청 긴장한 상태였고 혼자서 7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했으니 데일이는 도통 볼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나를 태우고 나서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엄마가 웃으며 데일이를 보았다.
“와- 너 정말 희한하다. 너무 얌전하고 참하다. 이모가 너 옆에 있는 지도 몰랐다.”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데일이는 자신의 이모가 너무 궁금했지만 분위기상 냄새를 맡을 상황은 아니어서 그랬던 것인지, 대구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모 손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가족이 되다.
아. 참. 이모부는 미국인이시다. 게다가 직업은 호텔 CEO이다 보니, 호텔에 따라 전 세계 곳곳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데일이를 입양한 것은 2010년 11월 어느 날이었고, 그때는 이모와 이모부가 보스턴에 정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데려오고자 했던 것이다. 몇 달을 돌아다녀도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어서 이제 포기할까. 하며 이모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한 케이지 안의 신문지 더미가 부시럭 거리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직원에게 이 안에 든 아이는 어떤 종인지 물어보았다. 미국에서는 강아지들의 스트레스를 위해서 하루에 꺼낼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한다. 오늘은 꺼낼 수 없다는 의문의 강아지… 곧이어 나를 불렀냐는 듯 신문지를 바스락거리며 헤치고 나온 한 강아지. 이모는 이 강아지의 에메랄드 빛 눈과 마주치는 순간 느꼈다.
“네가 나랑 살게 될 아이구나”
몇 달이고 찾지 못한 이모의 강아지는 이렇게 일순간에 결정되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말에 바로 ‘분양완료‘ 표지가 붙었고 한 미국소녀가 달려왔다.
“어…! 나 얘 분양받으러 왔는데…!”
절망적인 목소리. 알고 보니 미국소녀는 몇 번이고 이 아이를 분양받으러 찾아왔고,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서 온 상태라고 했다. 그렇지만 어찌하란 말인가. 이모는 이미 이 아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복슬복슬한 여우. 딱 그 말이 어울렸을 것이다. 너무 예뻐서 입 안에 넣고 싶은 그런…. 나는 그 당시 11살, 4학년이었다. 이모가 강아지를 분양받았다는 이야기에 당장이라도 보스턴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만 애달팠지,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이모가 사진으로 보내줬을 때는 데일이가 잘생겼는지 몰랐다. 그만큼 데일이는 사진빨이 받지 않았던 것이다…)
Hermès형 강아지, 하지만 사치형이 아닌 품성을 겸비한 매너형.
데일이는 데리고 다니면 어깨 뽕이 절로 올라가는 강아지였다. 매너가 몸에 베긴건지, 혹은 그저 귀찮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만져도 가만히…. 아이들이 자신의 머리를 땋고 놀아도 가만히… 다른 강아지들이 냄새를 맡아도 가만히…. 있었다. 그게 너무 신기한 것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노인과 아이들은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이모는 데일이를 데리고 갔다. 미국 친구의 딸들이 데일이를 보고 싶어 하는 이유에서였다. 친구의 집에도 개가 한 마리 있었다. 데일이는 자신과 동종인 그 집의 개가 너무 궁금하고 친해지고 싶었던 것이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갔지만 역시나 부킹 실패. 희한하게도 데일이는 동종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이모 친구의 딸들이 이모에게 물었다.
“데일이랑 놀아도 돼요?”
견주의 허락을 받은 아이들은 친구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데일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얘기가 진행되는 도중 방문이 열렸고, 이모는 빵- 터지고 말았다. 머리에 곱게 꽂은 핀과 예쁘게 묶여있는 머리. 게다가 아마 어떤 유아용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데일이는 수컷인데… 누구든 가끔 잊는다. 여성미가 포함된 잘생김, 그러니까 든든하고 멋있는 그런 시크한 잘생김과는 거리가 멀었고, 요즘 아이돌 같은 꽃미남형이었다.
데일이가 대략 2-3세 무렵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줄까 한다.
미국의 주택가를 산책하는 도중이었다. 한 바퀴…두 바퀴… 그리고 세 바퀴를 도는 동안, 수상한 차량 하나가 따라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차인 줄 알았는데 같은 차가 계속 계속 도돌이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쫄아버린 이모는 데일이를 몸에 딱 붙여서 긴장한 채로 걷고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더 돌았을 때, 빵빵- 하는 경적에 화들짝 놀라 뒤로 돌아보았다. 지프차를 탄 한 미국인 아저씨. 조수석 창 문을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긴장한 순간…
“저기…! 혹시 강아지 몇 살인가요?”
아- 데일이 때문이었구나 싶은 이모는 호의적으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셔틀랜드 쉽독이고, 나이는 어떻게 되고 등등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아저씨는 뒷좌석 문을 지이잉 하고 내리셨다. 뒷좌석에 타고 있는 두 마리의 암컷. 보더콜리였고, 잘생긴 데일이를 보자 반해버린 아저씨는 데일이의 씨로 대를 잇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모가 굉장히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희 애…. 중성화했어요…”
맞다. 이미 데일이는 씨 없는 수박…. 알 없는 땅콩이었다. (!!!)
그 이후로도 수차례 데일이는 캐스팅을 받았다.(캐스팅이라면… 교배 캐스팅…?) 아무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데일이의 나이스함과 외모에 반해 데일이의 씨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데일이는 늘 세상의 중심이었다. 필자는 잘생김보다는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쓰는 편이다. 우아한 강아지보다는 귀여움에 더 끌리긴 하지만, 확실히 데일이와 함께 걸어 다니면 에르메스…. 뭐 이런 명품 백 하나를 들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자랑스러운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할머니 집에 먼저 도착하자마자 데일이는 이곳저곳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공간을 탐색한 다음, 할머니께 인사를 한 다음 애착 인형을 가져온다. 터그 놀이를 하자며 물고는 앞에 툭- 내려다 놓는다. 나는 그것마저도 신기했다. 아니, 사실 애완견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그저 동물이라고 생각했지, 나와 소통을 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한참 나와 함께 놀다가는 할머니 방에서 짐정리를 하는 자기 엄마의 곁으로 간다. 한참 뭔가를 하더니 방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모랑 할머니랑 누나한테 보여주고 와!”
그러더니 ‘패션쇼~ 패션쇼~’하는 이모의 추임새에 맞춰 귀여운 덩어리 하나가 씰룩거리며 튀어나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용 목도리였다. 정리하는 이모의 가방을 킁킁거리다가 데일이는 코로 그 목도리를 쿸- 찍었다고 한다. 그건 이 목도리를 낀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끼고 자랑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서 끼워달래서 끼워줬더니, 패션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나는 시험기간이었고, 어차피 3-4개월 정도는 우리 집에 머물러야 하는 터라 이모와 데일이는 당분간 할머니 댁에서 머물며 적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