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세상아 그리고 데일아.
널 아주 어릴 적부터 만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끝은 함께 했지만, 너의 처음을 나에게 양보해주지 않은 세상에게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정말로 세상이 나를 위했다면,
우리는 처음과 중간을 함께하고
잠깐의 슬픔으로 멀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잊고 -
멀어지며-
결국
너의 마지막을 내가 배웅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세상이 나의 감정을 위했다면 이렇게 했어야 했지만, 진정 나를 위해서라면 방금 내가 겪었던 것처럼 너와의 시간이 마무리되어야 했겠지. 이제와 생각해 보면 가장 축복받은 것이었다. 너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고 안아주며 항상 옆에 있어주겠다며 걱정말라고 속삭이던 그 순간들이. 나는 너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었기 때문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옆에 있으니 걱정말라며 끊임없이 쓰다듬어주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내가 옆에 있었기에 네가 조금 더 편안히 떠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반려견의 마지막을 검색해 보며 끔찍한 이별의 고통만 있을 것 같다 생각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따뜻한 것들 투성이었다.
후회는 앞으로의 자세를 견고하게 만들었고
추억은 더욱 짙어져서 가끔 꺼내 볼 수 있는 행복이 되었다.
너라는 강아지는 내 심장 한편에 스며들어 평생을 안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순간 네 생각 하나만으로 힘을 낼 수 있었고, 이제는 중요한 순간마다 신이 아닌 너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별이지만
너와의 이별 덕분에 한층 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너는 끝까지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가는구나.
네가 일곱 살 무렵, 18살인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고는 홀연히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영원한 헤어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네가 떠난 그날, 너의 여행길을 내가 배웅하지 못해서인지 꿈속에 네가 찾아왔고, 당시 우리 집의 현관에서 네가 왕왕 짖었다. 그러고는 현관을 나가는 너를 보며 나는 온몸이 눈물에 젖어 나지막한 수면에 잠기는 기분을 느꼈다.
다행이었다.
너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인데 멀리 가는 것뿐이니까. 워낙 멀리 가기에 앞으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늘 너의 존재를 통해서 동물에 대한 나의 거부감이 없어졌기 때문에 너를 기준으로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였다.
시간이 점차 지나고 어느덧 나는 21살, 그리고 네가 12살쯤이 되었을까. 죽기 전에 너를 꼭 한번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내 곁에 다시 오길 바라지 않았다. 꼭 만나고 싶었지만, 점차 나이가 드는 너의 세월을 느낄수록 나는 두려웠다.
자꾸만 슬픔과 이별 그리고 그 외의 나쁜 감정들을 피하고 싶어서 도망치는 나에게 이번의 시련은 꼭 한 번 겪게 하고 말겠다는 세상의 다짐 때문이었을까. 내가 너무 비겁해서 한 번쯤은 호되게 당하길 바라서였을까...13세의 너는 한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너는 나의 삶에 깊숙이... 더 깊숙이 침투하였고. 나는 도저히 네가 없는 삶을 떠올릴 수 없었다.
2024년 2월 19일 19시 08분
내 겉옷을 덮어주며 너를 보낸 후,
2024년 2월 20일 16시 20분
너의 온기를 가두기 위해 너를 안은 후,
2024년 2월 20일 19시 35분
너의 이름으로 불릴 나무 아래에 너를 뿌린 후,
나는 다짐했다. 언젠간 무뎌져버릴 이 감정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 너를 나의 활자에 담으며 담아둘 것이다. 지금의 감정을 다 전달할 수 없을지라도... 열에 하나만 이라도 기억하며 새겨두기 위해 그리고 나의 모든 시작에 너의 기적이 함께 할 수 있게,
나의 첫 이별을 기록할 것이다.
REST IN PEACE.